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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사물

브라운 베티

단 단 2009. 12. 7. 06:42

 

 

 

사진기의 한계와 찍사의 미숙함으로

종종 발생하는 주변부 왜곡현상.
일그러진 주전자와 접시 - 나름 재미있는 사진이 되었는걸.



우리 집 티푸드 메뉴 중에 '보스턴 티파티'라는 것이 있다. 냉장고를 급습하여 상하기 전 급히 해치워야 할 야채나 해산물이 있으면 죄다 끄집어내 번철에 던져 한데 볶는 것으로, 이렇게 다짜고짜 볶은 것은 빵에 얹어 훈향 나는 랍상수숑과 함께 먹는다.


오늘의 보스턴 티파티는 참치 통조림 반 남은 것과 시들어가는 릭Leek 한국의 대파 비슷한 것에 후추만 더 갈아 넣은 것. 신선도는 매우 떨어지지만 그때그때마다 재료가 달라진다는 것이 이 보스턴 티파티의 매력이다.


그런데, 오늘 할 이야기는 이 이상한 티푸드에 관한 것이 아니고 사진에 있는 찻주전자에 관한 것이다. 티백이 아닌 '느슨한 잎'을 즐기고자 할 때는 다들 어떤 곳에 차를 우리시는지? 아마 도기나 본차이나 자기, 또는 수색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유리 찻주전자에 우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 집에도 비록 싸구려이긴 하지만 도기, 자기, 유리로 된 찻주전자가 하나씩은 있다. 여기에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찻주전자가 하나 더 있다. 저 춘장색 찻주전자의 재질은 뭘까?

 

정답은 석기Stoneware.
석기라 하니 '석기시대' 할 때의 그 석기를 떠올리고 돌을 깎아 만든 것인가 할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진흙을 퍼다 대충 걸러 유약 입혀 구운 것이 석기로, 누리터 검색창에 <토기 석기 도기 자기 구분> 등의 검색어를 찍으면 다양한 답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그렇듯이 저 '험블'하기 짝이 없는 춘장색 찻주전자도 역사와 사연을 갖고 있다. 영국인들이 '브라운 베티Brown Betty'라 부르며 소중히 여기는 이 찻주전자는 17세기 말 왕실과 귀족만 즐기던 차의 보급이 차츰 늘어나 서민들도 즐길 수 있게 되었을 무렵부터 쓰이기 시작한, 말하자면 보급형 찻주전자다. 보급형이다 보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흙을 퍼다가 걸러 유약도 대충 발라 구웠다. 때문에 재질이나 형태에 있어 나으리들께서 쓰시던 정교한 그것과는 거리가 먼 질박함과 투박함이 묻어난다.


이 브라운 베티의 미덕은 값이 싸고 색이 '브라운'이라는 데 있다. 자기 집 찻주전자에 찻물이 들어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얼 뜻하는지 알 것이다. 베이킹 소다 같은 손쉬운 제재가 없던 옛 시절에는 차 얼룩 지우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니 서민들에게 밝은 색 찻주전자는 손에 넣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집에 있다 하더라도 골칫거리였을 터.


어쩌다 한 번씩 차를 우려 마시는 애호가와 달리 밥 먹듯 하루 서너 번을 마셔야 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찻주전자가 그만큼 더 시달리게 되고 씻다가 부딪혀 깨질 확률도 높게 마련인데,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재료로 특별히 공들여 세공하거나 무늬를 입히지 않고 빠른 시간 내에 만들어낼 수 있는 브라운 베티는 실용성이나 가격 대비 성능 면에서 최고였을 것이다. 둥근 형태는 찻잎이 오르락 내리락 회전하며 예쁜 춤을 추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오늘날에도 영국 여염집에 한 개씩은 있게 마련인 이 브라운 베티. 심지어 <월리스와 그로밋>의 티타임 장면에서도 볼 수가 있다. 이전 게시물 중 <영화 속 티타임>을 보면 브라운 베티를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산 저 2인용 브라운 베티는 놀랍게도 처음 생산하던 바로 그 장소에서 당시의 진흙과 똑같은 것을 가지고 만든 것이라 한다. 부담없이 막 쓸 요량으로 두 개를 샀는데, 둘 다 삐뚤빼뚤 꼭 어느 한 곳이 비뚤어져 있거나 뚜껑과 몸통이 야무지게 맞아떨어지지도 않고, 안쪽에는 심지어 작은 돌멩이들까지 유약 표면에 달라붙어 까칠거리는 등 그야말로 서민 생활 용품 티가 풀풀 난다. 파는 사람도 아예 "손으로 (대충) 만들어 형태나 품질이 완벽하지 않으니 그러려니 하시구랴" 하면서 판다. 그래도 볼수록 마음에 드니 희한하다.


