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팀호완 삼성점 - 차림표에 있는 것 다 먹어 봤습니다 본문

한식과 세계 음식

팀호완 삼성점 - 차림표에 있는 것 다 먹어 봤습니다

단 단 2020. 8. 7. 21:48

 

 

 

 

홍콩의 유명한 딤섬집 <팀호완>이 작년 12월 삼성동에 문을 열었습니다. 저 이 근처에 사는데 이 사실을 블로그 이웃이신 ☞ 보름달 님 글 보고 알았습니다. 뭡니까, 저? 전에는 뿌까 님이 디저트 집 <리틀 & 머치>의 존재를 알려 주셔서 거기도 걸어서 갔다 왔는데요. 동네 소식을 왜 타지 분들께 들어서 알게 되는 거죠? 게으른 주민 같으니.

 

코로나 시국을 맞아 이 집이 배달을 시작하면서부터 줄 서기가 한결 완화되었습니다. 코로나가 무서워 사람 적은 시간에만 갔더니 줄 서지 않고 매번 바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액자 사진은 이 집의 '시그너춰 디쉬'인 구운 차슈바오 번과 인기 음식들을 담고 있습니다. 홍콩식 우육면, 청펀, 연잎밥, 하가우, 차슈바오 번, 샤오마이가 보입니다.

 

 

 

 

 

 

 

 

 

아, 연잎밥.

음식우표 글에서 오래 전에 소개해 놓고는 정작 저는 이번에 처음 맛보았습니다.

 

 

 

 

 

 

 

 

 

식탁 위에는 고추 소스, 원조 영국 우스터셔 소스가 아닌 탄산음료맛 나는 한국식 단 우스터셔 소스, 백후추, 간장이 놓여 있으니 취향껏 곁들여 드시면 됩니다. 맛과 간이 충분해서 저는 이 장들이 필요 없었습니다.

<리 & 페린스> 우스터셔 소스

 

 

 

 

 

 

 

 

 

주문서.

음료를 빼면 총 스물여섯 개의 음식이 있단 말이죠.

흐음...

 

집에서 가까워 쉽게 걸어 올 수 있고, 단품당 가격도 그리 높지 않고, 제가 못 먹는 식재료를 쓴 음식은 하나도 없으니 이 정도 가짓수면 빠짐없이 다 시도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몇 번에 걸쳐 다 먹어 봤습니다.

 

 

 

 

 

 

 

 

 

주문서에 있는 순서대로 올려 봅니다.

 

먼저, 차슈바오 번.

6,000원.

 

이 집의 '시그너춰 디쉬'인데, 여러 차례 방문할 때마다 주방 쪽을 유심히 관찰해 보니 정말로 사람들이 이걸 가장 많이 주문합니다. 주방에서 끊임없이 이 음식이 나옵니다. 오븐에 구운 '소보로' 차슈바오는 이 집에서 처음 먹어 봤는데, 더께가 모카 번 위에 붙은 더께와 비슷한 식감을 내고, 철판에 닿았던 바닥은 구운 색이 좀 더 나면서 바삭합니다. 차슈 소는 돼지고기가 큼직한 덩이로 씹히거나 하진 않고 소스에 잘 풀어져 어우러져 있습니다. 차슈바오는 찐 것, 구운 것, 지짐판에 넣고 아래 위를 지진 것, 이렇게 세 가지 판이 있다죠? 이스트 풍미 물씬 나는 찐 차슈바오만 즐겨 먹다가 구운 차슈바오를 맛보니 또 색다른 맛이 있고 좋네요. 한국에서는 어딜 가면 (잘 만든) 찐 차슈바오를 사 먹을 수 있을까요?

런던 차이나타운, 쿵푸 팬더, 차슈바오, 대나무 찜기

 

 

 

 

 

 

 

 

 

하가우.

5,000원.

