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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감자칩 Potato Chips, Crisps 본문
오랜만에 글 씁니다. 오늘 글도 깁니다. 이번에는 다들 좋아하시는 감자칩 한 봉지, 아니, 두 봉지 갖고 오셔서 컴퓨터 앞에 앉으세요. 크롬Chrome 화면으로 보시면 더 좋습니다.
▲ 윌리엄과 케이트의 결혼식 다음날 집에서 즐겼던 영국 <티를스Tyrrell's> 감자칩. 2011년.
감자칩 궁금증 풀기
Q: 짭짤한 맛 과자 중 단단 님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A: 감자칩.
Q: 영국에서는 감자칩을 'potato chips'라 하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면서요?
A: '크리습스crisps'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치면 '바삭이'쯤 됩니다. 영국에서 '칩스chips'는 버거집에서 보는 것 같은 손가락 모양의 길죽한 감자튀김을 말합니다.
Q: 전세계에서 1인당 감자칩을 가장 많이 먹는 나라는 어디인가요?
A: 2019년 최신 통계에 의하면 미국. 1인당 연간 감자칩 섭취량:
• 미국 5.3 kg
• 캐나다 3.0 kg
• 프랑스 2.3 kg
• 네덜란드 2.3 kg
• 아일랜드 2.2 kg
• 덴마크 2.1 kg
• 뉴질랜드 2.0 kg
• 영국 1.9 kg
• 러시아 1.9 kg
• 독일 1.5 kg
• 스웨덴 1.5 kg
• 호주 1.5 kg
• 이태리 1.4 kg
• 노르웨이 1.3 kg
• 아랍 에미레이트 1.1 kg
• 싱가포르 0.9 kg
• 홍콩 0.9 kg
• 이집트 0.8 kg
• 스페인 0.7 kg
• 일본 0.7 kg
• 한국 0.6 kg [전세계 평균과 같음]
• 중국 0.04 kg [감자 생산량은 세계 1위]
Q: 전세계에서 가장 큰 감자칩 생산공장이 있는 나라는 어디인가요?
A: 영국. 잉글랜드 레스터Leicester에 있는 <워커스Walkers> 제1공장이 가장 크며, 이 회사의 생산량은 그 뒤를 잇는 영국 내 다른 감자칩 브랜드 9개의 생산량을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워커스>에서만 하루 7백만 봉지의 감자칩을 생산하는데, 한 공장에서 이렇게 많이 생산해 내는데도 영국인들이 먹어대는 감자칩의 56%밖에 충당을 못 한다고 합니다. 이 공장에서만 연간 34만 톤의 감자가 쓰인다는데도요. 그래서 다른 브랜드가 많이 존재하는 거죠.
Q: 그런데, 감자칩은 언제 어디서 처음 '발명'되었을까요?
A: 1817년 영국.
Q: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자칩 맛은 무엇인가요?
A: 영국 최대 판매량을 자랑하는 <워커스> 사 통계에 의하면 '치즈와 양파 맛'. 기본 15종 이상의 다양한 맛을 내고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Top 5'는 거의 항상 다음의 다섯 종류라고 합니다.
1. Cheese and Onion
2. Ready Salted
3. Salt and Vinegar
4. Prawn Cocktail
5. Chicken
감자칩의 유래
오늘은 전세계에 샌드위치보다 더 많이 퍼져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을 감자칩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음식사학자들이 어떤 음식의 발상지를 따질 때는 대개 그 음식이 언급된 최초의 문서를 근거 삼아 결정 내리곤 하지요. 현재로서는 1817년 영국인 윌리엄 키치너William Kitchiner가 쓴 당대 베스트 셀러 요리책 《The Cook's Oracle》에 실린 레서피를 감자칩의 시초로 봅니다. 이보다 약간 앞선 18세기 말의 프랑스 문헌에 두툼하게 썬 감자에 반죽을 입혀 튀긴, 말하자면 우리 한국 분식집 튀김 매대에서 볼 수 있는 감자튀김과 유사한 것이 이미 언급돼 있기는 하나, 얇게 저며 반죽 입히지 않고 기름에 바로 튀긴 영국 레서피를 감자칩의 원조로 보는 것 같습니다. 기름에 익힌 감자는 사실 감자가 생산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지요. 이럴 때는 외형과 식감이 원조를 가리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듯합니다. 1817년의 영국 레서피를 원서에서 발췌해 붙여 봅니다. 1830년에는 같은 요리책이 미국판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감자칩용 감자에 대해
감자는 보통 물 80%에 전분과 당이 20%라서 바삭하게 튀기기가 힘들고 당분 때문에 쉬 까맣게 변한다고 합니다. 뽀얀 감자칩이 되려면 당분이 적어야 하고 튀기기 편하려면 수분도 75% 정도로 줄여야 합니다. 그래서 감자칩용 품종을 따로 개발해 씁니다. 만일 영국의 일반 소비자들이 가정용으로 많이 찾는 분질 '킹 에드워드King Edward' 품종을 쓰면 식감이 너무 까슬거리고, 점질인 '마리스 피어Maris Peer' 품종을 쓰면 당분이 많아 까맣게 된다고 합니다. 감자칩 품종으로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세 가지로, '마퀴스Marquees', '레이디 로제타Lady Rosetta', '허미즈Hermes'.
