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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과 세계 음식

[신간] 튀김의 발견

단 단 2020. 8. 22. 06:31

 

 

 

튀김 좋아하시는 분?
저요 저요 저요 저요 저요 저요 저요 저요 (수두룩)

 

저도 튀김 좋아합니다.
그런데요,

 

"튀기면 뭐든 다 맛있어진다.",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

라는 말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 정말 많죠.

 

튀김은

(1) 튀길 재료가 신선하면서 밑손질이 잘 되어 있고,

(2) 튀김옷과 기름의 상태가 적절하며,

(3) 튀기는 기술이 좋아야 맛있지 아무 튀김이나 다 맛있을 리 있습니까.

 

튀기면 다 맛있다는 분들은 살면서 맛본 튀김들이 정말 다 맛있었나요? 그렇다면 잘 튀긴 튀김만 맛보며 사셨다는 건데, 운이 매우 좋은 분들인걸요? 아니면 '막입'이거나요. 저는 살면서 맛있는 튀김과 맛없는 튀김 만난 비율이 50:50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노량진 수산 시장의 튀김 매대.

막 튀기고 막 쌓아 축축해진 튀김옷.

먹기도 전에 튀김옷이 홀랑 벗겨진다.

 

 

 

 

 

 

 


도곡 <SSG>에 입점한 어느 유명 분식집의 돌덩이 튀김.

 

 

 

 

 

 

 


<딤딤섬> 코엑스 파르나스몰점의 기름 범벅 춘권.
너무 기름져서 그냥은 도저히 못 먹것다.
춘권 두 개의 기름을 냅킨 아홉 장 써서 닦아 냈을 정도.

 

 

 

 

 

 

 

 


시절이 하 수상하여 지난 광복절 연휴 동안 어디 놀러는 못 가고 집에서 음식에 관한 책이나 한 권 읽었습니다. 일간지 몇 곳에서 신간 저자 인터뷰를 실어 놓았길래 당장 서점에 달려가 한 권 샀죠. 표지를 노오란 식용유색 써서 잘도 디자인했습니다. 특정 음식에 관한 인문·사회적, 과학적 연구는 서양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드문 일이고 튀김에 관한 책은 이 책이 세계 최초라며 극찬의 추천사가 달렸습니다. 단행본으로는 최초일지 몰라도 튀김에 관한 심도 있는 관찰과 연구를 담은 문헌들은 서양쪽에 이미 많이 나와 있습니다. 당장 저희 집에도 튀김에 관해 깊이 있게 다룬 요리책들이 몇 권 있는걸요. 어쨌든, 쟁쟁한 선행 문헌들이 있는데도 신간이 나왔다면 선행 문헌들이 다루지 못한 무언가를 하나라도 더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책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크기가 작고 두께가 얇습니다. 얇아도 정보의 밀도만 높으면 되지요. 이 책이 다루는 내용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목차를 그대로 복사해 붙여 보겠습니다.



프롤로그: 기름에 튀기면 과학도, 교양도 맛있다!


1장 인류는 언제부터 튀기기 시작했을까

전 세계인의 소울 푸드, 튀김|튀기면 맛이 부풀어 오른다|기름이 없으면 튀김도 없다|요리가 인류를 진화시키다|기름의 대중화가 곧 튀김의 대중화|지방을 선호하는 인간의 본능|곤충의 바삭함과 닮은 튀김의 식감

 

2장 세상에 튀기지 못할 재료는 없다

 

아시아에 진출한 중세 유럽의 야채튀김: 덴푸라

덴푸라와 오뎅은 다르다?|선교사들의 튀김을 모방하다|궁극의 튀김옷을 완성하다

 

세 겹의 튀김옷을 껴입은 돼지고기: 돈카츠

서양 콤플렉스를 요리로 승화하다|돈카츠의 무한 변신|돈카츠와 돈가스의 차이|두드려라, 부드러워질 것이니


기름과 건조 기술로 세상을 구휼하다: 라면

세상을 뒤바꾼 인스턴트 라면의 탄생|보존성과 간편성을 높인 튀김 기술|과연 라면 스프는 건강에 해로울까


신대륙에서 닭튀김의 신세계가 열리다: 프라이드치킨

아프리카 노예들의 한과 혼을 요리하다|양념과 향신료로 치장한 닭고기들|치킨으로 전 세계를 점령한 대령


이름만 프랑스인 국적 불명의 감자 요리: 프렌치프라이

프렌치프라이는 정말 프랑스 요리일까?|냉동 유통 기술의 혁신|프렌치프라이를 건강하게 즐기는 방법

 

