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 이태리 훈제 스카모르짜 Scamorza affumicata

 

 

 

 

영국에 살 때 즐겨 사 먹던 이태리 안티파스티antipasti 모둠 중에 <막스 앤드 스펜서>에서 내는 훈제 안티파스티 3종 기획품이 있었습니다. (수퍼마켓들마다 자사 상표를 붙인 이런 류의 기획품을 여럿 냅니다.) 훈제 프로슈토, 나폴리 살라미, 훈제 숙성 모짜렐라인 스카모르짜가 한데 담겨 있는 것이었는데, 다쓰 부처가 여러 수퍼마켓의 안티파스티 모둠 중 가장 맛있어하며 애호했던 제품입니다. 훈향이 우마미를 돋울 정도로만 엷게, 우아하게 납니다. 

 

오늘은 이 모둠 제품에 들어 있는 치즈 이야기를 할 예정이니 치즈를 유심히 보세요.

 

 

 

 

 

 

 

 

 

치즈가 보들보들 야들야들 촉촉하면서 색도 곱고 순해 보이죠?

 

 

 

 

 

 

 

 

 

잘 접히는 걸 보니 숙성이 많이 안 된 어린 치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얇게 저민 것이고요,

 

 

 

 

 

 

 

본 모습은 이렇습니다. 형태도 색상도 꼭 조롱박 같죠. 스카모르짜는 숙성 기간을 늘리고 건조시킨 모짜렐라여서 모짜렐라 생산지인 이태리 남부에서 일년 내내 만듭니다. 

 

포장의 '아퓨미카타affumicata'는 영어로 'smoked', 즉, 훈제했다는 뜻입니다. 이 문구가 없어도 위의 치즈가 훈제 치즈라는 걸 알 수 있는 게, 치즈 외피가 전형적인 훈제 치즈의 색을 띠고 있습니다. 훈제 안 한 뽀얀색의 스카모르짜가 기본이고 훈제한 건 변주인데 한국에서는 훈제한 것만 들여오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치즈들 중 상당수가 훈제 가능합니다. 이 블로그에서 훈제 체다와 몇몇 훈제 치즈들을 소개해 드린 적 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모짜렐라뿐 아니라 부라따Burrata 훈제한 것도 영국 수퍼마켓에서 다 봤습니다. 영국 훈제 치즈들은 대개 '국민 나무'인 오크 칩을 때서 길게는 24시간까지도 훈제를 하는데 스카모르짜는 비치우드 등의 나무 칩이나 짚을 태워 15~20분간 짧게 (길어 봤자 두어 시간 정도) 훈향을 씌운다고 합니다.

 

 

 

 

 

 

 

<How Scamorza Cheese is Made>

 

 

 

 

 

 

 

<White and Smoked Scamorza>

 

 

 

모짜렐라 계통의 치즈를 만드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스타터 투입으로 산도를 높인 원유에 응고효소rennet를 넣고 기다리면 원유 속 단백질casein이 분리되면서 순두부처럼 굳습니다. 굳은 부분을 응유curd라 하고 분리된 물을 유장whey이라고 합니다. 응유를 잘게 자르면 유장이 더 많이 빠져 나오는데, 이렇게 빠져 나온 유장을 수조에서 빼 내면 무게에 의해 바닥에 가라앉은 응유 조각들이 뭉쳐 재래시장 두붓가게의 판두부처럼 단단한 매트가 됩니다. 그 상태로 산도가 더 오르기를 기다리면서 잠시 놔 둡니다. 그 뒤 적당한 크기가 되도록 칼로 잘라 뜨거운 물에 넣으면 녹아서 괴물 같은 거대한 덩어리로 합쳐집니다.

 

이 뜨거운 물 속에 담긴 말랑말랑 부드러워진 응유 덩어리를 장인이 손으로 죽죽 잡아 늘리면서 갖가지 모양으로 성형을 하는데('filatura' 또는 'spinning'), 이같은 응유 잡아 늘리기(stretching the curd) 과정을 거치는 치즈들을 'pasta filata'('spun paste', 'stretched curd') 치즈라고 부릅니다. 모짜렐라, 스카모르짜, 카치오카발로Caciocavallo, 프로볼로네Provolone가 이 범주에 듭니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특유의 치즈 제법으로 설명을 하지만 음식사학자들은 먼 옛날 중동과 소아시아로부터 전수 받은 기법으로 봅니다. 현대의 자동화 설비가 된 공장에서는 사람 대신 기계가 이 작업을 합니다.

 

스카모르짜는 호리병 모양으로 성형해 두 개 한 쌍이 되도록 목을 맨 뒤 소금물에 담가 간을 하고 저장성을 높입니다. 그 뒤 건져 내 표면을 말리고 (훈제를 한 뒤) 숙성실로 옮겨 원하는 기간 만큼 숙성을 시킵니다. 대개 이틀에서 열흘 정도 숙성시키며, 그 이상도 가능해 반연성semi-soft에서 반경성semi-hard까지의 굳기를 갖게 됩니다. (스카모르짜와 형태는 같으나 크기가 좀 더 크면서 6개월에서 12개월까지 숙성시킨 카치오카발로라는 경성hard 치즈도 존재합니다.)

