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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 잔

[한국 청차] 오설록 제주화산암차 [발효 50%]

단 단 2020. 8. 3. 17:04

 

 

 

 

아프터눈 티를 즐기러 용산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 오설록 1979 티하우스에 다녀왔었습니다. 그때 오설록이 만든 청차인 '제주화산암차'를 주문해 마셨었죠.

 

 

 

 

 

 

 



찻물색은 이랬습니다.

 

 

 

 

 

 

 



포춘쿠키를 깨서 같은 차를 경품으로 받기까지했고요.

 

 

 

 

 

 

 



청차이면서 '암차(岩茶)'라는 단어가 붙은 차를 보면 차인들은 대번 중국의 무이암차(武夷岩茶)들을 떠올립니다. 중국 복건성(福建省) 무이산시(武夷山市)에서 만드는 청차들로, 그중 대홍포(大紅袍), 철라한(鐵羅漢), 백계관(白鷄冠), 수금귀(水金龜)가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무이4대암차'라고 부릅니다. 오설록의 제주화산암차 이름을 보자 차에 대해 잘 모르는 저도 '중국 무이암차를 벤치 마크 삼았구나.' 바로 눈치를 채고 맛이 어떨지까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무이암차들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는 대홍포 하나만 맛을 압니다. 지금도 집에 있어요. 우리 집 자사호 '지조 높은 누렁이' 전용 찻잎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집에 대홍포 찻잎은 늘 갖추고 있습니다. 묵직하면서도 그윽한 맛이 나 마시는 이로 하여금 차분하게 사색하게 만드는 기품 있는 차입니다. 애호하는 차라서 아예 이 차 하나만 우릴 전용 차호를 다 마련했을 정도입니다.

 

 

 

 

 

 

 



세련되고 가독성 좋은 디자인에 소비자를 위한 친절한 제품 설명. 오설록의 새로 바뀐 제품 포장은 볼 때마다 칭찬하렵니다.

 

 

 

 

 

 

 

 


녹차는 불발효자, 홍차는 완전발효차, 청차는 반발효차, 흑차는 후발효차로 분류됩니다. 반발효차인 청차는 녹차에 가깝게 약발효시킬 수도 있고 홍차에 가깝게 강발효시킬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의 '발효'는 '산화oxidation'로 바꿔 읽으셔도 됩니다. 이 글 바로 전에 소개해 드린 '청우롱'은 발효도 30%, 오늘 소개해 드릴 '제주화산암차'는 발효도 50% 청차인데, 찻잎을 건조시키고 나서 구수한 "볶은 곡물 향미"를 내기 위해 '홍배roasting'를 별도로 해줍니다.

 

 

 

 

 

 

 

 6대 차류의 제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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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암차의 제다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또 다른 유명한 청차인 철관음(鐵觀音)과 기본 제다법은 같으나 철관음은 위조와 홍배를 무이암차에 비해 약하게 합니다.


① 채엽 採葉 plucking
잎 따기. 녹차용은 차나무 가지 맨 위쪽에 있는 어린 잎을 이른 봄에 딸수록 고급으로 쳐 주나, 청차용으로는 좀 더 성숙한 잎을 써야 하므로 녹차용 잎보다 2-3주 늦게, 싹이 다 펴진 다음 펴진 싹을 포함해 세 개의 잎을 채엽. 차나무 수종 자체가 아예 청차에 적합. 무이암차는 주로 기계 채엽을, 철관음은 낫을 이용해 손으로 채엽.


② 위조 萎凋 wilting
시들리기. 찻잎들을 얇게 펼쳐 햇볕에서도 잠깐 말리고, 지름 큰 대나무 채반에 담아 실내에서도 말려 줌.


③ 주청 做青 making green (요청 搖靑
shaking and bruising + 량청 凉靑 cooling)
산화시키기. 찻잎을 대나무 채반에 담고 흔들어 주거나 원통형 기계에 넣고 회전시켜 찻잎들끼리 서로 부딪히게 하면 잎 가장자리에 멍이 들면서 그 부분에 산화가 일어남. 그리고 나서는 산화할 시간을 충분히 주기 위해 온습도 조절을 하면서 휴식기를 가짐. 이 두 과정의 강도와 반복 회수를 통해 발효(산화)의 정도를 조절함. 약발효차들은 이 과정을 약하게 함.


④ 살청 殺靑 fixing
산화효소 죽이기. 산화가 알맞게 일어났다고 판단되면 열을 가해 찻잎이 가지고 있는 산화효소의 활동을 억제.


⑤ 유념 揉捻 rolling
비비기. 열로 인해 찻잎의 수분이 날아가 부드러워졌을 때 손이나 기계로 비벼 찻잎 내의 세포벽을 파괴해 풍부한 방향유를 배어 나오도록 하는 작업. 동시에 원하는 모양으로 성형. 즉, 차의 향미와 외관을 결정하는 과정.


⑥ 건조 乾燥 drying
향미와 품질을 고정시키는 작업. 오래 보관해도 탈이 나지 않도록 홍건기로 충분히 건조. 여기까지 해서 1차 가공 완성.