 

하가우 애호가들은 하가우를 맛볼 때 새우 소가 '탱글탱글' 씹힌다며 찬양하지만 이 집 하가우는 새우를 딱 알맞게 익혔는지 그간 맛본 하가우 중 가장 부드럽게 씹히면서 온화한 맛을 냅니다. 죽순 넣고 맛낸 우리 집 하가우와 맛이 많이 다르네요. 저는 잘 만든 하가우를 볼 때마다 귀여워서 >_< 이런 얼굴 하고 부르르 떱니다. 동그란 모양과 주름이 꼭 양말고양이의 도톰한 발과 수염 같지 않나요?

하가우 처음 만들어 본 날

 

 

 

 

 

 

 

 

 

샤오마이.

4,500원.

 

새우, 돼지고기, 표고로 맛낸 우마미 폭탄. 표고맛이 인상적입니다.

 

 

 

 

 

 

 

 

 

부채교.

5,000원.

 

시금치를 넣은 변종 하가우입니다. 누리터에서 방문기를 찾아 보니 부추를 넣었다고 잘못 쓰신 분들이 많아요. 그건 부추를 넣은 변종 하가우인 '구채교'이고, 이건 시금치를 넣은 변종 하가우인 '부채교'. 음식 모양과 색이 같고 발음까지 비슷하니 헷갈려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런데,

 

먹어 보면 부추맛과 시금치맛 구분이 안 돼요? 부추가 얼마나 특색 있고 강한 맛 나는 향신채인데요.

 

 

 

 

 

 

 

 

 

차슈 라이스 롤.

5,500원.

 

차슈 쌀피말이. 쌀피말이를 '청펀'이라고 부릅니다. 만듦새는 형편없지만 맛은 좋습니다. 존재감 있게 씹히는 돼지고기와 부들부들한 쌀피의 식감 대비와 조화가 일품. 저 '단짠' 소스는 색만 저렇게 까맣지 실제로는 많이 짜지 않습니다.

 

 

 

 

 

 

 

 

 

새우 라이스 롤.

6,000원.

 

'청펀'은 이제 하가우나 샤오마이처럼 잘 알려진 음식이라서 본명을 써 줘도 될 텐데요. 이 집 음식은 다 제 입맛에 잘 맞는데 이것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가격 맞추느라 그랬는지 새우 소를 너무 적게 넣어 두꺼운 쌀피맛밖에 안 납니다. 쌀피를 왜 이렇게 두껍게 말았을까요. 새우 든 음식 먹는다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부들부들한 찐 쌀피를 맛난 양념장에 적셔 먹는다고 생각하시면 덜 의아할 겁니다.

 

 

 

 

 

 

 

 

 

두유피 롤.

5,500원.

 

돼지고기와 새우 혼합 소를 말린 두부 피로 말아 기름에 지진 뒤 그걸 다시 찝니다. (으응?) 그 뒤 '단짠' 소스에 푹 적셔서 냅니다. 고소한 피가 질깃질깃 씹혀 재미있습니다. 이것도 이 집 인기 음식인 듯합니다. 많이들 시키더라고요. 다쓰베이더도 좋아합니다.

 

 

 

 

 

 

 

 

 

돼지갈비찜.

5,000원.

 

우마미가 물씬 나면서 맛과 식감이 온화한 돼지갈비찜. 돼지고기에 전분 옷을 입혀 튀긴 다음 양념에 적셔 찐 모양입니다. 전분 옷 때문에 깨물면 첫 입bite에는 살짝 저항을 하며 오돌오돌 씹히다가 고기 자체는 부드럽게 씹힙니다. 한국식 탕수육 생각하고 비교하면 눅눅해서 실망하실 테고, 완전히 다른 음식이라 생각하고 드시면 맛있게 드실 수 있을 겁니다. '찜'이니 사실 바삭한 탕수육과 비교하면 안 되죠. 이것도 맛있지만, 똑같은 이 돼지갈비찜을 덮밥 형태로 낸 것이 좀 더 맛있었습니다. 저 아래에서 소개해 드립니다.

