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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 쿠커, 달걀 찜기 장만기 본문
▲ 광고 이미지들
▲ 단단이 구매한 제품 포장 실물
요즘 말로는 '지름기'라고 해야 합니까?
지르긴요, 필요한 물건 사는 건데.
저도 '주방용품 사용기'란 걸 다 올려 봅니다.
달걀 삶는 게 하도 성가셔서 달걀 찜기를 하나 장만했습니다. 냄비에 달걀 삶는 거, 은근히 신경 많이 쓰이죠. 일단 삶을 달걀의 개수에 맞춰 냄비 크기를 잘 선택해야 하고, 노른자가 쏠리지 않고 정가운데에 예쁘게 오게 하려면 삶는 동안 물을 천천히 휘저어 달걀이 계속 회전하게 해야 합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또 반대 방향으로 저어야 하고요. (→ 푸드 스타일리스트한테 얻은 조언임.) 다른 재료들도 준비해야 하는데 달걀 삶느라 꼼짝을 할 수가 있어야죠. 게다가 천천히 달아오르고 천천히 식는 우리 집 전열판 위에서는 불조절도 보통 힘든 게 아녜요. 그래서 달걀 찜기를 사기로 결심했죠.
식구 수가 적고 부엌이 좁으므로 달걀이 예닐곱 개씩 들어가는 덩치 큰 원형제품 대신 벽에 납작하게 붙일 수 있는 직사각 3구짜리 작은 제품을 골랐습니다.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묵은 삶은 달걀 먹는 걸 싫어해 달걀을 필요할 때마다 즉석에서 삶아 쓰는데(아, 맛이 완전히 달라요), 어떤 땐 달걀 한 개 삶자고 냄비 꺼내고 물 끓이고, 어휴, 귀찮아서 안 먹고 말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디자인의 독일 <크룹스Krups> 제품을 샀습니다. 복잡한 기능 없이 그냥 달걀만 쪄 주는 기본형입니다. 스크램블드 에그나 프라이드 에그, 수란 등은 불 위에서 직접 하는 게 빠르고 효과적이므로 저는 찌는 기능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독일에서 배송시켰는데, 같은 EU 국가라서 수입품이라도 관세가 안 붙습니다. 싸게 잘 샀어요. 독일, 프랑스 직구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 그리 멀지 않아서 배송도 빠릅니다. 영국 물건 사는 것보다 하루 이틀 정도만 더 걸려 온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독일인들은 영어를 잘해 물건 사기도 편합니다.
주섬주섬 꺼내 봅니다. 아, 역시나 과대 포장과는 거리가 먼 독일. 영국도 과대 포장 안 합니다. 수퍼마켓에서 종이상자에 든 홍차를 한 통 사면 종이상자 안에 바로 티백이 들어 있어 아직도 놀라요. '뜨아, 포장이 이게 다야?' 그런데 독일 수퍼마켓에서 산 홍차도 그렇더라고요.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진보다는 그림이 더 알아보기 좋죠? 이케아IKEA 설명서 그림보다 정교하네요. 플라스틱 관은 물 양을 재는 데 씁니다. 관 아래쪽에는 완숙, 반숙, 살짝 익힘 표시가 되어 있고, 위쪽에는 1, 2, 3 숫자와 함께 달걀 개수에 맞는 물 높이가 표시돼 있습니다.
사용 설명서에 있던 그림입니다.
"여덟 살 꼬맹이도 아침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캬핫, 9번 그림 좀 보세요. 조리되는 그 잠깐 동안 지들끼리 막 다퉜는지, 가운데 녀석은 중간에 끼여 부글부글 열 받아 하고 있고 바깥쪽 달걀들은 쫑알쫑알 성질. ㅋ
삶고자 하는 달걀 개수와 노른자 굳기 정도를 선택한 뒤 플라스틱 관의 눈금을 이용해 금속 수조 안에 알맞은 양의 물을 담습니다.