영국인의 영원한 ‘생선과 감자’ 친구: 피시앤칩스

15세기 알람브라에서 건너온 유대 요리|영국 노동자들을 위한 진수성찬|식욕을 돋우는 갈색의 비밀


소스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요리: 탕수육

탕수육과 꿔바로우의 조상, 꾸루로우|아편 전쟁이라는 출생의 비밀|걸쭉한 소스의 완성은 전분의 농도

 

3장 ‘겉바속촉’을 완성하는 튀김의 과학

구멍이 많을수록 바삭해진다|글루텐 보호막으로 육즙의 유출을 막아라|빵가루로 완성하는 궁극의 바삭함|왜 집에서 만든 튀김보다 전문점 튀김이 더 맛있을까|튀김이 무지하게 ‘당기는’ 과학적 이유|마이야르 반응, 세상에 없던 풍미를 만들다|달콤하게 타 버렸다, 캐러멜화 반응|튀김의 세계에 불가능이란 없다: 과일 튀김, 아이스크림 튀김, 고중력 튀김


4장 기름은 튀김의 친구인가 적인가

튀김 맛의 절반은 기름 맛|식용 유지가 만들어지는 과정|다이어트를 방해하는 지방의 두 얼굴|우리 건강을 해치는 주범, 산화된 기름|기름의 산화를 막는 최선의 방법|어떤 기름이 튀김에 더 적합한가


5장 튀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옷을 입다

밀가루가 튀김옷 재료로 안성맞춤인 까닭|튀김옷에 적합한 밀가루는 따로 있다|밀가루가 그냥 옷이면, 배터믹스는 날개옷|반죽에 맥주를 넣으면 튀김옷발이 산다|고소한 접착제 달걀과 비법 양념 시즈닝


6장 기름과 온도의 마술사, 튀김기의 구석구석

막강한 화력의 원조 튀김기 듀오, 칩 팬과 웍|튀김꾼들의 로망, 업소용 튀김기 파헤치기|높은 압력으로 육질을 부드럽게, 압력 튀김기|낮은 압력으로 골고루 익히는 진공 튀김기|튀김의 패러다임을 바꾼 에어 프라이어


에필로그: 우리의 튀김순애보는 계속된다!



재미있겠죠? 인문·사회적 관점에서 '튀김론'을 푼 뒤, 세계의 유명 튀김 요리들과 식품을 다루고, 튀김의 원리를 설명하려는 모양입니다. 프렌치 프라이 이야기한 김에 세계인이 즐겨 먹는 유탕 과자인 감자칩과 2000년대 들어와 유행한 'triple cooked chips'도 언급하면 좋았겠는데요.

 

 

 

 

 

 

 

 

 

꼼지락거리면서 느릿느릿 독서하는 단단이지만 이 책은 책 크기가 작은데 글자와 여백은 크고 설명이 쉬워 몇 시간만에 후딱 다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 머리가 너무 굵어진 것 같습니다. 영미권에서 쏟아져 나온 음식에 대한 고급 정보들을 하도 많이 접해서 책을 끝까지 읽어도 저한테는 딱히 흥미로운 정보랄 게 없는 겁니다. (어머?) 그간 읽었던 문헌들에 비해 정보의 밀도가 낮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인문·사회적 관점의 서술 부분들에서는 주장하고자 하는 바의 논거가 약하고 논리적 비약이 심해 살짝 '답정너' 같은 면도 느껴지고, 과학쪽 설명에서는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사항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 뒤표지에 담긴 본문 발췌글을 보십시오. 저자는 세계의 유명 튀김 요리들을 노예, 노동자, 전쟁, 서양인에 대한 동양인의 열등감, 설움이라는 정서에 기대 '소울 푸드'로 규정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런데 저는 저자의 이런 주장이 좀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한국인의 특기가 뭡니까, 음식을 자꾸 한이나 설움, 정 같은 개념과 엮으려 들고 걸핏하면 '오마니이~ 훌쩍훌쩍' 하려 든다는 거죠. 젊은 사람들도 그럽니다. 다음 브런치에 올라온 음식글들 보면 맨 이런 글들이에요. (대개 따옴표 쓴 대화체로 시작.)

