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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훈제연어 Smoked Salmon 본문
▲ 영국의 연어 양식지.
스코틀랜드 서쪽과 북쪽에 주로 모여 있다.
스코틀랜드의 가장 큰 식품 수출 품목은
위스키가 아니라 연어.
오늘은 다쓰 부처가 좋아하는 생선인 연어, 그것도 훈향 씌운 '그윽한 벽난로 맛'의 영국 훈제연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왜 '그윽한'이라는 형용사를 썼냐면요, 영국의 훈제연어는 노르웨이 훈제연어보다 훈향을 좀 더 써틀하고 델리킷하게 씌우기 때문입니다. 노르웨이 훈제연어가 좀 더 스모키하죠. (아니 이런 보그병신체가...) 게다가, 영국 안에서도 런던식 훈제는 스코틀랜드식 훈제보다 더 은은하게 향을 씌우고요. 추운 지역으로 갈수록 훈향을 강하게 입히는 경향이 있는 걸까요? 아마도요.
참고로, 미식가들과 요리사들은 훈제 식품들의 훈향이 험하지 않고 은은할수록 세련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르웨이 것이 험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국적 상관없이 못 만든 훈제연어, 저가의 훈제연어들이 대개 이렇습니다.) 훈제란 원래 맛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존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재료 맛보다 매캐한 훈향이 더 많이 느껴지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고 여기죠. 고급 식당에서는 직접 재료나 완성된 요리에 훈향을 잠깐 동안만 씌우기도 합니다.
말 나온 김에 양국의 훈제연어를 좀 더 비교해 보자면요, 노르웨이 훈제연어는 살이 복숭앗빛에 가깝고 기름기가 적은 편이며 주니퍼 나무 등을 써서 훈향을 강하게 입히는 경향이 있고, 영국 훈제연어는 살이 오렌지빛에 가깝고 좀 더 기름지면서 부드러우며buttery 오크를 써서 은은하게 향을 씌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호하는 나무가 다른 이유는, 그냥 그 나무들이 그 나라에 많이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인들은 말린 생선이나 자반보다는 생물 익힌 것poached, roasted, pan-seared과 열훈한 것hot-smoked을 더 즐깁니다. 날생선의 경우는, 회나 초밥을 즐기는 사람이 과거에 비해 많이 늘기는 했으나 아직 한국만큼 많지는 않고, 대개는 감귤류 즙이나 식초에 살짝 절인 쎄비체ceviche, 이런저런 재료로 조제한 것cured, 냉훈한 것cold-smoked 등을 더 즐기는 편입니다.
영국의 생선 훈제 기술은 동유럽에서 온 유태인 이민자들 덕에 더욱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훈제 생선들 중에서는 연어salmon, 송어trout, 대구haddock, 청어herring, 고등어mackerel, 장어eel가 특히 많이 소비되며, 영국 훈제연어는 크게 '스코티쉬 스모크트 새먼'과 '런던 큐어 스모크트 새먼'으로 나뉩니다. 물량으로 보면 스코티쉬 스모크트 새먼이 압도적이나 런던 큐어 스모크트 새먼을 훨씬 고급으로 쳐 줍니다. 런던 큐어 스모크트 새먼은 비싸서 저 같은 서민은 한 달에 한 번 사 먹기도 힘듭니다. 그럼 스코티쉬 스모크트 새먼은 저렴하냐?
아니오. 영국산 연어는 생물이든 훈제든 어쨌거나 비쌉니다. 여기도 연어는 노르웨이처럼 양식이 대부분이지만 생산량은 노르웨이보다 훨씬 적거든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영국산 연어가 안 보이는 거지요. (일본과 프랑스에서는 영국산 연어를 많이 찾아 수입을 많이 해 갑니다.) 심지어 산지인 이곳 영국에서도 소비되는 연어의 3분의 2는 노르웨이산이라 자국산 연어에는 포장 앞면에 'Scottish'라는 문구를 써 넣어 소비자의 주의를 환기시키곤 합니다. 좌우간 로또 당첨되면 영국 고급 훈제연어 잔뜩 사다 연어잔치부터 하고 그릇 사러 나가렵니다. 여기 사람들한테도 훈제연어는 원래 크리스마스 때나 겨우 먹을 수 있는 명절 진미로 통했다고 합니다.
