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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 「후광의 분실」(Perte d'auréole)(1869)|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1894) 본문
보들레르 「후광의 분실」(Perte d'auréole)(1869)|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1894)
단 단 2024. 6. 13. 17:02
▲ 영감이 사 준 2024년 생일 선물.
기자가 신간 소개를 하도 잘 써서 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는.
☞ [책과 생각] 보들레르-랭보 ‘견자의 시학’이 연 프랑스 현대시
프랑스 작곡가 끌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의 음악을 서양음악사에서는 '인상주의Impressionism'로 명명합니다. 동시대 미술 사조인 '인상주의 회화'에서 용어를 따 왔는데,
▲ Sunrise, 1872, Claude Monet, Oil on canvas, 48 cm × 63 cm (18.9 in × 24.8 in), Musée d'Orsay, Paris.
통념과 달리 드뷔시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았고 그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지도 않았습니다. 드뷔시 음악을 들을 때의 느낌이 인상주의 회화를 볼 때의 느낌과 비슷해서 '인상주의 음악'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지금까지 음악 애호가들, 심지어 음악 전공자들까지도 "인상주의 회화에서 영향받은"이라는 표현을 서슴지않고 해댑니다. 드뷔시를 다룬 음악 석사학위 논문들에도 인상주의 회화 이야기를 다들 한보따리씩 늘어놓고 있죠. 드뷔시 생전에도 이런 일이 발생하곤 했는데, 이에 대해 그는 불편해하면서
"내 음악은 인상주의 회화가 아니라 상징주의 시에서 영감을 얻었으니 상징주의 음악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겠소."
라는 견해를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습니다.
드뷔시 음악에서 느껴지는 '흐릿함', '불명료함'은 인상주의 회화가 아니라 상징주의 시에서 그 원천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위의 서평 속 베를렌(Paul Verlaine, 1844-1896)의 시 「시학La poétique」의 일부를 옮겨봅니다. 상징주의 선언문 같은 시입니다.
"또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오해의 여지가 없는 말을 골라서 사용하는 일이지./ 불확실한 것이 확실한 것과 결합되는/ 회색빛 노래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네."
"명료성은 상징의 적이다. 상징이 상징으로 살아나려면 명료성을 넘어서야 한다." (서평 중에서)
그러니까, 드뷔시 음악을 논할 일 있는 음악인들은 동시대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조금이라도 알아야 입을 뻥긋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게 좀 어려운 일입니까. 불문학자들의 평생의 연구 주제인 상징주의 시를 음악인이 잠깐 공부해서 뭘 얼마나 알 수 있겠어요. '오, 이 시 재미있네?'만 해도 감지덕지죠.
상징주의 시와 프랑스 현대 시의 원류라는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의 시들은 저도 좋아하는데, 그중 특별히 더 좋아하는 게 몇 개 있습니다. 다음은 그의 산문시 중 하나인 「후광의 분실Perte d'auréole」(1869).
후광의 분실
아니 이런! 여기서 당신을 만나다니? 이런 좋지 않은 곳*에 당신이 있다니! 고급술만 마시고, 암브로시아 음식만 먹는 사람인데! 정말 놀라운 일이군.
— 여보게, 자네는 내가 말이나 마차를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알지 않나. 조금 전 급히 큰길을 지나오면서 흙탕물을 건너뛰다가 사방에서 동시에 죽음이 맹렬하게 달려오는 그 움직이는 혼란에 휩싸여서 갑작스레 이동하다가 그만 머리에서 후광이 미끄러져 내려와 마카담 포장도로**의 진창 속에 떨어뜨리고 말았네. 그런데 그걸 다시 찾아 쓸 용기가 없었네. 괜히 그러다가 낙상이나 당해서 크게 다치는 것보다 오히려 이렇게 된 것이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했네. 이제 나는 남몰래 산책도 할 수 있고, 저속한 행동도 할 수 있고, 보통 사람들처럼 방탕한 생활에 빠질 수도 있겠지. 보다시피 자네와 마찬가지로 여기 있게 된 걸세.