 

저자가 꼽고 있는 대표 튀김 요리들을 다 소울 푸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들은 그냥 '컴포트 푸드'이거나 '별미'일 수도 있습니다. (책 읽는 동안 저자가 소울 푸드와 컴포트 푸드 개념을 혼동한 채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영국의 피쉬 앤드 칩스에는 영양가 높고 맛있는 고맙고 친근한 음식이라는 의미만 있지 소울 푸드의 정서는 없습니다. 돈카츠는 그냥 별미죠. 저자가 탕수육의 조상이라고 하는 꾸루로우咕噜肉도 그렇고요. 광동에 원래 있었던 음식을 영국인들이 먹기 편하게끔 형태를 바꿔 만들어 달라고 주문해 탄생한 음식이었고, 맛있으니 현지인들한테도 퍼진 거지, 여기에 무슨 소울 푸드 개념이 끼어 듭니까.

 

'내 비록 과학자이지만 인문·사회학적 소양도 충분하다오'를 뽐내고 싶으셨는지, 책의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저자는 이제는 널리 알려져 새로울 것 없는 지식들을 나열합니다. '아마 ~ 때문에 ~ 됐을 것이다'라는 추정이 가득하고, 잘 알려진 역사를 갖다 붙이느라 정작 음식 자체에 대해서는 설명이 불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아는 아편전쟁의 발발 원인을 몇 쪽에 걸쳐 설명하느니 차라리 당시 영국인들의 요청에 의해 광동에서 탄생했다는 그 탕수육의 조상 꾸루로우의 외형과 재료, 조리법, 맛에 대한 정보나 좀 더 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젓가락질이 서툰 영국인들이 포크로 쉽게 먹을 수 있게끔 고안한 고기 요리가 꾸루로우이고, 이 꾸루로우로부터 꿔바로우와 탕수육이 파생되었다고 써 있는데, 아니? 젓가락으로 집어 먹을 수 있는 고기를 포크로 못 찍어 먹을 이유가 있나요?


이 부분이 도통 이해가 안 돼 누리터를 뒤져 보니, 광동에 머물던 영국인들이 그곳 음식 중 뼈가 그대로 붙어 있는 돼지갈비구이를 특히 좋아했는데, 끈적한 양념이 발려 있는데다 뼈까지 박혀 있으니 먹기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답니다. 그래서 포크로 먹기 좋게끔 뼈 없이 살만 잘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해 탄생한 음식이라는군요. 저자의 설명이 충분치 않아 이해하는 데 애를 먹었던 겁니다. 젓가락질은 물론 서툴렀겠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젓가락질 문제가 아니라 뼈째 나오는 끈적이는 고기요리를 우아하게 먹을 수 있게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나오게 된 음식이라는 거죠. 정작 필요한 설명은 빠져 있고, 빠져도 될 역사 이야기는 깁니다. 

 

그런가 하면 과학쪽 설명에서는 튀기기 실제에 관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가 이 책에서 보고 싶었던 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 삼각무역 당시의 노예들과 노예선, 아편전쟁 당시의 중국 아편굴 삽화와 설명 같은, 역사책이나 인문서에서 지겹도록 본 이미지들과 내용이 아니라, 맛있는 튀김을 위한 선택과 노하우였습니다. (빌렌도르프 비너스는 유지油脂가 아니라 탄수화물을 잔뜩 집어먹어 그리도 풍만한 몸매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책을 쓴 분이 과학을 전공하셨고 현재도 과학 관련 일을 하고 계신다기에 저는 연구를 바탕으로 한 실용적인 조언을 잔뜩 얻게 될 걸로 기대하고 책을 샀는데, 이 점에서는 집에 있는 잘 쓰인 영미권 요리책들만 못합니다. (<In Search of Perfection> (2006), <Heston Blumenthal at Home> (2011), <The Food Lab>(2015) 등. 마지막에 언급한 책은 한글 번역판이 나와 있습니다.)

 

튀김 좋아하는 벗들이여, 밀가루와 식용유의 생산과정이 궁금합니까? 저는 그보다는 현재 튀김에 쓰이고 있는 온갖 가루들의 종류, 결과물에 나타나는 각 가루들의 특장점과 단점, 유지油脂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물의 맛과 식감, 그리고 맛, 식감, 건강 등의 요소를 종합해 고려해 봤을 때 튀김을 위한 최적의 유지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들이 더 궁금했는데요.