한국은 생선을 훈제해 먹은 역사가 짧아 아직은 기술도 품질도 많이 달리는 편이죠. 가공 과정에서 연어의 무게가 줄면 손해이니 최소 10%의 무게 손실이 일어나는 건염법dry-salting 대신 수염법brining을 쓰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주사기로 살에 염수와 훈연액을 직접 찔러 넣는 편법을 써서 속성으로 생산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흐물거리면서 질척거리기만 하고 식감이 형편없어요. 전통식으로 제대로 만들려면 건염법을 써서 염장한 후 공기 중에 매달아 살짝 건조시킨 뒤에 연기를 씌워야 하는데, 이때 또 10%의 추가 손실이 일어납니다. 거기다, 훈제를 마치고 나면 표면에 훈제로 인한 막이 생기는데, 이걸 제거해 주어야 험한 맛이 나지 않으므로 한 겹을 또 저며 내야 합니다. 손실이 이만저만 많은 게 아니죠. 대신 이렇게 생산한 훈제연어는 씹는 맛이 참 좋고 맛이 우아합니다. 소금 외에는 아무 것도 더하지 않았는데 난데없이 고소한 참기름향과 은은한 간장맛이 나죠.
영국에서는 훈제연어를 어떤 종류의 나무나 식물을 태워 향을 씌웠느냐, 훈제하기 전이나 후에 어떤 맛을 가미했느냐를 따져 가며 골라 사 먹을 수가 있습니다. 연기 내는 재료로는 전통적으로 영국의 '국민나무'인 오크가 가장 많이 쓰였고 지금도 가장 많이 쓰이는데, 오크도 그냥 오크냐, 과거 위스키를 담아 숙성시켰던 통을 해체해 나온 것이냐를 또 따집니다. (그냥 오크보다 위스키 배럴 오크를 써서 생산한 것이 좀 더 비쌉니다.) 나뭇조각도 때로는 홍차나 커피처럼 혼합blend을 하기도 하고, 나무말고도 토탄peat을 쓰기도 하며, 들풀이나 들꽃, 열매 등도 쓰고, 영국의 고급 식당 요리사들은 가향차의 찻잎을 태워 훈향을 씌우기도 합니다. 홍차 중에서는 얼 그레이Earl Grey와 랍상 수숑lapsang souchong이, 녹차 중에서는 자스민 녹차가 연기 내는 재료로 흔히 쓰입니다.
양식 연어와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으렵니다. 유럽의 야생 연어는 고갈되어 보호 받고 있으므로 현재로서는 어쨌거나 양식이 최선입니다. 영국은 동물보호단체와 환경단체들이 하도 드세 생산자들이 눈치를 많이 보고 환경에 부담을 덜 주려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로서는 몇몇 어종만 고집스럽게 찾지 말고 생선 종류를 다양하게 바꿔 가며 즐겨야겠죠. 저희로서는 사실 연어는 많이 먹고 싶어도 비싸서 자주 사 먹을 수도 없습니다.
▲ 랍상 수숑 찻잎을 태워 향을 씌운 훈제연어.
▲ 헤스톤 블루멘쏠 <디너Dinner>에서 내는 연어 전식starter.
얼 그레이 찻잎을 태워 연어에 훈향을 씌웠다.
▲ 크리스마스 트리로 많이 쓰이는 더글라스 스프루스와
국민나무 오크를 혼합해 향을 씌운 훈제연어.
▲ 위스키를 살짝 섞어 조제한 뒤 퇴역한 위스키 배럴과
오크 조각을 혼합해 향을 씌운 훈제연어.
▲ 스코틀랜드 들판에 많이 있는
토탄, 헤더, 스윗 게일을 써서 향을 씌운 훈제연어.
▲ 오크로 향을 씌운 다음 흑당밀black treacle에 담가
은은하지만 깊은 단맛을 더한 훈제연어.
▲ '크리스마스 양념'으로 조제를 먼저 한 뒤 오크 연기를 씌운 훈제연어.
(연어 어디 갔어? 여,연어는 벌써 뱃속에;;)
▲ 한 포장 안에 두세 가지 맛과 향의 훈제연어를 담기도 한다.
▲ 훈제연어 외에 조제연어cured salmon도 즐긴다.
스웨덴, 러시아, 일본풍으로 조제한 연어 모듬.
'전지구적인global' 영국인들.
▲ 감각적인 포장의 훈제연어와 조제연어.
▲ 알라스카 야생 홍연어로 만든 훈제연어도 수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데,
이건 또 캐나다 나무들로 훈향을 씌워 줘야 '떼루와'가 맞는다고.
▲ 런던 <해로즈Harrods> 백화점 식품관의 훈제연어.
고급 브랜드인 <포먼H. Forman & Son>의 제품들.
▲ <포먼>의 '런던 큐어 스모크트 새먼' 홍보 영상.
▲ 영국에 계신 분들은 이 제품 구해서 한번 잡솨 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영국에 있는 요리사들이 비교시식해서 꼽은
'2016 올해의 가장 맛있는 영국 훈제연어'.
▲ 지금은 훈제연어를 사철 볼 수 있지만
과거에는 영국에서도 명절에나 맛볼 수 있었던 진미.
