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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먹는 음식, 안미츠 앙미츠 (あんみつ, 餡蜜)

단 단 2023. 5. 20. 09:00

 

 

 

일본 도쿄의 유명 디저트 집 음식들.
(클릭하면 큰 사진이 뜹니다.)



 

 

 

 

 

안미츠 원조 가게라는 도쿄의 〈긴자 와카마츠銀座 若松〉.

 

 

 

검색을 해보니 '안미츠'라는 한글 표기가 가장 많이 보이는 것 같고, '앙미츠', '안미쯔', '안미쓰' 등 다른 표기들도 보입니다. 앞 글에서는 같은 팥을 두고 '버터'라고 표기했으나 이 글에서는 '미츠'라고 쓰겠습니다. 빨간 완두콩과 각종 과일, 깍둑썰기한 우무를 넣은 미츠마메에 꼬를 곁들인다고 해서 줄여서 안미츠라고 부릅니다.

 

우뭇가사리의 겔을 만들 수 있는 성분을 이용하여 만든 묵인 우무를 깍둑 썰어 먼저 사발에 담고, 그 위에 찹쌀가루에 설탕과 물엿 등을 넣고 반투명하게 될 때까지 졸여 만든 일본식 찹쌀 과자인 규히(求肥, ぎゅうひ)와 말린 살구, 빨간 완두콩, 팥소 등을 얹어, 별도로 낸 검은 시럽(쿠로미츠)이나 투명 시럽(시로미츠)을 끼얹어 먹는 음식입니다. 과일을 올린 것은 '후르츠 안미츠', 아이스크림이나 생크림 올린 것은 '크림 안미츠', 흰색 찹쌀 경단을 올린 것은 '시라타마(백옥) 안미츠'라고 합니다. 

 

우표에 이름을 떡 하니 남기게 된 이 집은 1930년에 안미츠를 최초로 냈다 하여 '원조' 소리를 듣는 유명한 집입니다. 우표에 담아 자자손손 기리려면 일본 우체국 측에서 원조에 대해 조사를 나름 철저히 했겠지요.

 

이 집의 광고 문헌에 따르면, 팥은 도카치(十勝, とかち)산, 빨간 완두콩은 후라노(富良野, ふらの)산, 우뭇가사리는 미야케지마(三宅島, みやけじま)산, 흑당은 아마미오시마(奄美大島, あまみおおしま)산을 쓴다고 합니다. 맛이 부족해 요즘은 아이스크림을 추가하는 집이 많아졌지만 원조 안미츠에는 아이스크림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과일은 ☞ 이 집의 후르츠 안미츠 실물 사진을 보니 조린 것으로 쓰고 있더군요. 가게에서 직접 맛내서 조린 거라면 반갑고, 깡통향 풀풀 나는 시판 통조림 과일이거나 플라스틱 통에 담겨 나오는 죽은 맛 과일이면 사양하고 싶습니다. 맛 덜 든 생과일이면 더 문제이고요.

 

 

 

 

 

 

 

 

 

이 글을 쓰려고 며칠 전에 동네 모찌방에서 사 먹은 안미츠입니다. 값은 1만 3천원. 안미츠는 계절별로 주제를 바꿀 수도 있는데, 지금은 봄이라고 벚꽃과 체리로 구성한 모양입니다. 이 전에는 딸기 안미츠를 냈던 것 같습니다.

 

생체리 두 알

생블루베리 두 알

뚝뚝 끊어지며 씹히는 찹쌀 과자 '규히' 두 개 (분홍색)

입안에 들러붙는 찹쌀 경단 '시라타마' 두 개 (흰색)

 거피해서 분홍색 입힌 건조하고 텁텁한 팥소(아이스크림 아님) 한 덩이와 물기 있는 거피 안 한 팥소 한 숟가락

 벚꽃 모양으로 찍은 연분홍색 질긴 젤리 한 개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밑에 흰색과 갈색의 1㎤ 정도로 깍둑 썬, 툭툭 끊어지는 우무가 가득 들었었습니다. 

 

예쁘죠?