그런 다음 달걀의 둥근 쪽 끝부분을 침으로 꼭 찔러 줍니다. 플라스틱 관 바닥에 뾰족한 침이 박혀 있습니다. 찌는 동안 달걀이 깨지지 않게 해줍니다. (그래도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찬 달걀을 바로 삶으면 깨질 수 있으니 주의.) 달걀을 너무 신선한 것으로 쓰면 껍질 까기가 어려워지니 신선한 달걀은 수란이나 프라이 할 때 쓰시고 (흰자가 안 퍼지고 노른자는 봉긋해서 모양이 예쁨.) 삶는 용도로는 좀 묵은 달걀을 쓰세요.
묵은 달걀인지 신선한 달걀인지는 어떻게 아느냐?
물 담은 컵에 넣었을 때 뜨면 묵은 달걀, 옆으로 누우면서 가라앉으면 신선한 달걀입니다. 묵은 달걀은 달걀 속 공기 주머니가 커져 있어 둥둥 뜨거나 세로로 꼿꼿이 섭니다.
그런 다음, 구멍 뚫린 부분이 위로 오도록 달걀 거치대에 조로록 올려 놓습니다. (실제로 삶는 게 아니므로 구멍은 안 뚫었음.) 아, 이 손잡이 있는 거치대가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뜨거운 달걀에 손 댈 필요 없이 손잡이만 잡고 들어 올려 개수대로 가져가면 되거든요.
본체 위에 달걀 거치대를 다시 올리고,
(달걀들 위에 구멍이 하나씩 뽕 뚫려 있다고 상상하세요.)
뚜껑을 씌워 전원 단추를 누르면 조리 시작.
본체 수조 안의 물이 다 증발하면 다 됐다고 소리를 냅니다. 지구가 곧 멸망이라도 할 것처럼 엄청난 굉음을 내므로 절대 놓칠 수가 없어요. 소리 못 듣고 태울까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아기 있는 집은 겨우 재운 아기 깰 수 있으니 조심하시고요.
반숙 한 개와 완숙 한 개를 쪄 보았습니다. 노른자는 원하는 굳기 대로 잘 나와 주나 흰자는 냄비에 삶았을 때보다 약간 더 단단하게 나옵니다. 삶는 것과 찌는 데서 오는 차이인가 봅니다. 참고로, 저는 달걀 무게가 63~73g 정도 되는 'UK large size' 달걀을 썼습니다.
편하긴 참 편합니다. 냄비에 삶을 때 깜박 잊고 꺼내는 시간을 놓쳐 오래 익히게 되면 노른자와 흰자 경계 부분에 회녹색 띠가 생기죠. 이러면 흰자에서 고약한 황화수소 냄새가 나서 맛이 나빠집니다. 냉면집 막 삶은 달걀의 그 '쿠린내' 아시죠? 이런 달걀 먹으면 'wind' 냄새도 지독해진다고 하잖아요. 달걀 찜기를 쓰면 그럴 일이 없지요. (달걀 찜기를 쓰더라도 다 익힌 뒤 재빨리 찬물에 식혀주지 않으면 띠가 생길 수 있으니 부지런 떨어야 합니다.)
참고로, 서양인이 생각하는 완숙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완숙과 다릅니다. 제가 달걀 찜기로 찐 완숙 달걀 사진을 보세요. 바로 위의 사진에서는 오른쪽 세 개[six, eight, ten] 정도가 여기 사람들한테 완숙입니다. 한국의 냉면집 달걀처럼 가운데에 촉촉한 주황색 부분 하나 없이 흐린 노란색으로 균일하게 익은, 다소 건조해 보이는 노른자는 여기서는 과하게 익힌 'overcooked' 달걀로 여깁니다.
아직 여러 번 써 보질 않아 성능이 좋다 나쁘다 성급히 결론을 내릴 수는 없으나, 이 제품의 가장 큰 장점으로 저는 달걀 거치대에 긴 손잡이가 달렸다는 점, 부피가 작고 직사각 형태라 벽에 얌전히 붙여 둘 수 있다는 점을 꼽겠습니다.
사 놓고 과연 자주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이런 물건 살 때 항상 큰 걸림돌로 작용을 하지요. 저희는 고기를 잘 먹지 않기 때문에 요리에 달걀과 치즈를 많이 씁니다. 삶은 달걀로는 그럼 무슨 음식들을 해먹느냐?
제가 자주 해먹는 삶은 달걀 요리 몇 가지를 열거해 보자면요,
인도의 달걀 커리 '에그 쿠르마kurma'.
