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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리수鳳梨酥 - 치아더, 써니힐 본문

차나 한 잔

펑리수鳳梨酥 - 치아더, 써니힐

단 단 2019. 8. 23. 18:25

 

 

 

블로그 이웃 뿌까 님께서 오래 전에 대만의 국민 과자인 펑리쑤를 소개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과자 블로그' 주인장인 단단의 호기심에 불을 당기셨죠. 이에 귀국하자마자 마트와 백화점을 뒤져 눈에 띄는 것들은 모두 사 먹어 보았는데, 한국에 들어 와 있는 것들은 인공 파인애플향과 인공 버터향이 풀풀 나서 자주 사 먹을 게 못 되더라고요. 과자에서 나는 과한 인공 과일향처럼 괴로운 게 또 없어요. 인공 과일향도 세련되게 잘 입히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먹는 이를 괴롭힙니다. 이런 독한 인공향의 과자가 과자 잘 만들기로 소문난 대만의 국민 과자일 리 없잖습니까. 그래서 제대로 잘 만든 건 대만에 여행 가서나 맛봐야겠다, 숙제처럼 남겨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남의 집을 방문했다가 <치아더Chia Te>라는 브랜드의 펑리쑤를 한 조각 얻어 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한입 먹고는 바로 '엇? 이것이 진골 펑리쑤 맛 아닐까?' 머리 위 전구가 반짝, 그날 이후 단단은 <치아더> 펑리쑤가 먹고 싶어 상사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이를 측은히 여긴 영감이 쿠폰을 총동원해 저렴한 값에 산수유, 아니, <치아더> 펑리수를 구매대행으로 구해 주었지요. 토요일 오후에 주문했는데 그 다음 주 수요일에 오더군요. 영업일만 놓고 따지면 사흘밖에 안 걸린 겁니다. 놀라운 세상입니다.

 

 

 

 

 

 

 

 

택배 상자를 여니 쇼핑백이 먼저 보입니다. 선물하기 좋겠습니다. "The one and only shop". 인기 있을 텐데도 분점을 여럿 거느리지 않고 딱 한 군데에서만 영업을 하나 봅니다. 여행 가서 사려면 줄 서느라 고생 좀 하겠습니다.

 

 

 

 

 

 

 

 

쇼핑백을 걷어 내니 펑리쑤 상자가 보입니다. 한글이 다 써 있네요. 우리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찾으면.

 

 

 

 

 

 

 

 

가게와 펑리쑤 소개를 하고 성분도 밝혀 놓았습니다.

 

<치아더> 펑리쑤 성분:

Flour, butter, egg, sugar, pineapple, mashed white gourd동과, salt. 끝.

 

성분 좀 보세요. 첨가물 일절 없이 맛 내는 데 필요한 재료들만 썼습니다. 이래서 맛이 우아했나 봅니다. 냉장보관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보존을 위한 첨가제가 따로 들지 않아 유통기한이 다른 제품들에 비해 짧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국에서 보기 어려웠던 거지요. 동과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대만의 과일들

 

 

 

 

 

 

 

 

빨간색과 금색의 현지스러운 포장. 서양식 디자인이 아니라서 더 좋네요. 각 과자 포장의 양 끝이 가파르게 솟은 것이 마치 중국식 처마 선 같습니다.

 

중국 간자체를 보다가 홍콩과 대만의 복잡한 정자체를 보면 뭔가 제대로인 것 같고 근사하단 말이죠. (식품 포장에서 영국식 'flavour' 철자만 보다가 미국식 'flavor'를 보면 알파벳이 하나 빠져 있어 맛도 뭔가 빠져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허전해." 우리 집 영감도 같은 소리를 합니다. )

 

 

 

 

 

 

 

 