 

맛은요,

 

 

 

 

 

 

 

 

 

에리나 등장.

 

(그릇 엎으며)

"마즈이!"

(不味い 맛없어) 

 

저 나이 꽤 많은데, 살면서 먹어 본 조립식 단 음식 중 이게 가장 맛없었습니다. 

 

안미츠를 '얼음을 뺀 빙수'라고 설명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빙수한테 사과하세요. 빙수나 파르페가 안미츠보다 백배는 맛있습니다. 파르페는 구성 요소들 각각의 맛이 안미츠의 그것보다 낫고, 빙수는 재료의 선택과 집중에서 오는 총합의 맛이 안미츠보다 월등히 낫지요. 

 

유명 가게들의 안미츠는 어떤 맛일지 모르겠으나, 사진을 보니 음식 자체가 맛있어서 가는 집이라기보다는, 고택이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몸과 마음을 잠시 적시다 오는 데 의의를 두는 곳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녀오신 분들은 맛 묘사 좀.) 

 

 

 

 

 

 

 

 

 

어릴 때 처음 먹어 보고는 두 번 먹을 맛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음식우표 소개하느라 하는 수 없이 한 번 더 먹어 보는 건데,

 

아아, 역시 아쉬운 맛.

Style over substance.

 

가게마다 그릇에 담는 구성품이 다르고 계절마다 또 달라진다고 하니 간혹 맛있는 조합도 나올 수는 있겠으나, 고작 두 번 먹어 본 일천한 경험에 의하면, 저한테는 참으로 밋밋한 음식입니다. 맛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무미無味합니다. 한 그릇 안에 "'texture'만 있고 'taste'는 없는" 요소가 너무 많아요. (→ 블친 더가까이 님 표현) 안미츠를 먹고 있으면 어떤 음식을 만들기 위해 늘어놓은 재료들을 그냥 하나하나 숟가락으로 떠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파르페처럼 각 재료들 맛이 좋은 것도 아니고요. 

 

과일과 팥.

과일과 찹쌀 경단.

이게 어울리나요?

빙숫집들이 빙수를 팥빙수와 과일빙수로 따로 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지요.

 

은 디저트 재료로 쓰기에는 다소 텁텁하나 고소한 맛이 있으니 참고 먹을 수 있습니다. 팥소 모찌와 붕어빵 좋아하고 팥빙수 좋아합니다.

 

조미 하나도 안 된 싱거운 시라타마도 한없이 늘어지면서 치아와 식도에 잔뜩 들러붙기나 하지만 이것도 뭐 참고 먹을 수 있습니다. 조미 하나도 안 된 싱겁고 단단한 규히도요.

 

우무가 이 음식에 있어 가장 큰 문제인데요, 이렇다 할 맛 없이 이에 닿자마자 툭 끊기고 조각조각 흩어져 맛도 식감도 좋지 않습니다. 그릇 밑에 잔뜩 깔린 무미한 묵을 억지로 떠 먹고 있노라니 영국과 프랑스의 농축 과즙으로 만든 진한 맛의 젤리fruit juice jelly, pâtes de fruits가 생각 나 먹는 내내 '현타'가 옵니다. 내가 왜 이걸 돈 주고 사 먹고 있나. 맛이 터키쉬 딜라이트Turkish delight, locum만도 못해요. 안미츠는 이 우무가 점수를 다 깎아먹는 듯합니다. 차라리 '후르츠 칵테일'에 들어 있는 필리핀의 저 새콤달콤하면서 오돌오돌 재미있게 씹히는 코코넛 젤리nata de coco를 쓰는 게 맛도 식감도 훨씬 낫겠습니다.

 

 

 

 

 

 

 

 

 

안미츠에는 대개 까만 흑당 시럽을 내는데 이 집은 계절감을 살린다고 벚꽃청을 냈습니다. 벚꽃 가공품들 역시 색만 예쁘지 맛있지는 않지요. 시럽도 단맛만 낼 게 아니라 좀 더 복잡한 맛을 내면 좋을 텐데요.