크리스마스 만찬 전식starter으로 인기.
▲ 크리스마스 양념을 입힌 훈제연어.
(아까 뱃속으로 사라졌다는 훈제연어가 바로 이 연어.)
▲ 두툼한 가운뎃살만 일직선으로 말끔하게 잘라 낸 것을
'로얄 필릿Royal Fillet'이라 부른다.
▲ 로얄 필릿을 '짜르 컷 필릿',
'임페리얼 컷 필릿'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프라임 컷'이라는 소리.
▲ 런던 <해로즈> 백화점 식품관의 훈제연어 활용 음식들.
- 이제부터는 집에서 먹은 훈제연어 사진 모음 -
▲ 가장 손쉬운 방법은
비스킷 커터로 동그랗게 찍은 식빵 위에 '척' 얹는 것.
유치원생도 할 수 있다.
▲ 바삭한 과자 바구니 안에 담는 것도 괜찮고.
▲ 훈제연어를 갈아 만든 머핀 사이에 또 훈제연어.
▲ 블리니 위에 훈제 알라스카 야생 홍연어와
발사믹 비니거로 만든 캐비아pearl.
단단은 생선알 잘 안 먹음.
▲ 미니 요크셔 푸딩과 함께.
▲ 중간 크기 요크셔 푸딩과 함께.
▲ 좀 더 큰 요크셔 푸딩과 함께.
▲ 거대한 요크셔 푸딩과 함께. 사진 찍는 동안 다 꺼졌어.
▲ 10분도 안 돼 만들 수 있는
초간단 훈제연어 트리오 전식starter
▲ 이건 시간이 좀 걸리는 전식.
아보카도-와사비 퓨레와 게 몸통살 퓨레를 곁들인
훈제연어, 게살, 사과, 페널fennel 샐러드.
▲ 영국 구절판.
훈제연어 한 점 집어 호스래디쉬 소스 먼저 묻히고
원하는 고명을 붙여 먹는다.
연어+소스+샬롯, 연어+소스+차이브,
연어+소스+달걀+케이퍼, 이런 식으로.
(오이 피클은 입가심용.)
이 날은 시판 오이 피클을 잘게 다져 올렸는데,
집에서 즉석 피클 만들어 크게 썰어 올리면 더 맛있다.
▲ 간단 칠절판.
저게 바로 한숨 나오게 맛있는 런던 큐어 스모크트 새먼.
▲ 바쁜 아침에는 토스트한 잉글리쉬 머핀 위에
씨저 드레싱 바르고 스크램블드 에그와 함께.
3분도 안 돼 완성.
▲ 이번에는 달걀과 함께 살짝 익혀서.
이것도 아침 식사로 훌륭.
▲ 서양 대파인 리크leek 데친 것에 훈제연어 올리고
체다 소스 끼얹어 오븐 구이
▲ 뉴욕식으로 베이글 위에도 한번.
▲ 아프터눈 티 타임에는 촉촉한 티 샌드위치로.
▲ 카리스마 넘치는
독일 호밀빵 펌퍼니컬Pumpernickel 위에
달걀 피클과 함께 올려서.
▲ 아스파라거스 제철에는 이렇게도.
▲ 크리스마스 즈음에 만들어 본 훈제연어 치즈케이크.
스코틀랜드 전통 음식.
▲ 쟈킷 포테이토 위에.
▲ 훈제연어 스프레드 위에 깍둑 썬 훈제연어를 올려
맛과 식감을 더욱 좋게.
▲ 영감 생일에는 니모로도 변신.
아래에 영국의 이름난 훈제연어 생산자 몇 곳만 꼽아 봅니다. 이보다 훨씬 많은데 제가 이름을 다 모릅니다. 들어가셔서 구경해 보세요. 참, 연어 양식과 훈제연어 생산은 다른 영역입니다. 잉글랜드에서는 연어가 나지 않아 '런던 큐어 스모크트 새먼'도 스코틀랜드 앞바다에서 잡거나 양식한 연어를 가져다 만듭니다.
영국의 이름난 훈제연어 생산자 중 몇 곳
☞ Inverawe
☞ John Ross Jr [Traditional Kiln Smoked]
☞ Stornoway Smokehouse [Traditional Kiln Smoked]
☞ H. Forman & Son [Traditional London Cure Smoked]
더 읽을 거리
☞ [경향심층취재] 노르웨이 세계 최대 연어 양식장에 가다
☞ [가디언화보] 런던 큐어 스모크트 새먼이 특별한 까닭 [영어]
☞ 영국의 연어 생산과 관련한 이런저런 사실과 정보들 [영어]
☞ 훈제 대구 활용 요리 - 컬런 스킹크 (피쉬 수프)
☞ 훈제 청어
☞ 영국음식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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