이 브라운 베티는 생산자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뜻있는 사람 아무나 특허권 사용료 걱정 없이 만들어 팔 수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브라운 베티 특유의 유약과 색상은 만드는 이마다 제법 차이가 난다. 브라운이라고 해서 다 같은 브라운이 아니다. 우리 집에도 있기 때문에 밖에 나가 남의 브라운 베티 볼 일이 있을 때마다 유심히 보곤 하는데, 싸구려이긴 해도 춘장처럼 색이 좀더 진하고 예쁜 것이 있는가 하면 옛날 짜장처럼 흐리멍덩한 것도 있으니 살 때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크기도 2인용, 4인용, 6인용, 8인용으로 대략 정해져 있는데, 가급적 2인용으로 사는 것이 씻고 보관하는 데 편하고 보기에도 앙증맞다. 4인 가족이라면 4인용을 사기보다는 차라리 2인용 두 개를 사서 같이 쓰는 게 더 낫다. 어쩌다 혼자 즐길 일이 있더라도 큰 찻주전자에 바닥에 깔릴 만큼만 물을 채워 우리는 것보다는 작은 데 가득 채워 우리는 것이 차 맛을 더좋게 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차라 할지라도 유리 주전자에 우렸을 때보다 이 석기 주전자인 브라운 베티에 우렸을 때 맛이 좀더 순하다고 느꼈는데, 어느 차 전문가가 쓴 글을 보니 과연 찻주전자 재질에 따라 차 맛이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다 한다. 고온으로 구워 유리질로 변한 자기와 달리, 도기나 이런 석기 재질 주전자는 미세한 기공이 있기 때문에 세제를 묻히지 않는 게 상식이라 한다. 집에 갖고 있는 찻주전자의 재질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위해 몇 개의 문서를 첨부한다. 브라운 베티 판매자의 광고 글과 <The Times>에서 읽은 브라운 베티 예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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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little teapot has quite a history. Its origins date back to the end of the 17th Century and the birth of the British Ceramic Teapot. The original unglazed teapot was made out of red clay from the Bradell Woods area in Stoke-on-Trent. Today the Brown Betty teapot is still made in Stoke-on-Trent with the same clay from the original area. British people believe the Brown Betty makes the best pot of tea because of the type of clay that is used and the shape of the pot. This teapot is lovingly hand-made in England. Available in 2cup, 4cup, 6cup and the giant 8 cup.


These teapots are not intended for use in a microwave or on a stovetop. We recommend an electric tea kettle to boil the water for brewing your tea.


Please note - because these teapots are handmade there may be some slight imperf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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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iginal teapots came from a red clay that was discovered in the Stoke-on-Trent area of Britain, in 1695. This special clay seemed to retain heat better and so found use as the material for the perfect teapot as early as the seventeenth century. These early pots were tall and shaped more like coffee pots than what we consider to be a traditional teapot shape. In the nineteenth century the pots began to take on the more rounded shape of the modern Brown Betty.


A company, by the name of Swinton Pottery, developed a rich glaze that was made from iron and manganese. The glaze was brushed on the pot and allowed to run down the sides, creating a streaky finish as it was fired.


These rounded teapots found favour at the court of Queen Victoria, and so into a majority of homes of the time. In the Victorian era, 1837 through 1901, tea was at its peak of popularity and Brown Betty teapots were the creme de la creme of teapot design. With the superior heat retention of the special clay, and the new rounded design, the tea brewed in this pot was deemed to be perfect. The design allowed the tea leaves more freedom to swirl through the water as it was poured into the pot, and released more flavour with less bitterness.

 



How to Use the Pot:

If you have a Brown Betty teapot never make the mistake of using it in a microwave or on top of the stove. Always wash it by hand and store it carefully. The dark colour of the pot doesn't show stains, an added benefit to these beautiful pots! Its round, pot-bellied shape causes the leaves to be gently swirled around as boiling water is poured into the pot. Round pots are also the easiest to clean out.


Buying Guide:
These beautiful teapots are available on the internet, as well as in many stores locally. There are similar pots, but if you want the authentic Brown Betty then it must be handmade in the Old Caledonia Mills in Stoke-on-Trent, and imported from England. Keep this in mind as you look!

 

 


참, 미국인들이 즐기는 디저트 중에도 '브라운 베티'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있다고 한다. 익힌 사과나 과일 위에 빵가루와 크림을 얹어 먹는 것으로 영국의 '애플 크럼블스apple crumbles'와 많이 닮았다. 우리 집 다쓰베이더가 좋아하는 애플 크럼블스 역시 훌륭한 디저트 겸 티푸드. 기회가 닿는 대로 소개해 드릴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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