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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치즈 ◆ 웬즐리데일 Wensleydale 본문

영국 치즈

영국 치즈 ◆ 웬즐리데일 Wensleydale

단 단 2014. 5. 28. 00:00

 

 

 

 북요크셔 North Yorkshire.

 

 

 

 

 

 

 

 

 



아, 웬즐리데일.


이름이 예쁘죠? 지극히 잉글랜드적인 어감이죠. '데일dale'은 '산골짜기'를 뜻합니다. 잉글랜드 북부에서 쓰는 용어로, 문어체스러운 느낌이 좀 있다네요. 이 치즈는 1150년경부터 만들어오던 요크셔 지역의 전통 치즈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요크셔 중에서도 북요크셔 쪽이고요. 지금은 수요가 많아 영국 전역에서 만들고 심지어 외국에서도 모방하고 있지만, 요크셔 지역에서 만든 웬즐리데일은 특별히 '요크셔 웬즐리데일'로 이름을 붙일 수 있도록 유럽연합에 의해 지리적표시보호PGI 제도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사진에 있는 치즈 포장에도 'Yorkshire Wensleydale'이라고 써 있죠. 아무나 이런 이름을 갖다 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유럽연합(EU)의 지리적표시 등록제도

EU는 지리적표시를 원산지명칭보호(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 PDO)와 지리적표시보호(Protected Geographical Indication: PGI)로 구분하여 운용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AOC'나 이탈리아의 'DOC' 스페인의 'denomination de origen'은 모두 자국어로 원산지명칭보호(PDO)를 의미합니다.


PDO와 PGI의 차이점

원산지명칭보호(PDO)는 원료의 생산과 가공과정 모두가 해당지역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지리적표시보호(PGI)는 생산, 제조 및 처리과정 중 어느 하나라도 지역과 연계성이 있으면 이 범주에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원료를 외지에서 가져오더라도 어느 지역의 특수한 제조방법에 의해 생산되면 PGI에 해당되며 보호 수준은 PDO와 동일합니다. '요크셔 웬즐리데일'의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유럽연합으로부터 PGI 인증을 받고 
웬즐리데일 모형을 세우며 즐거워하는 요크셔의 웬즐리데일 치즈 장인들. 

"가짜는 가라, 우리가 진짜다!"

 


웬즐리데일의 기원은 이렇습니다. 프랑스 시토 수도회의 수도승Cistercian monks들이 어떤 영문인지는 몰라도 프랑스 땅을 떠나 이 영국에 건너와서는 북부까지 올라가 수도원을 세웁니다. 1150년경의 일입니다. 자기들이 보유하고 있던 치즈 제법을 농가 아낙네들한테 전수했다고 하죠. 본래 양젖으로 만들던 치즈였으나 17세기까지 소젖으로 점차 바뀌게 되고 제조법도 달라져, 지금은 애초의 시토 수도승들의 치즈와는 많이 다른 치즈가 되었을 거라고 추측들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무것도 안 든 이 플레인 버전보다 블루 치즈 버전인 '블루 웬즐리데일'이 먼저 존재했었다는 사실입니다. 농가에서 아낙네들이 만들던 것이니 지금처럼 치즈 장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치즈들처럼 완벽했을 리가 없었겠죠. 치즈가 숙성하는 동안 수분이 증발해 마르면서 갈라지는 일이 빈번했는데, 속살paste이 공기에 노출되니 푸른곰팡이가 여기저기 필 수밖에요. ☞ 블루 웬즐리데일은 예전에 소개를 해 드렸습니다.

 

 

 

 

 

 

 


"이랬다 저랬다, 여자들의 변덕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넋두리 중인 월리스 씨와 토닥토닥 위로하는 그로밋.
앞에 놓인 블루 치즈는 아마도 스틸튼이나 
블루 웬즐리데일 둘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부침도 많았습니다. 명맥이 끊어질 뻔하다 되살아난 적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경제 공황기에는 웬즐리데일을 독점으로 만들던 치즈 농장이 파산 상태에 이르기도 했었고, 2차 대전 기간과 이후 한참 동안은 또 식량배급제를 하느라 온 나라의 우유는 모두 '내셔날 체다' 만드는 데 동원이 돼 생산이 중단되기도 했었지요.


