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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음식, 파르페 (+ 과일 빙수, 선데이, 이튼 메스, 탕후루, 트라이플) 본문
▲ 일본 도쿄의 유명 디저트 집 음식들.
(클릭하면 큰 사진이 뜹니다.)
▲ 도쿄 긴자 〈시세이도 파라Shisheido Parlour〉의 스토로베리 파페parfait.
(발음이 ㅋㅋ)
여러분, 파르페 그림 보니 반갑지 않으세요?
오늘은 파르페 우표를 놓고 파르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야, 싱크로율 높네요.
얼마나 유명하면 미국에 사시는 중년의 교포 남성분께서 이걸 드시러 도쿄에 여행을 다 가셨을까요?
☞ [사진 출처] 추억은 방울방울, 도쿄 시세이도 파라의 고전적 파르페
제가 중학생 시절에 용돈 왕창 들여 허세 부려가며 사 먹던 파르페는 이보다 더 화려하고 복잡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과자도 꽂혀 있었고요(주로 '웨하스'), 쵸콜렛도 박혀 있었고요, 빨대에 요란한 종이 장식도 붙어 있었고요, 빨대 옆에는 기특하게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왜색 짙은 대나뭇살 종이 우산도 꽂혀 있었고요, 과일은 통조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때는 통조림 과일이 귀해 선물로 주고받던 시절이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일본 사람들이 하도 열심히들 먹어대 파르페는 이제 이름과 달리 일본음식처럼 느껴지죠. 누리터에 올라온 한국인들의 일본 여행기에서 파르페 사진을 정말 자주 봅니다. 술을 마시고 나면 마지막에 파르페(シメパフェ, 시메파페)를 먹는 희한한 관습도 있다면서요? 술 자체도 열량이 높고 안주도 열량이 높은데 파르페까지 먹으면 췌,췌장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 [기사] 일본에서 유행하는 해장 문화, '시메파페'
한국에서는 과일 빙수가 대세가 되었고, 파르페는 이제 옛날 음식, 추억의 음식으로나 통합니다. 한겨울에도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겨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표현도 다 있는 한국에서 미지근한 파르페는 과일 빙수에게 자리를 순순히 내줄 수밖에요. 파르페는 게다가 좁고 긴 멋쟁이 그릇에 층 내서 담아 주니 먹을 때 많이 불편한데, 빙수는 얕은 사발을 써서 좀 낫습니다.
저는 이 단출한 재료의 딸기 빙수가 얼마나 영리해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생딸기 대신 당절임 딸기를 써 시럽도 확보하고, 과일맛도 농축시키고, 당도도 보강했어요. 평범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아닌 프로즌 요거트를 얹어 맛도 더 좋고요. 얼음, 당절임 딸기와 그 시럽, 프로즌 요거트, 단 세 가지 재료로 파르페 부럽지 않은 맛을 내고 있는 1만원짜리 빙수라니, 과연 인기 있을 만하죠. (숙명여대 앞의 오래된 딸기빙수 집입니다. 대학 때 동기들과 원정 가 사 먹곤 했습니다.) 저도 파르페 애호가였는데 한국에서 과일 빙수가 파르페를 밀어내고 왕좌를 차지한 이유는 수긍이 갑니다. 펄펄 끓는 뚝배기 음식 먹고 나서 얼음 음료 마시고, 좌우간 화끈한 민족이에요. '불가마'에서 목욕하고 쉬는 한국인들 때문에 지옥불 온도도 높여야 할 판이라잖아요.
무더운 날이 드물어 차가운 음식은 잘 즐기지 않고, 그래서 홍차의 나라이지만 아이스 티iced tea를 보기 힘든 영국에서는 딸기를 가지고 이걸 해먹습니다. '이튼 메스Eton Mess'입니다. 아이스크림도 얼음도 필요 없어요. 이것도 당절임 딸기와 그 시럽 (혹은 퓨레), 휘핑한 생크림, 바삭한 머랭, 이 세 가지가 재료의 전부라서 쉽게 해먹을 수 있고 맛도 좋습니다. 한국에서도 이튼 메스를 내는 영업집이 보이는데, 제발 줄 맞춰 예쁘게 담지 마십시오. 이튼 메스는 이름처럼 '메씨'한 상태일수록 맛있는 음식이니 가볍게라도 버무려 내는 게 맞습니다.
얼마 전에 소개해 드렸던 중국의 탕후루입니다. 끓고 있는 뜨거운 설탕 시럽에 잠깐 담갔다 꺼내므로 과일 표면이 순식간에 당절임됩니다. 여러 딸기 음식들을 줄줄이 소개하는 이유는, 생딸기가 아닌 당절임 딸기를 쓰는 게 더 맛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 건강식품인 과일에 설탕막을 씌워 일견 끔찍해 보이나 보기보다 맛있는 탕후루
미국의 아이스크림 선데이sundae를 빼놓으면 안 되지요. 이것도 딸기를 쓴 변주가 있을 수 있겠는데, 저는 선데이는 꼭 이렇게 생긴 그릇에 먹고 싶습니다. 그릇만 봐도 기분이 좋아져요. 미국인들은 이 선데이나 소위 '아메리칸 파르페'가 일본에서 흔히 보는 것 같은 저 파르페의 원조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시간 들여 층을 내는 공정과 구성 요소들을 생각하면 영국의 트라이플trifle이 원조로 더 타당해 보입니다. 과일 즙으로 만든 젤리 층, 커스타드 층, 크림 층, 과일 층, 비스킷이나 스폰지 층 등 위의 딸기 파르페와 구성이 거의 같죠. 트라이플은 영국에서 1585년에 이미 요리책으로 기록이 남은 오래된 디저트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층을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이렇게 생긴 그릇을 씁니다. 완성된 모습은 층층이 질서정연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여럿이 나누어 먹으려면 이것도 이튼 메스처럼 순식간에 난장판이 됩니다. ㅋ
그래서 이렇게 아예 1인용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1인용이라도 그릇은 위에서 본 큰 트라이플 그릇의 축소판을 써서 정체성을 살려 줍니다. 트라이플 그릇, 선데이 그릇, 파르페 그릇이 다 다르죠. 다 갖고 있습니다.
☞ 영국 디저트의 끝판왕, 트라이플을 집에서 만들어 봅시다
한국에도 파르페를 (제대로 잘) 내는 집이 있을까요? 아주 오랜만에 '올드 패션드'한 파르페를 먹고 싶어졌는데, 내는 집을 못 찾으면 트라이플 레서피로 그릇만 바꿔 직접 만들어 먹어야겠습니다. 종이 우산 꼭 꽂아서 먹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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