현지인들은 이걸 청차oolong tea와 함께 먹는다고 합니다. 탁월한 선택입니다. 펑리쑤를 한입 맛보면 이게 커피용 과자는 절대 아니라는 생각,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인공향 입힌 손 쉬운 저 <오설록> 같은 가향차가 아닌, 찻잎 자체에서 꽃향이나 과일향이 나는 잘 만든 공부차를 부르는 맛입니다. 대만 청차가 똑 떨어져 중국 청차인 안계황금계(安溪黄金桂)로 우렸습니다. 좋아해서 집에 늘 두고 우려 마시는 차입니다. [Jing, 250ml, 4g, 100˚C, 4min., 3 times]

 

자사호 좀 보세요. 나이 지긋한 중국 장인이 여인의 젖가슴 형상을 본떠 만든 건데, 이제는 길이 제법 들어서 은은한 광택이 돕니다. '부들이'라고 이름 붙여 줬습니다. (→ 미니멀 라이프와는 거리가 먼 단단. 사물마다 죄 이름 붙여 주고 애지중지.)

 

 

 

 

 

 

 

 

비닐 포장을 여니 맨 먼저 버터향이 훅 올라 옵니다. 그런데 이 버터향이 영국의 쇼트브레드 향과 똑같아서 제가 좋아합니다. 영국 쇼트브레드는 버터가 하도 많이 들어[30% 내외] 버터와 치즈의 중간쯤 되는 진한 향이 나는데, 이 <치아더> 펑리쑤의 페이스트리 껍질이 그렇습니다. 영국 쇼트브레드보다는 덜 단단해 온화하게 부서집니다. 페이스트리 껍질 안에는 찐득찐득 씹히는 섬유질 많은 과일소가 채워져 있어 껍질과 소의 식감 대비와 상호보완이 일품입니다. 비율도 알맞고요. 팥소 든 한국의 천편일률적인 지역 '특산' 과자들의 식감을 떠올려 보세요. 겉과 속이 죄 비슷한 식감이라 씹는 재미가 하나도 없죠. 게다가 펑리쑤 소는 달기만 하지 않고 신맛도 함께 선사합니다.

 

 

 

 

 

 

 

 

 

 

<치아더> 다음으로 인기 있다는 <써니힐스>입니다. 명절을 앞두고 있어 노란 옷을 입었네요. 네네, 명절 잘 쇨게요. 

 

 

 

 

 

 

 

 

<써니힐스> 펑리쑤 성분:

Pineapple, butter, flour, eggs, sugar, maltose, milk powder, cheese powder, condensed milk, salt. 끝.

 

동과를 섞지 않고 파인애플만 쓰니 혼합 소에 비해 파인애플 맛이 더 나겠습니다. 그런데 치즈 파우더는 뭐 하러 넣은 걸까요? '단짠'으로 맛있다는 소리 들으려고?

 

 

 

 

 

 

 

 

 

 

다섯 개씩 두 단, 10개들이 상자입니다. 파인애플과 달걀은 대만산, 버터는 풀 먹인 젖소로부터 얻은 뉴질랜드산, 밀가루는 일본산이랍니다. 일본산 밀가루? 방사능 문제는 제쳐놓고, 일본 밀가루가 좋나 보죠?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대량으로 생산하지 못해 값이 싸지도 않을 텐데요.

 

 

 

 

 

 

 

 

<써니힐스> 매장 흉내.

 

 

 

 

 

 

 

 

진한 버터향을 기대하고 봉지를 열었는데 버터향이 아니라 마트에서 파는 흔한 치즈 비스킷 향이 올라옵니다. 치즈 파우더를 넣어서 그렇죠. 치즈 애호가이지만 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버터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왜. 게다가 이 세상에 치즈 종류가 얼마나 많은데 그냥 "cheese powder"입니까? 인공 첨가물을 넣지 않았다고 광고해 대지만 저는 이 치즈 파우더가 수상한걸요.