— 그래도 후광을 분실했다고 광고를 내거나 경찰에 신고해서 찾아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네. 나는 여기서 이렇게 지내는 게 좋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자네뿐이지. 게다가 이젠 후광의 품위가 지긋지긋하다네. 어떤 엉터리 시인이 그걸 주워서 뻔뻔스럽게 머리에 쓰고 다녀도 난 기쁘게 생각하겠네.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가! 더군다나 내가 행복한 사람을 비웃을 수 있다니! X를 생각하고 Z를 생각해보게. 그렇지 않은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 공쿠르의 일기에 의하면, 어떤 창녀 집에서 나오던 보들레르가 그곳을 막 들어가려고 하던 평론가 생트뵈브와 마주쳤다는 것이다. 생트뵈브는 너무나 반가워서 마음을 바꾸어 보들레르와 술을 마시러 갔다고 한다.
** 마카담 포장도로는 빗물을 배수하기 위해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돌을 기초 위에 깔아놓은 것이다. 커다란 돌과 자갈을 다져서 만든 이 도로는 먼지가 많이 쌓이고, 비가 오면 물이 잘 빠지지 않는 곳에 진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Perte d'auréole
« Eh ! quoi ! vous ici, mon cher ? Vous, dans un mauvais lieu ! vous, le buveur de quintessences ! vous, le mangeur d’ambroisie ! En vérité, il y a là de quoi me surprendre.
— Mon cher, vous connaissez ma terreur des chevaux et des voitures. Tout à l’heure, comme je traversais le boulevard, en grande hâte, et que je sautillais dans la boue, à travers ce chaos mouvant où la mort arrive au galop de tous les côtés à la fois, mon auréole, dans un mouvement brusque, a glissé de ma tête dans la fange du macadam. Je n’ai pas eu le courage de la ramasser. J’ai jugé moins désagréable de perdre mes insignes que de me faire rompre les os. Et puis, me suis-je dit, à quelque chose malheur est bon. Je puis maintenant me promener incognito, faire des actions basses, et me livrer à la crapule, comme les simples mortels. Et me voici, tout semblable à vous, comme vous voyez !
— Vous devriez au moins faire afficher cette auréole, ou la faire réclamer par le commissaire.
— Ma foi ! non. Je me trouve bien ici. Vous seul, vous m’avez reconnu. D’ailleurs la dignité m’ennuie. Ensuite je pense avec joie que quelque mauvais poëte la ramassera et s’en coiffera impudemment. Faire un heureux, quelle jouissance ! et surtout un heureux qui me fera rire ! Pensez à X, ou à Z ! Hein ! comme ce sera drôle ! »
백오십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무뎌진 예술가의 정신을 바짝 벼려주는 칼갈이 같은 양반.
말 나온 김에,
드뷔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교향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1894)을 들어봅시다.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1842-1898)의 장편시 「목신의 오후L'après-midi d'un faune」(1876)에 붙인 관현악곡으로, 시적인 느낌, 그림 같은 느낌의 관현악곡을 '교향시symphonic poem, tone poem'라고 부릅니다. "님프의 아름다운 육체를 사모하는 목신(牧神:半獸身) 판Pan의 관능적인 몽상을 묘사하여 육욕의 허무함을 순수한 미적 세계 속에서 상징"한 작품이랍니다. 관능미의 대가 드뷔시가 이 시를 그냥 지나칠 리 없지요.
이 곡의 오케스트라 음색을 놓고 음악인들은 "너무나 드뷔시적이다", "너무나 프랑스적이다"라고 말합니다. 현악기가 아닌 목관악기들이 돋보이도록 곡을 썼으며, 하프harp도 드뷔시가 특별히 사랑했던 악기입니다. 드뷔시는 혼자서 '인상주의' 음악 사조를 대표하기도 하고, 프랑스적 색채의 대명사로 통하기도 하는, 참으로 성공한 작곡가입니다.
참고로, 상징주의 시인들은 불명료함과 상징성을 표현하기 위한 최적의 예술 매체로 '음악'을 꼽고, 음악의 위대성을 논하곤 했습니다. (으쓱으쓱) 시의 음악성 또한 중시했습니다. ■
☞ 여행 갈 돈이나 시간이 없는 자는 스페인풍 음악 들으며 스페인 과자나 으적으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