  

과학자가 쓴 책답게 원리 설명은 잘 돼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갖고 있는 책들에서도 튀김의 원리는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깨알 같은 노하우에 좋은 레서피까지 수록하고 있죠. <The Food Lab>의 저자는 심지어 과학자 출신의 요리사인걸요. 헤스톤 블루멘쏠은 뭐 다들 잘 아실 테고요.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원리 설명은 있지만 무언가 끈질기게 탐구해서 찾아 낸 좋은 정보도 부재합니다. <The Food Lab>의 저자는 튀김을 다룬 마지막 장에서 튀김에 적합한 유지를 찾기 위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유지들을 모아 열 두 그룹으로 나누어 일일이 튀겨서 맛보고 비교하는 수고를 합니다. 이때 이론적 지식과 실제 사이에 괴리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절충을 시도합니다. 이런 건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원리 설명에서는 할 수 없는 작업이죠. 제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일개 블로거인 저도 종종 무언가를 알아내거나 좋은 선택지를 찾기 위해 부엌에 처박혀 끈질기게 실험해 보거나 실습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맛있는 튀김옷 믹스를 만들려고 애써 봤는데 쉽지 않아 포기했어.' 김빠지는 소리만 합니다. '처가가 운영하는 돈카츠 집에서 육질 연하게 하려고 고기를 밤새 두드려 봤는데 이 작업을 잘하기가 생각보다 힘들었어.' 하는 대목도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귀띔은 없고 그냥 그러고 끝입니다. 그리고는 여느 가정주부도 할 수 있을 법한 말들을 합니다. 예를 들어,


'튀김용 기름은 발연점이 높은 걸 써야 한다',
'포화지방은 몸에 해로우니 튀김용 기름으로 좋지 않다',
'감자튀김은 맛있지만 몸에 나쁘므로 많이 먹으면 안 된다',
'인스탄트 라면 분말 스프는 적당히만 먹으면 해롭지 않다',
'튀김옷에 베이킹 소다나 탄산수를 활용하면 좀 더 바삭하게 만들 수 있다',


"한편 탕수육에 곁들이는 소스에는 당근, 양파, 오이, 목이버섯, 완두콩과 같은 야채들이 들어가며, 기호에 따라 파인애플처럼 단맛이 나는 과일을 넣기도 합니다. 끓는 물에 설탕과 식초, 전분물을 넣어 진득하게 만든 후 소스가 끓으면 미리 다듬은 채소를 넣고 살짝 익혀 줍니다. 이때 소스의 걸쭉한 정도는 전분물을 얼마나 넣느냐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124쪽]


"튀김 반죽을 만들 때 맥주를 넣으면 바삭함이 더해진다. 이 외에도 맥주는 청소, 옷 관리, 미용, 화초 가꾸기 등에 쓰이기도 한다. 물론 그 원리는 튀김에 사용하는 것과 다르다." [208쪽]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이렇게 너무 당연한 소리를 하는 부분이 이 책에 많습니다. 차라리 'troubleshooting' 장chapter을 만들어 '튀김이 충분히 바삭하지 않아요', '튀김옷이 홀랑 벗겨져요', '튀김이 돌덩이 같아요', '기름 뒤처리 하는 거 더럽게 힘들어요', '한 번 쓴 기름을 걸러서 다시 쓰는 거, 괜찮을까요?', '깨끗한 새 기름으로 튀겼더니 오히려 튀김이 덜 맛있어요', '보관해 둔 튀김을 다시 데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완성된 튀김에서 기름을 최대한 많이 빼내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등에 대한 답을 과학 원리를 이용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식품에 관한 저자의 지식도 업데이트가 덜 된 느낌이 듭니다. 예를 들어 유지에 관한 대목을 보자면, 저자는 동물성 유지가 식물성 유지에 비해 포화지방이 많아 몸에 해롭다는 견해를 여러 곳에서 피력합니다. 포화지방 함량의 높고 낮음과 발연점, 이 두 가지를 튀김 기름으로서의 적합성을 판가름하는 척도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다 아는 얘기죠. 그런데 최근 연구들은 이와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하잖아요. 포화지방 함량이 낮은 식물성 유지에서도 여러 가지 물질들의 이름을 대며 유해 요소를 밝혀내 기존 연구를 뒤집는 일이 허다합니다. 오히려 포화지방 많은 버터, 라드, 거위기름 같은 동물성 유지가 열을 가했을 때 더 안정적이며, 발연점이 그보다 더 높은 유지들이 많이 있는데도 올리브유, 비가열압착 유채유 등이 튀김에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을 합니다. ☞ Which oils are best to cook with?