 

이 치즈 파우더 향이 다른 재료들과 어우러져 희한하게도 말린 멸치향이 납니다. 다쓰베이더도 한입 먹더니 "멸치맛. 그것도 바싹 잘 말린 잔멸치가 아니라 국물용 꿉꿉한 큰멸치 맛." 합니다. 꽈당 페이스트리 부분만 씹어 보니 멸치맛에 <오리온> '오감자' 맛까지 납니다. ("고양이 사료 맛" 난다는 분이 계셔서 웃었는데, 바로 이 맛을 말하는 거였구나;;) 식감도 오븐에 물기 없이 장시간 구운 분질 감자처럼 건조하고 까슬거립니다.

 

filling는 동과를 섞지 않고 파인애플만 써서 만드는데, 신맛 강하고 섬유질 많은 '카이옌cayenne, 카이잉開英 No. 2' 품종을 쓰기 때문에 강한 신맛에, 사진에서 보듯 수분이 적어 매우 힘이 있으면서 'fibrous' 합니다. '찐득찐득'한 식감에 '꼬득꼬득', '오돌오돌'이 더해집니다. 저는 과일 산미와 이런 질깃한 식감을 좋아해 맛있었는데, 문제는,

 

 

 

 

 

 

 

 

끈적한 소가 치아에 들러붙어 큰 덩어리로 딸려 나오고 나면 과자 속이 뻥 비어 건조하고 텁텁한 껍질만 한가득 씹어야 할 때가 중간중간 생긴다는 겁니다. 게다가 껍질과 소가 <치아더> 것처럼 조화롭게 어우러지지를 못 하고 끝까지 따로 놀다가 식도로 넘어갑니다. 매장에서 시식할 때 왜 차를 항상 같이 내주는지 이유를 알았습니다. 소와 껍질 모두 <치아더> 것보다 수분이 적으니 차를 내주지 않으면 식감이 퍽퍽해 구매하는 사람이 적을 듯합니다.

 

형태도 맛을 나쁘게 하는 데 한몫 합니다. 정사각에 가까운 작은 직사각 단면을 하고 있으니 껍질이 그리 두꺼운 편이 아닌데도 씹을 때마다 소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반 가른 펑리쑤를 먹을 경우, 넙적한 펑리쑤는 한입에 넣을 수가 없어 왼쪽·오른쪽 나누어 씹으므로 껍질을 한 번에 3면만 씹으면 되지만, <써니힐스>는 단면이 작아 한입에 넣고 껍질 4면을 모두 씹어야 하니 목이 메일 수밖에요. 다쓰 부처 입맛에 <써니힐스> 펑리쑤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팥소 든 한국의 지역 특산 과자들보다는 백배 맛있습니다.)

 

 

대만의 파인애플 산업과 펑리쑤의 역사

 

대만이 파인애플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의 일이며, 일제 통치 기간(1895-1945년)에는 일제가 이를 대만의 핵심 작물로 지목해 육성에 힘썼습니다. 50개 이상의 품종이 존재하는데, 대개는 다음의 세 가지 품종에서 가지쳐 나온 것들입니다.

 

Golden Pineapple

Cayenne

Spain

 

펑리쑤에 쓰이는 것은 둥근 형태에 노란 과육을 가진 하와이 원산의 '카이옌開英카이잉' 종, 대만 땅에 가장 많이 심긴 것은 깡통용으로 가공되는 '골든 파인애플' 종이라고 합니다. 일제 시대 때 대만은 깡통 파인애플의 대규모 생산지가 되었고, 그렇게 생산된 깡통 파인애플은 세계 시장에는 알려지지 않고 주로 일본과 일제 치하의 만주에 수출돼 소비되었습니다.

 

2차대전 기간에는 기호작물인 파인애플 생산지가 일제를 위한 식량 생산지로 전환되고 파인애플 깡통에 쓰이는 금속 역시 군장비 생산에 투입되면서 대만의 파인애플 생산과 가공 산업은 잠시 쇠퇴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에는 일본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유럽으로 판로를 넓혀 대만의 파인애플 산업이 다시 부흥하게 되나, 1973년부터는 인건비 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파인애플 재배에 대거 뛰어들어 다시 휘청거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1970년대부터 2000년 중반까지 대만은 내수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펑리쑤가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질 않다고 합니다. 대만의 음식사학자들은 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을 것으로 짐작하나 부활은 역시 1970년대에 남아도는 파인애플 소비를 목적으로 시판 제품들이 속속 나오게 된 때로 잡는 것 같습니다.