영국에서 현재 재배되고 있는 감자 품종은 230종 이상인데, 이 중에서 반 정도는 일반 소비자가 살 수 있고 나머지는 보드카용, 전분용(냉동 와플 등을 만들 때), 감자칩용 등으로 쓰입니다.
감자는 사철 나는 게 아니므로 때로는 저장을 해야 하죠. 여름에 나오는 새 감자는 껍질이 얇지만 긴 저장 기간을 거친 봄 감자는 쟈킷 포테이토처럼 껍질이 두껍고 질깁니다. 이렇게 철마다 감자 특성이 달라지므로 감자칩 공장에 감자가 배달돼 오면 감자 성분을 분석해 조리 세팅을 조절해 주어야 합니다. 감자칩 공장의 생산 과정을 다룬 BBC 프로그램을 보고 그 기술에 감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생물 감자를 써야 하는 감자칩은 밀가루, 쌀가루, 감잣가루 같은 분말 원료를 쓰는 과자들에 비해 얼마나 번거롭고 수고스러운지를 그때 깨닫게 되었습니다. 원료비도 다른 과자들에 비해 더 든다고 하죠.
세척과 껍질 까기를 마친 감자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콘베이어 벨트를 타게 됩니다. 이때 카메라가 감자 한알 한알을 일일이 사진 찍어 형태나 색이 불량해 보이는 것은 자동으로 밀어내 퇴출시킵니다. 감자칩용 감자는 형태가 길죽하지 않고 동그랄수록 좋은데, 어느 방향으로 자르든 최대한 균일한 모양이 되야 하기 때문입니다. 크기도 적당히 크면 좋은 것이, 슬라이스 한 크기가 커야 봉지 안에 얼기설기 담겨 부피를 늘릴 수 있습니다. 대개 감자 한 알당 한 봉지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감자 크기가 너무 작으면 같은 무게라도 부피가 봉지의 반도 안 차 양이 적은 것처럼 보여 소비자가 삐친다고 합니다. ㅋ 그래서 감자칩 세계에서만은 포장에 질소 빵빵하게 충전하는 관행이 용서되죠. 이렇게 하지 않아 감자칩이 산산이 부서져 봉지 바닥에 깔리게 되면 사정을 잘 모르는 소비자는 봉지 열어 보고 분노합니다. 부피를 보지 말고 중량을 보세요.
<워커스> 공장에서는 트럭에 싣고 온 감자가 짐 부린 지 35분만에 봉지에 담긴 칩이 돼서 나옵니다. 엄청난 속도입니다. 전국 수퍼마켓에 분배하는 데도 시간이 얼마 안 걸리는지, 영국 살 동안은 그야말로 신선한 감자칩을 원없이 먹었습니다.
영국 공장제 감자칩 발전에 큰 획을 그은 두 가지 사건
영국과 이웃한 아일랜드도 대표적인 '감자국가'죠. 1950년대에 아일랜드에서 세계 최초로 감자칩용 시즈닝을 개발해 감자칩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때 나온 첫 시즈닝 맛은 무엇이었을까요?
'치즈와 양파Cheese and Onion 맛'.
'소금과 식초Salt and Vinegar 맛'.
이 두 가지 맛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아일랜드 사람들과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자칩 맛이 되었습니다. 식초맛 감자칩이라니, 뜨악해 하실 분 계시겠지만 튀긴 감자와 식초의 조합은 피쉬 앤드 칩스에 몰트 비니거malt vinegar를 뿌려 먹는 관습에서 비롯된 겁니다. 영국인들은 튀김이나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식초를 뿌리거나 매우 신 피클을 곁들이는 습관이 있어 감자칩에도 신맛을 자주 활용합니다. 미국에서는 곧바로 '사워 크림과 양파Sour Cream and Onion 맛', '바베큐 Barbecue 맛'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사워 크림의 신맛도 감자칩에 참 잘 어울리죠.
또 하나의 사건은,
미국의 <케틀 칩스Kettle Chips>가 1987년 영국에 진출해 이후 영국 감자칩 시장에 <티를스Tyrrell's>, <버츠Burt's>, <센세이션스Walkers Sensations> 같은 두껍고 단단한 질감의 'hand-cooked' 고급 제품 브랜드를 속속 생기게 자극했다는 것.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의 브랜드별 이야기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영국 <워커스> 사 일반 감자칩 제품군
영국의 감자칩 시장 점유율 1위인 <워커스>의 감자칩들입니다. 영국에서는 감자칩 30-40g을 1인분으로 잡습니다. 펍pub에 가면 돈 없는 대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 이런 소포장 감자칩 한 봉지 앞에 놓고 술 마시고 있는 장면을 수두룩 볼 수 있습니다. 안주도 없이 깡술 마시는 사람도 많고요. (주머니 사정 문제가 아니라 영국 음주 문화가 그런 듯. 돈 많이 도는 런던 금융가 펍에서도 깡술 마시고 있는 씨티맨들 종종 목격.)