⑦ 정제 精製 refining
1차 가공된 찻잎(毛茶)을 펼쳐 놓고 누렇게 뜬 잎(황편)과 줄기, 기타 이물질 제거. 그래서 무이암차나 중국 철관음의 우리고 난 잎(엽저)을 보면 줄기 없이 잎만 있음.


⑧ 홍배 烘焙 roasting
구수한 "볶은 곡물 향기"를 내기 위해 찻잎을 굽는 과정. 재로 덮은 숯불에 대나무 용기를 얹고 찻잎을 담아 굽는 것은 특별히 '탄배(炭焙)'라 부르며 값을 더 쳐 줌. 곡물 향기 대신 싱그러운 꽃향과 과일향을 살려야 하는 청차들은 이 과정을 약하게 하거나 생략하고, 무이암차(武夷岩茶) 계열 청차들은 이 과정을 공들여 여러 번 함. 이를 통해 무이암차 특유의 '암운(岩韻)'이 생김.

 

 

청차 중 유명한 안계철관음(安溪鐵觀音)과 무이암차들은 제다법이 같으나 전자는 후자에 비해 주청과 홍배를 약하게 합니다. 성형에서도 차이가 나는데, 안계철관음은 보자기에 싸서 압착해 굴려 주어(포유包揉) 찻잎을 동글동글한 잠자리 머리 형태로 만들고, 무이암차들은 비벼서 길죽하게 비틀린 모양을 만듭니다.


☞ 차쟁이 진제형 님의 우롱차학 개론

☞ 무이암차 이야기 1/6

무이암차 이야기 2/6

무이암차 이야기 3/6

무이암차 이야기 4/6

무이암차 이야기 5/6

무이암차 이야기 6/6

☞ 청차에 성숙한 잎을 쓰는 이유, 찻잎을 못살게 구는 이유

안계철관음 시음기

 안계황금계 시음기

☞ 대홍포 시음기

☞ 봉황단총 시음기

 


자, 중국의 무이암차는 이렇고요, 우리는 지금 오설록의 제주암차에 대해 알아보던 중이었습니다.

 

 

 

 

 

[찻잎 감상용 그릇으로 멋대로 전용한 기차게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 작은 간식 접시 - 불량소녀 님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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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잎이 궁금해 티백에서 꺼냈습니다. 티백 한 개의 양입니다. 가뜩이나 작은 찻잎이 찢겨 있고 부서져 있기까지 하니 아쉽긴 하나, 어차피 기후도, 차나무 수종도 다르니 여건에 맞춰 제다한 것이겠지요. 건잎 향을 맡아 보니 집에 갖고 있는 대홍포와 비슷한 향이 납니다. 제법인걸요?

 

 

 

 

 

 

 



또 생산자가 시키는 대로 우려 봅니다. 으음... 이것도 찻잎 양이 적긴 한데, 너무 싱거우면 까짓거 티백을 두 개 쓰면 되죠.

 

1탕: 티백 하나 1.8g, 150ml, 우리 집 정수기 물, 90˚C, 2분
2탕: 1분 30초 (첫 탕보다 30초 줄여서)
3탕: 2분 30초 (첫 탕보다 30초 늘려서)
4탕: 3분 (전 탕보다 30초 늘려서)
5탕: 실온의 물로 냉침

 

 

 

 

 

 

 

 


오설록 차들은 '바디감'과 뒷심이 약한 편이니 자사호 꺼낼 생각은 일절 마시고 유리나 자기 차호에 우리세요. 차 기운이 약해 자사호에 우리면 맛과 향을 숨구멍 많은 차호에 홀딱 빼앗겨 버립니다. 자사호를 상대할 강단이 부족합니다. 유리 차호에도 우려 보고 자사호에도 우려 보았는데 맛과 향 차이가 많이 납니다. 차맛이 차호
의 재질에 영향을 받는다는 게 신기하죠.

 

한 모금 마시고 향뿐 아니라 맛도 제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향수로 치면 '톱 노트top note'가 대홍포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입니다. 대홍포에서 나는 말린 귤껍질 향과 맛있는 단 과일맛은 없고 구수한 탄배향으로 그냥 끝나 버립니다. 맛이 일차원적이랄까요. '미들 노트'와 '라스트 노트'가 없이 톱 노트가 그냥 끝까지 갑니다. 뭐, 이것만 해도 어딥니까. 처음 만들어 선보이는데 이 정도면 훌륭한 거죠. 그래도 볶아서 손쉽게 구수한 맛을 얻은 일본 호지차 수준에 머물지 않고 웅숭깊으면서도 다채로운 향미를 선보이는 중국 무이암차에 근접하려면 좀 더 애를 써야겠습니다. 제주화산암차도 값은 만만찮게 비싸니까요. 3탕까지는 마실 만합니다. 

 

참, 오설록 청우롱에서 느꼈던 그 '냉동고 크린백' 향이 이 차의 건잎과 첫 탕에서도 약하게 납니다. 민트향과 살짝 닮아 있는 잡내인데, 청우롱 마실 때만 해도 제다 과정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다가 오늘 이 차에서도 같은 잡내가 나는 걸 보고는 혹시 티백을 싼 은박 포장재 자체의 냄새는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은박 비닐로 진공 포장한 중국차 잎에서도 포장재의 인공적인 화학물 향을 자주 느끼곤 하거든요. 혹 티백 향일지도 모르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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