 

위에 몇 개 올린 까만 콩은 발효시킨 콩으로, 쓴맛이 강하면서도 향수 같은 강한 향기가 있어 마치 100%짜리 다크 쵸콜렛을 먹는 듯합니다. 악센트 역할을 합니다. 

 

 

 

 

 

 

 

 

 

홍콩식 무 케이크 '로박고'(蘿蔔糕)

5,000원.

 

지질 때 동물성 기름을 쓰는 건지, 아니면 양념이나 다져 넣은 재료에 어떤 비밀이 있는 건지, 주재료인 쌀가루, 무, 중국 햄과 소세지 등 외에 뭔지 모를 독특하고 매력적인 맛이 한 겹 더 얹혀집니다. 좋아해서 자주 주문해 먹습니다. 중국 햄과 소세지만 쉽게 구할 수 있다면 집에서도 해먹고 싶습니다. 왜 딤섬 클래식이 되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로박고 만들기 - 보통 정성이 아냐

 

 

 

 

 

 

 

 

 

두유피 새우 춘권.

6,000원.

 

단백질 성분의 피로 새우를 감싸 튀기니 질 좋은 어묵 맛이 납니다. 직원이 우스터셔 소스에 찍어 먹으라고 권합니다.

 

 

 

 

 

 

 

 

 

닭고기 춘권.

6,000원.

 

얇고 바삭한 쌀피, 중국풍 향신료가 은은하게 풍기는 촉촉하고 맛있는 닭고기 소.

 

 

 

 

 

 

 

 

 

고추냉이 새우 춘권.

6,000원.

 

한국 진출을 기념해 선보인 특별 메뉴 두 개 중 하나라고 합니다. 나머지 하나는 저 밑에 소개해 드릴 매콤한 볶음밥입니다. 마치 하가우를 그대로 튀긴 듯한 맛이 납니다. 하가우보다 저는 이게 더 맛있더라고요. 새우가 정말 많이 들었고, 튀긴 피가 바삭바삭이 아니라 꼬독꼬독 씹혀 맛있으면서 재미있습니다. 와사비 소스와 잘 어울립니다. 주방을 슬쩍 들여다보니 튀긴 뒤 오븐에 넣어 'crisp-up'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영국 요리사 헤스톤 블루멘쏠Heston Blumenthal도 ☞ 스코치 에그 만들 때 이렇게 하면 더 바삭하다고 귀띔합니다. 

 

 

 

 

 

 

 

 

 

오징어튀김.

6,000원.

 

이거 시킨 분들은 거의 다 맥주를 함께 시킵니다. 한 번 씹으면 튀김 옷과 오징어가 입 안에서 사르르 부서져 흩어지는 매우 신기하고 가벼운 질감의 오징어튀김입니다. 홍고추가 제법 성깔 있어 먹고 나면 입술이 오랫동안 화끈거립니다. 한국 홍고추가 아니라 동남아 쥐똥고추bird's eye chilli를 쓰나 봅니다.

 

 

 

 

 

 

 

 

 

사천식 완탕.

7,000원.

 

"손님, 이 음식에는 고수가 들어가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직원분들이 주문 시 이렇게 꼭 묻도록 훈련 받는 모양입니다.

 

"네, 고수 잘 먹으니 많이 주세요."

저는 'OK'란 뜻으로 이렇게 답한 건데 완탕이 뒤덮힐 정도로 고수가 수북이 얹혀 나왔습니다. (직원분, 고맙습니다;;)

 

원래는 바닥에 고추기름을 섞은 듯한 까만 '단짠' 소스가 깔리고, 그 위에 하얀 완탕이 네 개 담긴 뒤, 각각의 완탕 위에 노오란 간마늘과 빠알간 홍고추가 얹히고, 가장자리에는 녹색의 다진 고수가 빙 둘러지는 예쁜 음식인데 저렇게 고수가 숲처럼 담겨 나왔어요. ㅋㅋ

 

나는 고수를 잘 먹는데 일행 중 고수를 못 먹는 사람이 있으면 고수를 접시에 따로 담아 달라고 부탁해도 됩니다.