요리사들도 저자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포화지방 함량이 높아도, 발연점이 낮아도, 맛과 식감을 위해 이들은 기꺼이 저자가 적합치 않다고 하는 유지들을 사용합니다. 식객들도 모처럼 튀김을 사 먹을 때는 건강 문제는 잠시 제쳐 두고 맛있게 먹는 쪽을 선호하고요. 유럽에서는 튀김이나 볶는 요리에 포화지방 많은 동물성 유지를 많이 씁니다. 일본에서는 덴뿌라 만들 때 참기름을 섞어 줍니다. 왜냐? 더 바삭하고 고소하고 맛있거든요. 즉,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는 거지요. 이런 사실은 음식에 조금만 관심 있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도 다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포화지방은 좋지 않다, 발연점이 높은 유지가 좋다,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합니다. (참고로, 저자가 책에서 제시한 참기름의 발연점은 210˚C, 조리과학서 <Modernist Cuisine>이 제시한 참기름 발연점은 210-215˚C로, 튀김용 정제 참기름의 발연점은 통념보다 높은 편이나 이보다 높은 식용유가 수두룩.) 


일간지의 인터뷰 기사와 서평들을 보고 저는 저자가 과학자인데다 처가가 돈카츠 집을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과학적 설명을 하면서도 업장 운영을 통해 얻은 실제 경험들과 노하우를 좌악 풀어 줄 줄로 알았습니다. 이론과 실제로 탄탄하게 구성된 책을 기대했는데, 결국 원리 설명과 처가가 돈카츠 집을 한다는 광고만 하다 끝났습니다. 

 

 

 

 

 

 

 


<팀호완>의 눈 녹듯 사르르 흩어지는 신기한 튀김옷의
오징어튀김.

무슨 가루를 썼길래?

튀김옷에 쓰이는 각종 가루들과 결과물에 나타나는 특성이 궁금하다.

 



인류가 튀김을 좋아하게 된 이유로 저자는 이런저런 서양쪽 문헌들을 언급하면서 (1) 생존을 위해서는 탄수화물이나 단백질보다 열량이 두 배 이상 높은 지방을 선호하는 건 당연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류의 DNA에 지방 선호가 각인되었다, 그래서 튀김을 좋아하게 되었다, (2) 초기 인류의 주식이었던 곤충과 비슷한 식감이라서 튀김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다, (3)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교회력에 따라 육식을 금하던 기간들이 있었는데 이때 채소나 생선을 튀겨 먹어 허한 마음을 달랬던 관습에서 튀김 선호가 이어질 수 있었다, (4) 마이야르 반응과 캐러멜화 반응, 그리고 제6미로 꼽히는 기름진 맛이 들어 있으니 맛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꼽습니다.

 

저는 여기에 하나 더 보태렵니다. (5) 튀김을 먹는다는 건 헤비메탈보다도 더 과격한 소리의 음악을 듣는 것과 같다. 우리의 고막과 뇌는 때때로 강렬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 (저는 눅눅해진 머리통에 굉음의 스타카토와 스타카티시모로 싸대기 때리기 위해 튀김을 먹습니다.)

 

촤아아, 치이이 - 재료가 입유할 때 나는 소리

쩡! 쩌적! - 기름이 지나치게 달궈졌을 때 나는 소리

빡! - 기름 빡치는 소리? 큰 수분 입자가 기름과 불화하며 튀는 소리

자글자글자글자글 - 수증기 담긴 기포를 내뿜으며 튀겨지는 소리

파사삭 - 완성된 튀김을 한 입 베어무는 소리

콰득, 콰직콰직콰직 - 힘차게 튀김 씹어먹는 소리 등


튀김에 관여하는 소리들은 우리의 귀에 신선한 자극을 줍니다. 매우 음악적이어서 튀김 소리만 모아다 구체음악
musique concrète 만들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집에 갖고 있는 책들에서 얻은 가정집 튀김 노하우를 제가 시간 날 때마다 정리해 이 밑에 적어 드리려 하는데요, 개강이 다가와 바빠졌으니 오늘은 몇 개만 적어 볼게요.



<가정집 튀김을 위한 정보>


튀김 용기

wok이 좋다. 형태상 냄비 밖으로 기름이 덜 튀어 뒤처리하기가 수월하고, 튀김 재료를 기름 안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게 하기에 좋고, 내용물이 잘 넘치지 않고, 찌꺼기 숨을 데가 없어 기름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쉽다. [The Food Lab] (*한글 번역판이 나와 있습니다.) 