 

위의 샤퀴테리 보드에 올린 훈제 스카모르짜는 맛이 순했던 걸로 보아 숙성 기간이 짧은 제품이 아니었나 싶은데, 모짜렐라와 밀크 캬라멜과 메이플 시럽을 동시에 먹는 것 같았습니다. 훈향은 껍질 쪽에서만 살짝 났습니다. 질감은, 수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촉촉하면서 쫀득거리고elastic 혀에 붙으면서 부드럽게 녹습니다. 훈제를 했어도 맛과 식감이 섬세하고 순해 프로슈토와 살라미 사이에서는 기를 좀 못 펴는 듯했으나, 바꿔 생각하면 짭짤하고 강렬한 조제고기들 먹고 얼얼해진 입 안을 이 스카모르짜로 중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건 한국의 마트나 백화점에서 볼 수 있는 <알비에로Albiero> 사의 훈제 스카모르짜인데요, 훈향 물씬 나는 건조·숙성된 색다른 모짜렐라를 맛보고 싶은 분들은 장볼 때 장바구니에 이렇게 생긴 치즈를 담아 보세요. 한 조각 잘라 맛보시고 나면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대번 아이디어가 떠오를 겁니다.

 

 

 

 

 

 

 

 

 

맨입에 먹어 보니 영국에서 맛보았던 반연성semi-soft의 훈제 스카모르짜보다 건조·숙성을 많이 진행시킨데다 훈향도 속까지 충분히 배도록 강하게 씌워 질감이 훨씬 단단하고 맛도 굉장히 셉니다. 밀도가 하도 높아 칼이 잘 안 들어가 자르는 데 애먹었습니다. 치즈 와이어cheese wire를 써도 힘겹습니다. 이 정도면 반경성semi-hard 치즈로 분류되겠습니다.

 

이 제품은 치즈보드에 올리거나 샤퀴테리 보드에 올리면 다른 치즈들, 조제고기들 맛을 압도하겠습니다. 짜고, 쓰고, 시고, 훈향이 다소 험합니다. 브랜드마다 추구하는 맛의 강도가 이렇게 다르니 훈제 스카모르짜를 사면 먼저 맨입에 한 조각 맛을 보셔서 보들보들 연한 질감, 순한 맛, 약한 훈향이 나는 어린 치즈 같으면 치즈보드나 샤퀴테리 보드에 올려 즐기시고, 숙성 기간이 길고 훈향이 센 제품은 요리에 쓰세요. 모짜렐라는 수분이 많아서 치즈보드나 샤퀴테리 보드에는 여간해서 올리지 않지만 스카모르짜는 물기가 적어 가능합니다.

 

 

 

 

 

 

 

 

 

열을 가해 말랑말랑해질 정도로만 살짝 녹이면 (부글부글 끓이면 안 됩니다. 식으면서 초강력 고무가 됩니다.) 질감이 쫄깃해지면서 맨입에 먹을 때는 희미하게 느껴졌던 우마미가 증폭되고 땅콩버터맛이 새로 올라옵니다. 피짜, 그릴드 토스트, 그릴드 샌드위치 등에 활용해 보세요. 개성이 강한 치즈라서 흰빵에 이 치즈 하나만 올려 단순하게 먹어도 맛있습니다. 단맛이 적은 진정한 'savoury cheese'입니다. 사진에 있는 것처럼 두툼하게 썰어 올렸더니 토스트는 바삭하고 치즈는 쫄깃거려 식감이 좋았습니다. 빵을 먼저 토스트 한 뒤 치즈를 얹고, 철판이 아닌 철망에 올려 오븐의 브로일러로 치즈를 녹여야 빵이 눅눅해지지 않고 바삭합니다.

 

그런데, 맛과 훈향이 강해 먹을 때는 맛있고 행복하나 입 안에 훈향의 여운을 길게 남겨 먹고 나서 한참 동안 갈증이 납니다. ㅋ 섬세한 맛의 다른 음식들과 같이 냈다가는 낭패 볼 수도 있겠습니다. 훈제 치즈, 훈제 모짜렐라의 맛이 궁금한 분들은 한번 시도해 보세요.

 

치즈 백과사전에서는 스카모르짜의 곁들이 술로 'Pomino Rosso Frescobaldi'와 이태리산 전통 발포 와인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스카모르짜 일반을 서술하면서 추천한 거라서 이 술들이 훈제 안 한 스카모르짜를 위한 건지 훈제 스카모르짜를 위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두 개는 맛이 완전히 다를 텐데요. 애주가 분들은 한국 마트에서 파는 훈제 스카모르짜에 어울리는 술 찾기에 직접 도전해 보십시오. 술을 안 마시는 저는 <산 펠레그리노S. Pellegrino>의 탄산과즙음료를 땄습니다. 맥콜(!)이나 무알콜 진저비어도 잘 맞겠습니다. 단맛 있는 청량한 음료가 필요합니다. ■

 

 

 

☞ 버팔로 물소젖 모짜렐라 - 모짜렐라를 먹는 열 가지 방법

☞ 부라따 - 크림 채운 모짜렐라

☞ 훈제 소젖 체다

☞ 훈제 염소젖 체다

☞ 훈제 노썸벌런드

☞ 훈제 웬즐리데일

☞ 바바리아 훈제 치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