 

홍콩음식과 이 집 음식이 느끼하다고 여기는 분들께는 구세주 같은 음식이 될 테니 이거 하나 시킨 뒤 바닥에 남는 소스는 다른 음식 드실 때 찍어 드세요. '사천식 완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맛이 강렬합니다. 심지어 생마늘도 들어갑니다. 한국의 다른 딤섬집들도 매콤한 완탕을 내기는 하는데 '안전'을 위해 대개는 고수를 넣지 않죠. 고수 넣은 이 집 완탕, 저는 환영합니다. 맛과 향이 한층 다채로워집니다.  

 

참, 이건 돼지고기 완탕입니다. 아래에 나올 홍콩식 완탕면에는 새우 완탕이 들어갑니다. 

 

 

 

 

 

 

 

 

 

계절 야채(팀호완 특제 소스).

5,000원.

 

이제는 마트에서도 흔히 살 수 있어 집에서 (더 맛있게) 해먹을 수 있는 청경채.

 

 

 

 

 

 

 

 

 

양상추(팀호완 특제 소스).

5,000원.

 

양상추를 기름물에 살짝 데친 뒤 (뭣?) 우마미 짙은 '단짠' 소스를 끼얹어 냅니다. 양배추도 아닌 양상추를 익혀 먹다뇨. 그런데 이게 의외로 맛있습니다. 이 음식을 맛보고는 제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양상추를 데쳐서는 미리 만들어 둔 소스를 끼얹어 내기만 하는데 5천원을 받아요. 한식당들은 이보다 품도 훨씬 많이 들고 재료비도 훨씬 더 드는 김치를 공짜로 몇 번이고 내주잖아요? 우리 한식당들도 이제는 음식 내는 방식을 재고해 봐야 합니다.

한식의 처지

식당 반찬도 주문제로 바뀌었으면 좋겠어

 

 

 

 

 

 

 

 

 

드디어 맛보는 연잎밥.

7,000원.

 

먹으면서 이게 광동, 홍콩 사람들의 '컴포트 푸드'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연잎을 펼치니 김 펄펄 나는 쫀득한 하얀 찰밥이 보이고 그 속에 맛있게 양념한 갈색의 고기와 표고가 묻혀 있습니다. 맨 위의 매장 액자 사진을 보시면 됩니다. 밥에 밴 연잎향이 생소하지만 좋네요. 속에 든 재료들과 찰밥이 섞이니 맛있고요. 제 음식우표들 중에 딤섬을 묘사하고 있는 우표들이 꽤 있는데, 거기에 이 연잎밥이 있으니 한번 찾아 보십시오. 눈 내리는 겨울날 여기 와서 이거 먹으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음식우표] 마카오 찻집 풍경

 

 

 

 

 

 

 

 

 

돼지갈비 덮밥.

6,500원.

 

위에서 소개한 돼지갈비찜을 이번에는 '단짠' 소스 뿌린 밥 위에 얹어 냅니다. 일본 가라아게동과 비슷한 모습인데, 위에 얹은 돼지갈비찜이 심심한 듯하면서도 소스 뿌린 쌀밥에 잘 어울립니다. 먹을수록 맛있게 느껴집니다. 쌀이 늘 먹던 우리 쌀과는 생김새도 식감도 달라 주방에 물어 보니 "베트남 안남미"라고 답합니다. 찰기 없이 건조해서 덮밥 밑에 소스 뿌려 내는 밥으로는 제격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식감이 좋더라고요. 이 집 볶음밥들도 같은 쌀을 쓰는 것 같습니다.

 

 

 

 

 

 

 

 

 

양저우 볶음밥.

8,000원.

 

여어~ 버적버적 건조하게 씹히는 고소한 볶음밥. 보기에는 별것 없어 보이는데 식감도 맛도 제 취향입니다.

 

 

 

 

 

 

 

 

 

X.O. 차슈 볶음밥.

8,000원.

