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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 스머프

외식하는 자여, 화 있을진저

단 단 2017. 4. 20. 00:00

 

 

 

 <서가앤쿡>은 식기가 왜 그 모양인가.

 

 

 

모임이 있어 <서가앤쿡>이라는 식당에 다녀왔습니다. 널찍하고 인테리어와 조명이 근사하길래 뭔가 제대로 내는 집인가 보다 했습니다. 음식 나온 것 보고 충격 받았습니다. 서빙 그릇들이 전부 경박, 말 그대로, 가볍고 얇은 스테인레스 스틸 재질입니다. 제가 집에서 요리할 때 쓰는 재료 준비용mise en place 스테인레스 스틸 그릇들도 이보다는 두껍습니다. 혹시 영화나 유튜브 영상에서 서양의 주방 장면 보신 적 있나요? 서양에서는 영업집 주방들이 재료 준비할 때나 이런 스테인레스 스틸 그릇을 쓰지요.


게다가, 저 볶음밥pilaf 담음새 좀 보십시오. 음식들은 또 얼마나 달던지. 한식과 중식 달게 내는 것만으로는 성에 안 차 이제는 양식도 달게 내기로 작정들을 했나 봅니다. 소스, 피클, 옥수수, 볶음밥, 심지어 튀김까지, 전부 답니다. 볶음밥과 튀김이 이렇게 단 건 또 처음 먹어 봅니다. 옥수수도 고소한 맛을 기대했는데 맥없이 달기만 합니다.

 

 

 

 

 

 

 

 

스테인레스 스틸 접시 위의 스테이크와 샐러드.

 


이태리(풍) 음식을 내는 집이면 토마토도 좀 맛있게 양념해서 내거나 꼬들꼬들 말린 것으로 내면 좋으련만 손쉽게 생토마토를 그냥들 냅니다. 생방울토마토는 심지어 장례식장에서 술안주로도 내더라고요. 익혀 먹어야 좋은 재료인데요.


파인애플도 그릴한 시늉이라도 냈으면 좋았을 텐데 저렇게 통조림 제품 같은 걸 그냥 냅니다. 한국인은 구운 고기에 생채소를 곁들이는 습관이 있지만 서양에서는 '구운 고기에는 익힌 채소'가 거의 불문률로 여겨지므로 양식을 낼 때는 한 번쯤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버거킹>에서도 파인애플은 구워서 냅니다.


그리고, 소스 종지 여러 개 늘어놓아 손쉽게 푸짐해 보이도록 하는 짓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튀김용이었을 텐데 가장 잘 어울리는 것 한 가지만 엄선해서 잘 만들어 올리면 됩니다. 반찬 그릇 잔뜩 늘어놓는 한식 차림에서의 고질이 양식에까지 옮겨 붙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테인레스 스틸 접시에 담긴 파스탕.

 


한국은 건조하고 먼지가 많으므로 저는 이제 국물 많은 한국식 파스타도 용인하기로 했습니다. 아, 목구멍에 낀 먼지 씻어 내려야죠. 그렇다 쳐도, 스테인레스 스틸 접시에 담긴 파스타라니요.

 

 

 

 

 

 

 

 

스테인레스 스틸 접시 위의 피짜 비스무리.

 


차림표에는 "피짜"라고 써 있었는데 발효 빵이 아니라 '플레이키'하게 부서져 떨어지는 매우 얕은 맛의 패이스트리였습니다. 패이스트리에 비싼 퓨어 버터를 썼을 리는 만무, 위에는 치즈 형상의 고무가 얹혀 있었습니다. 설사 자연 치즈를 썼다 하더라도 치즈를 저렇게 까맣게 태우면 맛 다 버립니다. 두 단계로 나누어 음식을 익힐 정성도 마음도 없는 거죠. 패이스트리가 다 굽힐 즈음 치즈를 뿌리면 될 텐데요.

 



*  *  *

 



이게 3월 초의 일이었는데, 그 후로 지금까지 외식을 한 오십번은 넘게 했을 겁니다. 한국의 외식 현장에서 느낀 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요,


격이 너무 없어요.


음식 맛은 둘째치고 일단 식기들이 너무 형편없어요. 스테인레스 스틸 아니면 멜라민. 영업집 식기는 이 두 가지로 이제 완전히 평정된 것 같더군요. 그리고 그 영혼 없는 식기들을 무신경하게 막 다루는 통에 식당이 너무 시끄럽습니다. 마치 건설 현장에 있다가 나온 것 같아요. 하도 시끄러워 밥을 먹는데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고, 밥을 먹고 나와서도 한참동안 귀가 얼얼합니다.

 

이것말고도 문제는 많습니다. 물기도 채 마르지 않은 젖은 수저나 그릇을 내는 집들이 있질 않나, 양념과 파를 점심 영업 시간 내내 뚜껑도 덮지 않고 식탁 위에 올려 놓는 집들이 있질 않나, 1인분에 1만원 이하 음식 내는 집 치고 주방 살림살이와 식자재가 손님들 밥 먹는 공간인 다이닝 홀에 어수선하게 널브러져 있지 않은 집이 없으며, 일행이 국물 하나를 가운데 두고 숟가락 같이 담궈 가며 먹어야 하는 집이 아직도 수두룩.


본식과 반찬의 궁합에 대해서도 대개의 식당들이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입니다. 비싼 한식집에서 비빔냉면을 주문했더니 김치와 깍두기를 반찬으로 내고 후식으로 맵디매운 수정과를 줍니다. 소화기관에 소화기가 필요할 판입니다. 김치말이 국수를 시킨 사람한테 반찬으로 김치를 또 줍니다. 김치찌개 시킨 사람한테도 김치를 냅니다. 짜장면 시킨 사람한테 생양파를 냅니다. 스타필드 하남에 입점한 <한일관>에서 1만 3천원짜리 불고기 일품 반상을 시켰더니 영업 개시 전에 미리 담아 놓아 표면이 마른 깍두기와 젓갈, 그리고 껍질도 까지 않은 과하게 익힌 달걀을 주면서 손님이 알아서 까 먹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물티슈도 안 줍니다. 요청하니 그제서야 마지못해 줍니다. 21세기에, 그것도 첨단 신축 건물에서 껍질도 까지 않은 달걀을 반찬으로 받아 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불고기 먹는 사람한테 양념도 안 한 달걀은 뭐하러 줍니까?

 

 

 

 

 

 

 

 

 I have a beef about this.

80년 전통을 자랑하는 <한일관>의 다 식어서 나온

12,900원짜리 불고기 '일품' 반상. 껍질도 안 깐 삶은 달걀이 반찬.
고기에서는 정육점 쉰내가 난다. 
세간의 칭송을 이해하기 힘들다.

 

 


할 말은 많으나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렵니다. 저는 '돌직구'형 인간이라서 영업집 이름을 막 밝히면서 흉봅니다. 좋았던 식당이나 제품들 역시 공평하게 상호나 회사명 들먹이며 가차없이 칭찬해 주고 광고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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