기본 향신료 외에 회향fennel seeds, 계피를 함께 넣어 천상의 향이 납니다. 인도에서는 집에 갑자기 손님이 왔는데 커리 건더기 재료가 마땅치 않으면 이 에그 쿠르마를 해서 낸다고들 하죠. 인도인이 쓴 커리 책 보고 만듭니다. 어우, 맛있어요. ☞ 에그 쿠르마 만들기
영국의 클래식 티 샌드위치인 에그 앤 크레스 샌드위치.
삶은 달걀 굵게 다진 것을 커리 파우더와 마요네즈 섞은 것에 버무려 크레스cress 또는 워터크레스watercress와 함께 빵 사이에 끼웁니다. 신선하고, 담백하고, 고소하고, 알싸하고, 달걀 흰자가 왠지 시원한 느낌을 주는 맛있는 샌드위치입니다만, 한국인들 입맛엔 좀 싱거울지 모르겠습니다. 이 샌드위치의 간을 알맞다고 여기는 분들은 평소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잘 안 드시는 분들일 겁니다. ☞ 에그 앤 크레스 샌드위치 만들기
영국의 전통 아침 식사인 케저리kegeree.
훈제 해덕과 삶은 달걀을 넣은 커리 볶음밥입니다. 바스마티 향에 훈제 생선 향, 영국식 커리 파우더 향, 버터의 향이 어우러져 고소하고 맛있습니다. 영국인들은 아침에 단백질을 충분히 먹어야 한다는 강박증 비슷한 것이 있어 달걀이나 훈제 생선 등을 열심히 먹습니다. ☞ 케저리 만들기
영국인들의 김밥과도 같은 스코치 에그Scotch eggs.
영국인들이 피크닉 갈 때 단골로 싸갖고 나가는 음식입니다. 삶은 달걀을 소세지 고기로 감싸 빵가루 입혀 튀긴 뒤 반 갈라 각자 선호하는 소스에 찍어 먹습니다. 노른자가 소스처럼 흐르거나 꾸덕꾸덕해야 제대로 만든 걸로 간주합니다. 반 갈랐는데 완숙 달걀이 나오면 잘 못 만든 겁니다. 만들고 나서 반 가를 때 항상 조마조마하죠. ☞ 스코치 에그 만들기
영혼을 위로하는 '컴포트 푸드' 피쉬 파이 속에도 삶은 달걀이 들어갑니다. ☞ 피쉬 파이 만들기
내 인생 최고의 인스탄트 라면, 싱가포르 프리마 테이스트 락사 라면.
삶은 달걀을 꼭 얹어야 합니다. 국물 흠뻑 머금은 노른자가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는지 모릅니다. 제가 처음이라 멋모르고 저렇게 꾸미를 욕심 내서 잔뜩 올렸는데, 저기 올린 것의 3분의 1정도만 얹으면 된다고 하네요. ㅋ
프랑스 니스와즈 샐러드도 빠질 수 없죠.
안초비와 삶은 달걀, 통조림 참치 뱃살과 삶은 달걀, 다 잘 어울립니다. (훈제 연어와 삶은 달걀도 잘 어울립니다.) 우마미 짙은 짭짤한 생선과 담백하고 고소한 달걀이 서로를 보완합니다. ☞ 니스와즈 샐러드 조립하기
즉, 이런 식으로 드시면 좋다는 거죠. 안초비 2분의 1포fillet에 삶은 달걀 4분의 1쪽입니다. 양질의 단백질을 손쉽게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조제 쇠고기인 이태리의 ☞ 브레자올라를 이용한 샐러드에도.
이 달걀 찜기는 제가 좀 더 사용해 보고 추천을 하든지 사지 마시라고 극구 말리든지 하겠습니다. 몇 번 써 보지도 않고 성급히 추천했다가 실없는 사람 취급 받을까 두렵습니다. 지금까지는 쓰는 데 별문제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신중해야겠지요. 앞으로 한 열 번 정도 더 써 본 후 솔직하게 평점을 남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이에 고장 나면 욕을 바가지로 써 놓겠습니다. ■
2016년 2월 5일, 스무 번 이상 쓴 후 -
쓰기 편하고 결과도 매번 훌륭합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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