 

이번에는 한국라면의 분말 '스프' 맛이 나는 매콤한 볶음밥. 이것도 버적버적 씹히면서 고소합니다. 성깔kick이 있어 한국인들 입맛에 잘 맞을 듯합니다. 먹고 나면 입술이 한참 동안 화끈거립니다. 한국 진출을 기념해 선보인 메뉴라고 합니다.

 

 

 

 

 

 

 

 

 

홍콩식 완탕면.

8,000원.

 

홍콩이 꼽은 자기네 4대 진미에 이 완탕면이 들어갑니다. 저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꼬들꼬들한 세면과 새우·돼지고기 혼합 소로 된 완탕, 그리고 맛있는 국물. 국물은 새우 대가리와 껍질로 진하게 우렸습니다. 뼈 고은 물, 고기 육수, 멸치 육수는 익숙해도 새우 육수는 처음 먹어 봤는데 제 입맛에는 잘 맞았습니다. 이 집이 새우 쓰는 요리가 많아 부산물을 이렇게 활용하는 겁니다. 현명합니다. 

[음식우표] 홍콩의 진미들

 

 

 

 

 

 

 

 

 

홍콩식 우육면.

9,500원.

 

간장과 오향으로 맛낸 큼직한 쇠고기 덩이와 꼬들꼬들한 세면. 이 집에서 가장 비싼 음식인데, 맛도, 향도, 식감도 마음에 쏙 듭니다. 고기, 면, 국물 다 맛있습니다. 고기는 양념을 잘 했고 질감도 부드럽습니다. 새우 완탕면과 기본 국물을 같이 쓰는 듯합니다. 쇠고기 국물이기는 하나 여기서도 새우 대가리 맛이 납니다. 귀국해서 지금까지 사 먹었던 우육면 중에서는 이게 제 입맛에 가장 잘 맞았습니다.

한국에서 사 먹은 우육면들

 

 

 

 

 

 

 

 

 

홍콩식 콘지.

5,000원.

 

온화한 맛의 걸죽한 닭죽. 실처럼 가늘게 찢긴 닭고기살이 넉넉히 들었고 고소한 피딴(송화단)도 올라가 있습니다. 이것도 연잎밥과 함께 광동, 홍콩 사람들의 '컴포트 푸드'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몸 아플 때 이거 사 먹는 사람 많겠습니다.

 

 

 

 

 

 

 

 

 

스폰지 케이크.

4,000원.

 

<팀호완>의 이 갈색 나는 뜨거운 스폰지 케이크 좋아하는 분 계세요? 저랑 친구합시다. 다쓰 부처는 굉장히 좋아하는 맛인데 한국인들 입맛에는 맞지 않을 듯합니다. 이거 맛있다는 분을 못 봤어요. 영국의 클래식 푸딩 중에 뜨겁게 내는 ☞ 스티키 토피 푸딩이란 게 있는데, 그걸 덜 달고 덜 기름지게 동양식으로 순화한 듯합니다. '아련한 영국의 맛'이랄까요. 

 

영국의 스폰지 케이크가 말레이시아에 전해져 홍콩에까지 건너간 뒤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변형되었다고 합니다. 중화권에서는 '馬拉糕' - '말라이고' 혹은 '말라이가오'라고 부릅니다. '말레이시아 케이크'라는 뜻입니다. 영국의 클래식 푸딩이 현지화를 거쳐 딤섬 클래식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누리터에 레서피가 많이 돌아다니니 집에 오븐이 없는 분들도 시도해 볼 만합니다.

Ma Lai Go Chinese Steamed Cake

 

오븐에 굽지 않고 찜기에 찌기 때문에 부슬부슬 흩어지는 영국식 스폰지와 푹신푹신한 증편의 중간쯤 되는 식감이 납니다. 스티키 토피 푸딩처럼 반죽에 머스코바도 설탕이나 블랙 트리클을 섞나 봅니다. 비정제 설탕 특유의 맛과 향이 나고 진한 버터(유제품) 풍미에 이스트 풍미까지 더해져서 다쓰 부처 입맛에는 아주 잘 맞습니다. 올 때마다 주문합니다.