 

시럽의 단맛을 씻어 내리라고 내준 녹차도 남한테 몇 번 우려서 냈던 찻잎을 재탕해 준 건지 맛이 지나치게 흐려 제 역할을 못합니다. 이건 이 집의 문제이겠지요.

 

과일은 풋내만 나는 맹탕 블루베리와, 새콤달콤해서 그나마 맛이 조금 나았던 체리를 올렸습니다. 체리는 벚꽃 안미츠의 주제가 되는 요소인데 비싸서 그랬는지 알도 작은 것을 너무 적게 넣었습니다. 

 

생과일은 잘 익어 맛있는 상태의 것만 손님 상에 올려야 합니다. 확률 낮은 도박과 같죠. 최상급의 생물 재료는 미슐랑 스타 레스토랑들도 확보에 사활을 걸잖아요. 생과일 쓴 '후르츠 안미츠'는 여간해서 맛있기가 힘들겠고, 통조림 과일을 올린다 해도 〈알쿠니아alcurnia〉 황도 급이 아닌 이상 손님한테 욕 먹기 딱 좋습니다.   

 

어설프게 익은 생과일이나 통조림 과일을 빼고 떡, 팥, 밤, 고소한 깨로 만든 경단 혹은 과자, 쌉쌀한 맛차 아이스크림 등을 담아 낸다면, 또, 식감도 좋지 않고 무미한 일본식 젤리 대신 맛 잘 낸 젤리를 쓰고 시럽 맛을 개선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맛있을 수 있겠습니다. 일본 여행기들에서 이런 안미츠를 가끔 보는데 맛있어 보입니다.

 

제 인생에서 두 번 경험해 본 과일 안미츠가 두 번 다 맛이 없어서 먹는 내내 'Could be way better! Could be way better!' 탄식이 절로 나왔었습니다. 각 재료의 맛도 시답잖고 재료들 간 궁합도 좋지 않아 제게는 참 매력 없는 음식으로 기억되는 게 이 안미츠인데, 입맛에 맞는 재료들로 손수 조립해 먹으면 좀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안미츠를 내는 집이 드물어 일단 내는 집이 생기면 호기심 많은 손님들로 붐빕니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음식이거든요. 

 

 

 

 

 

 

 

 

 

 

구성 요소가 크림 안미츠와 비슷한 영국의 트라이플trifle입니다.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짐작하셨겠지요? 더 말 않겠습니다.

 

☞ 영국 디저트의 끝판왕, 트라이플을 집에서 만들어 봅시다

 

일본음식은 서양음식과 다르니 다른 기준으로 평가를 해야 한다며 역정 내실 분 계시겠고, 재료 하나하나 준비하는 데 시간과 공이 많이 드니 이 값은 받아야 한다 역설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건 만드는 사람 입장이고, 손님 입장에서는 피땀 흘려 번 돈 이왕이면 더 맛있는 음식에 쓰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티푸드와 디저트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 세상인데요.

 

"통조림 과일에 흑설탕 시럽 끼얹은 걸 이 돈 주고 사 먹는다고?"

"한천에 팥에 설탕 시럽이면 사실상 양갱을 분리해 펼쳐 놓은 것 아니냐?"

"이게 돈 주고 사 먹을 맛인가?"

 

남초 커뮤니티에서 안미츠를 두고 하는 말들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습니다.

좋아한다는 분들도 물론 계셨고요. 이런 분들은 솜씨 있게 잘 조합한 안미츠를 드셔 보신 운 좋은 분들입니다.

 

이날 같이 안미츠를 먹었던 지인은 이 집 안미츠가 하도 불만족스러워 집에 돌아가는 길에 비슷한 값의 〈하겐다즈〉 딸기맛 아이스크림을 한 통 사서 마구마구 퍼 드시고 주무셨다고 합니다. 저는 여고 앞 '샬랄라'한 음료 가게에 가서 딸기 라떼를 사 먹었습니다.

 

맛없는 음식 이야기는 길게 해서 좋을 게 없으니 안미츠 글은 여기서 마치렵니다. 맛 덜 든 과일과 우무만 빼도 그럭저럭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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