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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터눈 티] 선릉역 대치동 '모찌방 9月' 본문
여러분, 재난 지원금 어떻게 쓰고들 계십니까?
늘 이용하던 대형마트나 온라인 식료품점에서 쓸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책 시행 초기에는 잠깐 해보았으나, 실물 매장을 운영하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지금 이 방식이 맞는 거지요. 그래서 저도 동네에서 죄 탕진하기로 마음먹고 집 근처에 있는 작은 일본식 찻집에 가 보았습니다. 얼마 전에 ☞ 보름달 님의 연희동 화과자 집 방문기를 보고는 이 집이 생각 났거든요. 요즘은 모찌나 화과자 같은 일본 전통 과자들을 일본식 차들과 함께 깔끔하게 내는 게 또 새 유행인가 봅니다. 제대로 만들었다는 일본식 모찌는 어떤 맛과 식감일지, 제대로 준비한 맛차(抹茶)는 또 어떤 맛과 빛깔일지, 다과는 어떤 그릇에 어떻게 담아 내줄지 궁금했습니다. 온도도 안 맞는 미지근한 물에 성의 없이 티백 하나 덜렁 담가 머그에 내주면서 티백은 시간 되면 손님이 알아서 꺼내든지 말든지 하슈, 하는 기본이 안 돼 있는 집들이 하도 많아 찻주전자에 제대로 담긴 차를 받아 보겠다며 이 집에 갔습니다.
로고를 보고는 양갱과 모찌 파는 집이 맞구나 웃었습니다.
아유, 또 신나네.
보기 좋고, 귀엽고, 뭔가 재미있지 않나요?
땡글땡글한 모찌와 오하기가 종류별로 조로록.
왼쪽에서부터 네 번째(참쑥 모찌), 다섯 번째(밤 오하기), 여섯 번째(감태 오하기) 것을 주문해 보았습니다.
선택을 하면 진열품 바로 뒤에 있는 나무 상자에서 새 모찌와 오하기를 꺼내 줍니다.
보푸라기 붙은 저 감태 오하기가 저는 왜 이렇게 귀엽죠?
쇠똥구리가 열심히 굴려 만든 지푸라기 붙은 소똥 같아서 정겨워요. 꽥! 먹거리에 똥 비유!
맛차와 우리기 도구들도 팝니다. 집에 차 도구가 이것저것 다양하게 있기는 한데 이상하게 맛차 도구들만은 갖추고 싶은 생각이 안 듭니다. 고생해서 만드는 것만큼 맛있지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은데요. 맛차는 그냥 남이 준비해 주는 걸 마시고 싶습니다.
포장용 고급 보자기.
맛차 다구를 선물 받으면 받는 분이 기뻐하실까요?
저는 찻사발을 보고는 늠름하게 잘생긴 그릇이 생겼다며 기뻐할 것 같고, 차선을 보고는 '으음, 고생문이 열렸구나.' 심호흡 크게 한 번 할 것 같아요. ㅋ
취재가 실린 잡지를 가게 한 구석에 펼쳐 놓은 모습도 요즘 이집 저집서 많이 봅니다. 살아남기가 하도 힘드니 트럼펫은 이렇게 불 수 있을 때 실컷 불어 둬야 합니다. 암요.
'이용 안내 사항'이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재미있습니다. 2인 식탁이 세 개 놓여 있는 아주 작은 가게이니 이런 데서는 손님도 좀 눈치껏 행동해야 합니다.
차 준비하는 곳.
다과가 나왔습니다.
그릇 좀 보세요. 똑같은 그릇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이래서 일식 상차림을 좋아합니다. 밥상이든 다과상이든, 다채로운 그릇에 정성껏 담아 내는 것이 일식 상차림의 특장점이죠. 나무 종지에 담긴 맛견과류만 가게 측이 무료로 제공한 것이고 나머지는 다 저희가 주문한 겁니다. 양갱 네 종류도 '사진발'을 위해 추가해 보았습니다. 모찌, 오하기, 찻잔이 모두 둥글둥글한 것들이니 모나고 각진 것도 있어야죠.
다른 각도에서도 한 장.