 

 

 

 

 

 

 

 

 

홍콩식 에그 타트.

3,500원.

 

아유, 크기가 이렇게 작을 줄은 몰랐습니다. 영국의 에그 커스타드 타트 생각하고 주문했다가 하도 작고 앙증맞아 웃음이 다 나왔었습니다. 영국 에그 커스타드 타트의 홍콩식 변형이라는데, 단맛도 대폭 줄이고, '퐈'한 맛의 성깔 있는 넛멕nutmeg도 생략하고, 구운 뒤 식지 않도록 찜기에 넣어 보관하는지 타트 껍질도 눅눅해져서 씹으면 바삭하지가 않고 힘 없이 녹아 내립니다. 다른 맛 없이 그야말로 고소하고 순한 달걀맛만 나는데, 그런데 이것도 이 나름대로 맛이 괜찮습니다. 자극이 없어서 꼭 아기들 음식 같습니다.

[영국음식] 에그 커스타드 타트

[영국음식] 메이즈 오브 오너 타트

 

 

 

 

 

 

 

 

 

국화 알로에 젤리.

3,500원.

 

국화차를 젤라틴으로 굳힌 뒤 깍둑 썬 알로에를 잔뜩 얹고 말린 자두 다진 것을 소량 뿌려 냅니다. 그런데 이 말린 자두가 너무 딱딱하고 군내가 많이 나서 전체 맛을 그르칩니다. 젤라틴을 적정량 이상 썼는지,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굳혔는지 젤리도 지나치게 단단하고요. 숟가락으로 자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먹으면서 목구멍으로 큰 덩이가 쏙 미끄러져 들어가 질식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먹었습니다. 보기와는 달리 '어른의 맛'이 납니다.

 

 

 

 

 

 

 

 

 

위에 열거한 수많은 딤섬들은 결국 차음식이죠. 홍콩 사람들은 딤섬 먹을 때 보이차를 마신다고 합니다. 이 집도 그래서 보이차를 내주기는 하는데, 여름이라고 차게 식힌 걸로 줍니다. 공짜입니다. 홍콩에서는 딤섬집들이 기본 자릿세로 찻값을 받습니다. 대신 제대로 된 찻주전자에 찻잎을 담아 내주고, 요청하면 여러 번 탕수를 채워 줍니다. 한국에서 손님한테 물값 받았다가는 인심 박한 집, 천하에 악덕한 집으로 소문 나 망하는 건 시간 문제죠. 심지어 반찬도 공짜로 요청해 먹는 나라인데요. 저 같은 차인은 찻값을 내더라도 제대로 된 자기 찻주전자에 담긴 따뜻한 차로 받아 보고 싶긴 합니다.

 

홍콩의 차 관련 우표를 잠깐 보고 오십시오.

[음식우표] 홍콩의 차 도구와 차 문화

 

아래의 딤섬 우표에서는 식탁 위에 올라와 있는 찻주전자가 모두 몇 개인지 재미 삼아 한번 세어 보세요.

[음식우표] 마카오의 딤섬 한 상 차림

 

 

이렇게 해서 <팀호완>의 음식을 모두 맛보았는데요, 아, 저한테 어떤 걸 주문하면 좋을지는 묻지 마세요. 저는 입맛이 여느 한국인들과 많이 다릅니다. 제가 맛있어 하는 건 다들 맛없다 하고, 남들이 맛없어 하는 건 또 제 입맛에 잘 맞고 그러더라고요.

 

 

이 집의 특징 및 딤섬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1. 몇몇 식재료만 가지고 이렇게저렇게 식감을 달리해 내니 음식 가짓수는 많아도 재료 낭비가 적고 효율적이다. 특히 새우와 돼지고기를 쓴 음식들이 많다. (이 집은 어째 소롱포가 없누.)