 

펑리쑤는 잘 부스러지는 진한 풍미의 버터 페이스트리 껍질에 조린 파인애플 과육의 소, 혹은 파인애플과 동과winter melon, white gourd, wax gourd의 혼합 소로 구성됩니다. 동과가 파인애플보다 저렴한데다, 동과를 섞은 것이 파인애플만 쓴 것에 비해 섬유질이 좀 더 적어 치아 사이에 덜 끼고, 맛도 덜 시고, 색도 샛노래서 더 예뻐 보이기 때문에 많은 회사들이 동과를 함께 씁니다. 동과를 혼합해도 파인애플의 맛과 향은 보존된다고 합니다. 동과 없이 파인애플만 써서 만든 것은 '토펑리수'라고 이름을 따로 붙여 구분하기도 합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치아더>는 1975년에 설립돼 2006년에 열린 제1회 대만 펑리쑤 페스티벌에서 최고상을 수상하였고, 2010년에는 대만 경제부로부터 대만의 으뜸 관광상품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치아더>의 인기로 펑리쑤 수요가 급증하자 우편주문 숍 <만나 푸즈Manna Foods>는 차별화 전략으로 동과 없이 파인애플만 써서 맛을 내는 고급 제품을 선보입니다. 파인애플도 단맛이 강한 여름 수확물 대신 신맛이 강한 겨울-이른 봄 수확물을 쓰고, 상생을 위해 원주민 농부들로부터 재료를 공급 받으며, 설탕이 아닌 엿기름malt sugar, maltose을 써서 지나치게 달지 않게 만들고, 우유와 버터를 넣지 않아 엄격채식주의자vegan도 먹을 수 있는, 더 건강한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킵니다. (노파심에 말씀 드리자면, <치아더> 펑리쑤는 설탕을 쓰지만 마찬가지로 은은하고 세련된 단맛을 냅니다. 설탕이 어때서요?) 그런데 이렇게 고급화를 추구하다 보니 현지인들은 너무 비싸다며 고개를 젓는다는군요. 일본과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인기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요? 저는 누리터를 아무리 뒤져도 이 회사 펑리쑤 사 먹었다는 한국인은 보이지 않던데요. 2016년 자료를 보고 쓴 거라서 지금은 시장 상황이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일본인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써니힐스SunnyHills>는 아예 2013년, 일본의 유명 건축가에게 의뢰해 ☞ 독특한 형상의 분점 건물을 도쿄에 짓습니다. 동과를 섞지 않고 '카이옌 No. 2' 품종의 파인애플만 써서 소를 만들고, 매장 방문객을 자리에 앉혀 청차와 함께 무료로 시식하게 하며, 구매 고객에게 천으로 만든 에코백을 제공한다는 것 등이 차별점이며, 수요가 폭증하는 명절 때를 제외하고는 손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이것도 2016년 정보라서 지금은 수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식품에서 '수제'가 중요합니까? 소비자로서는 인간이 만들든 자동화 기계 설비가 만들든, 재료 좋고 위생적이고 맛만 좋으면 장땡이죠.) <써니힐스> 누리집

 

대만은 청차 국가입니다. 자기들만의 확실한 차 문화도 갖고 있고, 그 차에 잘 어울리는 이런 맛난 과자도 갖고 있고. '맛잘알' 대만인들이 부럽고 한편으론 배 아프고 그렇습니다.

 

 

음식우표 - 선물하기 좋은 대만 과자들

녹두고 - 대만도 일본처럼 과자를 잘 만든다

난 아직 월병 맛있는 줄은 모르것어 누가 맛난 월병 판매처 귀띔 좀 해줘요

단단표 속성 날림 아몬드 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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