분위기 조옿고.
게다가, 더이상 적절할 수 없는 것이,
가게 안에 사티(Erik Satie, 1866-1925)와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의 피아노 음악이 차례로 흘러나오는 겁니다. 두 작곡가가 활동하던 시기에 프랑스에 일본 공예품과 미술품 열풍Japonisme이 일었잖아요. 집집마다 막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 1760-1849) 판화도 걸어 놓고. 가게 주인분들이 이거 알고 선곡하신 걸까, 궁금했습니다.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한 장.
맛을 볼까요?
참쑥 모찌와 감태 오하기의 떡 부분 식감이 특이했는데, 지금까지 사 먹었던 쫄깃쫄깃 저항감 있게 씹히다 깔끔하게 꿀떡 목으로 넘어가는 한국식 찹쌀떡과는 매우 다른, 몹시 부드러우면서 끈기가 많은 찹쌀떡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심심찮게 들려 오는 찹쌀떡 먹다가 질식사한 노인 이야기, 새해에 떡국 먹다 질식사한 노인 이야기가 이 날 비로소 이해되었습니다. 한국 떡과 일본 떡은 식감이 많이 다르구나, 한국 떡은 치아를 힘들게 하고 일본 떡은 목구멍을 힘들게 하는구나, 깨달았죠.
이 말인즉슨, 잘 만든 일본식 찹쌀떡을 먹을 때는 정말 조심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저도 먹다가 살짝 위태로운 순간을 한 번 맞았었습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조로록 늘어선 모찌와 오하기를 보고는 황홀해져 권여사님 댁 갈 때 사 가야지 신나했는데, 노인들한테는 이것들말고 양갱을 사다 드리는 게 안전할 것 같습니다.
감태 보풀이 붙은 오하기는 섬세해서 약한 숨에도 보풀이 사방팔방 날립니다. 입술 여기저기에도 잔뜩 묻어 귀여운 모습을 연출하기 딱 좋고요. (영감, 너무 귀여웠다고.)
밤 오하기, 감태 오하기, 참쑥 모찌, 양갱 모두 정성껏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 대번 드는데 맛의 강도는 피아니시시모(ppp)입니다. 이건 제가 서양에 오래 살면서 버터, 달걀, 설탕 듬뿍 든 진한(f) 서양 제과 맛에 인이 박여 온 탓이겠지요. 우리 한국인들이 이럴 때 늘 쓰는 표현인 "달지 않고 은은한 맛"이 납니다.
차 주문 시 맛견과류를 기본으로 내주는 건 좋은 생각인 듯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서양 제과의 진한 맛과 바삭한 식감에 익숙하니 이 집에서의 음식 경험이 '희미'하고 '흐물흐물'한 것으로만 남지 않으려면 이거라도 있어야겠습니다.
☞ 일본 쌀과자들
녹차 줄기까지 함께 볶은 호지차는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구수한 맛이 나서 처음 방문하는 분들께 무난한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궁금해서 찻주전자 뚜껑을 열어 보니 안에 찻잎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래 방치해 자칫 맛이 써지거나 떫어질까 봐 미리 잘 우려서 찻물만 담아 주신 모양입니다.
맛차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묽고 싱거웠는데, 제가 맛차 맛을 잘 모르니 이게 맞을 겁니다. 마실수록 바닥에 가라앉은 분말이 칼칼하게 목을 자극하므로 맛차 주문한 손님한테는 맑은 차나 물을 같이 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컷 잘 즐기고 나서는 목이 따가운 채로 가게를 나서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포스코 센터 <테라로사>에서 커피와 퀸아망Kouign-amann (ff) 먹으며 책 읽는 걸 즐기는데,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이런 색다른 집이 또 있다는 건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집 근처에 공원이 있는 것보다 <테라로사>가 있는 게 저는 더 좋습니다. ㅋ <세드라Cedrat>도 걸어서 가고 <리틀 & 머치>도 걸어서 다녔습니다.)
앳된 얼굴의 두 주인분도 친절하고, 잘 대접 받았다는 느낌이 드는 기분 좋은 가게이니 근처 지나실 때 한번 들러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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