 

2. '특제 소스' 하나를 잘 만들어 여기저기 참 많이도 활용한다. 이것도 매우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3. 한국인들의 식성을 고려해 매운맛 나는 음식을 세 개 끼워 넣기는 했으나[사천식 완탕, 오징어튀김, X.O. 차슈 볶음밥] 전반적으로는 오신채를 우리만큼 많이 쓰지는 않고 지방을 넉넉히 쓰면서 재료 맛이 드러나게끔 조리한 음식들이 많다. 한국인들 중에는 홍콩음식을 느끼하다고 여길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누리터에서 홍콩음식 글들을 찾아 보니 과연 홍콩음식 느끼하다고 불평하는 한국인이 많습니다.)

 

4. 그러니 딤섬을 먹을 때는 술이든, 탄산음료든, 차든, 느끼함을 씻어 줄 음료가 필수다.

 

5. 유럽 음식도 오신채를 많이 쓰지 않고 재료맛을 살려 조리하면서 지방은 거리낌없이 쓰는데, 이런 심심하면서 느끼한 유럽 음식을 좋아하는 다쓰 부처 입맛에는 홍콩음식도 아주 잘 맞는다. 오신채를 한식만큼 많이 쓰지는 않지만 대신 중화풍 향신료를 쓰므로 몇몇 음식들에서는 이국적인 느낌이 나서 좋다.

 

6. 딤섬의 가장 큰 장점으로 나는

 

• 한 그릇의 양이 많지 않다는 점

 

을 꼽고 싶다. 방이동 <봉피양> 냉면을 좋아하지만 일년에 한 번 사 먹을까말까한데, 이유는, 면 양이 너무 많아 반만 먹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주방에서 애써 만들어 내준 음식을 반이나 남기고 오자니 미안하고 눈치 보여 자주 못 가겠다. 다른 한식 국숫집들도 마찬가지. 외식할 때마다 1인분 양이 많은 것이 늘 부담스럽다. 중화권의 국숫집들은 국수를 '양 적게'와 '양 많이'로 구분해 판다는데, 이들의 '대'(大)가 한국의 '보통'에 해당한다고. 적은 양의 면을 남김 없이 맛있게 먹으면서 만두나 다른 요리도 같이 맛보고 싶은데 한국에서는 1인분 양이 많아 그게 힘들다. 딤섬 집에서는 가능하다.

 

7. 딤섬의 장점을 또 꼽자면,

 

• 공짜로 주는 음식이 일절 없다는 것

 

• 찬 늘어놓을 일이 없으니 잔반 생길 일도 없다는 것

 

• 가짓수가 많아 입맛 제각각인 사람들이 모여 같이 밥을 먹더라도 각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 몇 가지는 차림표에서 꼭 발견할 수 있다는 것

 

• 양이 적고 값이 싸니 잘 모르는 음식 시켰다가 맛이 없어도 금전적으로 큰 손해 볼 일 없고 맛있으면 한 접시 더 주문해 먹으면 된다는 것

 

• 출출할 때는 한두 개만 시키고 배가 많이 고플 때는 여러 개 시킬 수 있다는 것 

 

여러 면에서 합리적인 식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남유럽과 중동에도 이같은 식문화가 있다. (따빠스, 삔쵸스, 치케티, 메쩨 등.) 한식집들도 깍쟁이 같으면서 효율적인 딤섬집 시스템을 눈여겨보고 잘 활용해 너무 힘겹게 장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끝으로, 딤섬에 대한 기사들과 제 옛 글을 걸어 봅니다.

[알고먹는, 딤섬 ①] '마음에 찍은 점', '장국영의 소울푸드'

[알고먹는, 딤섬 ②] 샤오마이, 집에서도 만들 수 있나요?

[알고먹는, 딤섬 ③] '홍연' 황티엔푸 셰프, "저염, 당일 재료는 당일 소진" 기본 지킨 광동의 맛

[기사] 세계서 가장 싼 미쉐린

뿌까 님처럼 나도 런던에서 맛본 딤섬이 최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