 

튀김 기름

발연점, 맛, 식감, 셋 다를 고려한다면 땅콩기름을 쓰는 것이 좋다. 프라이드 치킨이나 치킨 프라이드 스테이크 같은 요리에는 땅콩기름과 베이컨기름을 7:1(즉, 땅콩기름 1리터에 베이컨기름 125ml)로 섞어 쓰면 맛있다. 단, 채소나 생선 같은 좀 더 섬세한 재료에는 베이컨기름 섞어 쓰기를 추천하지 않는다. [The Food Lab, 이하 'FL']

 

(단단: 이렇게 조언하기 위해 저자는 유지를 12개 그룹으로 나누어 일일이 실험해 맛과 식감을 비교·평가합니다.) (위 동영상 속의 뉴욕 미슐랑 스타 덴뿌라 장인은 튀김 기름으로 세 가지 식용유를 섞어 쓰는데, 생선과 채소의 맛을 살리기 위해 면실유를, 우마미와 향을 위해 참기름을, 식감을 위해 땅콩기름을 섞는다고 합니다. 보세요, 요리사들이 기름을 선택할 때는 건강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닌 겁니다. ) (위에서도 썼듯 튀김에 가장 적합한 '건강한' 유지에 대해서는 현재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영국쪽 과학자와 의사들은 버터, 라드, 거위지방 같은 동물성 유지가 식물성 유지들보다 오히려 낫고, 안정성, 편의성 등 이런저런 요소들을 모두 고려하면 올리브유가 가장 좋다고 주장합니다. 올리브유의 'extra virgin' 유무는 큰 차이를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온도계

기름 온도를 잘 맞추는 건 매우 중요하니 가정집에서도 질 좋은 전문가용 탐침 온도계를 하나 장만해 두자. 즉각 온도를 표시해 주는 <써마펜Thermapen>을 추천한다. [FL]


완성된 튀김에서 기름 최대한 많이 빼내기

기름솥에서 건져 낸 직후가 기름이 가장 많이 스며드는 순간이니(70%) 이때 빨리 빼내야 한다. 금속 랙에 올리면 표면장력 때문에 기름이 생각만큼 잘 빠지지 않는다. 키친타월이 최고다. 모세관 현상으로 금속 랙에 비해 기름을 네 배나 더 빼낸다. 키친타월에 올려 한 면의 기름을 빼고 뒤집어서 반대쪽의 기름도 마저 빼 주자. [FL]


(단단: 제가 일본 덴뿌라 장인들의 작업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 보니, 긴 젓가락으로 기름솥에서 튀김을 건져 낼 때 고깔체conical sieve 원리처럼 튀김 중 면적이 가장 좁은 쪽을 아래로 향하게 해 기름을 주르륵 빼내고, 그 다음엔 상하로 팔을 크게 흔들어 큰 기름 방울들을 툭툭 떨궈 냅니다. 그리고 나서 손님 접시의 흰 종이에 올리는데, 놀랍게도 종이에 기름이 거의 묻어나지 않습니다. 순식간이지만 기름이 잘 빠졌다는 소리죠. 그런데, 매일 튀김을 튀겨 대는 장인들이나 이런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있지, 저같이 뜨거운 기름 무서워하는 쫄보는 그냥 키친타월을 쓸 수밖에요.)


양념과 소금

기름에서 건지자마자, 표면에 기름기가 아직 남아 있을 때 바로 뿌려야 잘 달라 붙어 있는다. [FL]

 

그 외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법한 자질구레한 사항들


- 재료에 물기가 최대한 적을수록 좋으니 튀김옷 입히기 전에 표면이라도 좀 닦아 주자. [FL]


- 기름솥에 재료를 한 번에 많이 넣지 말자. 기름 온도 떨어져 맛없는 튀김 된다. [FL]


- 그물국자로 기름솥 가장자리를 시계 방향으로 젓다가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틀면 튀김 찌꺼기들이 그물국자에 우르르 딸려와 담긴다. [FL]

 

- 기름은 빛만 쐐도 품질이 저하되니 서늘하고 컴컴한 데 보관하고 사용을 마치면 빨리 원위치에 놓자. [상식]

 

- 조리 원리로 따지자면 튀김옷 속 재료는 사실 쪄지고 있는 것이다. 고로, 튀김은 바삭한 옷을 입은 찜이다. [상식]

 


[계속]




☞ 피쉬 앤드 칩스 잘 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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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텐동집의 담음새가 근사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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