사람들의 뇌리에서 차츰 잊혀지고 몇 안 남은 웬즐리데일 생산자들이 고전을 하고 있을 무렵, <월리스와 그로밋Wallace & Gromit> 클레이 애니메이션이 탄생을 하게 됩니다. 월리스 씨가 치즈 애호가로 설정이 돼 있는데, 이 양반이 극중에서 웬즐리데일을 찾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이로 인해 잊혀져 있던 웬즐리데일을 너도나도 다시 찾기 시작, 지금은 어느 수퍼마켓 매대에서든 이 치즈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론사들이 제작자에게 달려가 웬즐리데일 치즈를 언급하게 된 이유를 물었습니다.

 

"제작자님, 웬즐리데일 애호가이신가요?"

 

그랬더니, 아, 이 양반 하는 소리가


"아뇨, 실은 잘 모르는 치즈인데, 마침 극중 배경이 요크셔인데다 이름이 예쁘길래..."


꽈당.

 

 

 

 

 

 

 

 



웬즐리데일은 제가 영국 와서 가장 많이 사 먹어 본 치즈들 중 하나입니다. 대개는 과일이 박힌 맛치즈들을 사서 간식 삼아 먹곤 했지요. 사진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안 든 플레인 버전입니다. 1930년대 경제 공황기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웬즐리데일 치즈를 구한 '킷 칼버트' 씨를 기린 프리미엄 제품입니다. 천에 싸서 14주 숙성시킨 제품이고, 맨앞 사진에 있던 것들은 숙성 기간이 짧은 어린 웬즐리데일입니다. 킷 칼버트 웬즐리데일은 포장에 써 있듯 잘 부서지면서도crumbly 세련되고rounded, 부드러우면서smooth 알찬 질감close texture에, 버터스코치의 고소하고 단 맛이 은은히 납니다. 신선한 버터 맛에 기분 좋은 요거트의 산미도 느껴집니다. 이건 지난 2월에 사 먹어 본 것이었고요,

 

 

 

 

 

 

 

 



같은 치즈를 5월에 다시 사 먹어 보았습니다. 같은 제품인데도 맛이 조금 달라졌더라고요. 무생물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편차가 있을 수 있지요. 껍질에 또 천 자국이 보이죠? 전통 방식으로 공들여 수작업 했다는 소립니다. 이번 것은 신선하고 고소한 버터 맛이 덜 나고 탈렛지오Taleggio풍의 누룩yeast 맛이 살짝 나면서 질감이 좀 더 단단했습니다. 지난 번것보다는 숙성이 더 됐다는 소립니다. 같은 치즈라도 이렇게 계절에 따라, 배치batch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게 또 치즈 시식의 즐거움 중 하나가 되곤 합니다.

 

 

 

 

 

 

 

 



"Apple pie without cheese is like a kiss without a squeeze."
영국의 속담입니다. 애플 파이를 치즈 없이 먹는 것은 애인을 꼭 끌어안지 않고 키스하는 것과도 같다. 애플 파이를 먹을 때는 반드시 치즈를 곁들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치즈를 곁들이란 소리일까요?

 

대개는 이 플레인 웬즐리데일이나 화이트 스틸튼을 곁들입니다. 요크셔 사람들은 애플 파이의 진정한 친구는 웬즐리데일 하나밖에 없다고 주장을 하죠. 화이트 스틸튼하고도 먹어 보고 이렇게 웬즐리데일하고도 먹어 봤는데요, 다쓰 부처는 치즈와 애플 파이를 같이 먹는 게 특별히 더 맛있다는 느낌은 안 들었습니다. 칼로리만 늘죠.

 

치즈를 요리에 쓰는 건 좋아하는데, 치즈를 생으로 먹을 때 무얼 곁들인다는 게 갈수록 귀찮아집니다. 맛을 온전히 음미하는 데 방해될 때가 많아요. 치즈를 먹고 나면 시식기를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 집중해서 먹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다음 번엔 웬즐리데일 맛치즈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웬즐리데일 블루
☞ 웬즐리데일 스모크트
☞ 웬즐리데일 맛치즈들

 

 

 

 

 

 

 


웬즐리데일 생산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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