영국 <워커스> 사 고급 감자칩 제품군 '센세이션스'
<워커스> 사의 고급 제품군 감자칩들입니다. 재미있는 맛들 많죠? 단단도 이 제품들을 많이 사 먹었었습니다. 맛 설명을 무슨 향수 광고하듯 '톱 노트', '미들 노트', '라스트 노트'로 구별해 놓았습니다.
영국 <티렐스> 제품군
이 블로그에서 포장 디자인의 우수 사례로 그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는 <티렐스> 감자칩들입니다. ('티를스'가 본고장 발음에 더 가깝습니다.) 포장 사진이 짓궂은 데가 있고naughty 원료도 맛도 좋아 애호가가 많습니다. 하나씩 나열해 볼게요.
기본 중의 기본, 소금만 친 감자칩.
1817년 최초의 감자칩에 가장 가까운 형태죠.
소금에 후추까지 가미한 맛.
두 다리 사이 거대한 후추갈이pepper mill, 좋네요. ㅋ
이것도 기본 중의 기본 맛일 것 같은데, 전세계 감자칩들 맛을 잘 살펴보면요, 의외로 후추맛 감자칩이 드뭅니다.
애호가가 아주 많은 식초맛 감자칩.
영감님, 사과술인 싸이더 마시고 알딸딸해지셨구만요. ㅋ
영국인들이 애용하는 싸이더 비니거나 몰트 비니거가 많이 쓰이고, 발사믹 비니거도 감자칩 맛내는 데 자주 쓰입니다. 저도 식초맛 감자칩, 신맛 나는 감자칩을 좋아합니다.
블랙 트러플 맛.
트러플은 이태리와 프랑스에만 나는 게 아니라 유럽 전역과 영국에서도 납니다. 한국에서는 얼마 전에 <오리온>이 표고맛 감자칩을 출시했죠. 추천합니다. 세련되게 맛을 잘 냈더라고요.
(이것 때문에 경고 먹었습니다. 게다가 작성자조차 손 못 대게 접근을 차단해 이 긴 글을 새로 다시 썼습니다. 나참 어이가 없어서.) "소금조차 안 친 감자칩을 뭣에 써?" 요리에 활용하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드레싱 혹은 소스를 곁들여 먹으라고 내는 거지요. 소금 섭취를 극도로 제한해야 할 사람들한테도 고마운 제품이겠고요. 잘 팔린다고 합니다.
숙성 체다와 차이브 맛.
치즈나 크림 같은 유제품, 그리고, (마늘을 제외한) 양파, 차이브, 파, 리크 같은 알리움allium 계열의 조합은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자칩 맛입니다.
이건 유제품과 고추 맛.
그렇죠, 매운 고추 먹었으면 유제품으로 불 꺼야죠.
훈제 파프리카 가루 맛.
사진이. ㅋㅋㅋㅋ
옆 사람은 지금 천불이 나는데 무심하기 짝이 없는 땡땡이옷 여인. 테이블 위 찻주전자에 찻물 식지 말라고 뜨개질한 티 코지tea cosy 씌워 놓은 것 좀 보세요.
영국의 옛 시절 소방관 복장이 저랬습니다. 매운 음식 먹고 불 났으니 어서 불 꺼야죠. 칠리나 페퍼 맛도 기본 맛으로 꼭 출시해야 합니다.
아마도 영국에서만 맛볼 수 있을 새우 콕테일 맛.
영국에 있을 때는 영국에서만 볼 수 있는 제품들도 부지런히 사서 맛보았습니다. 이건 영국음식 중 인기 있는 전식starter인 새우 콕테일 맛인데, 신맛과 새우맛 좋아하는 단단 입맛에 딱이었습니다.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감자칩 맛 상위 5위 안에도 꼭 들어가는 맛입니다.
클래식 중의 클래식, 돼지고기와 크랜베리.
☞ 허니 로스트 햄
☞ 크랜베리 소스
☞ 포크 파이와 크랜베리 콤포트
로스트 치킨이 빠질 수 없죠.
채식을 실천하는 종교가 아니라면 어느 종교 신봉자든 다 커버할 수 있는 닭고기. 그래서 인종 전시장 영국에서는 닭고기 요리가 눈에 많이 띕니다. 와아, 영국 토종닭 실하네요.
참,
포장의 문구 중 'hand-cooked'라는 건 뭐냐면요, 사람이 직접 기름솥을 저어 가며 소량씩 튀긴다는 뜻입니다. 생산비가 더 들겠죠. 그래서 고급 제품군에 이 방식이 쓰입니다. 영국에서는 'hand-cooked'라 하고, 미국에서는 'kettle-cooked'라 부르는데, 미국의 <케틀 칩스>는 브랜드 이름으로 유추컨대 이 방식을 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맛에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
우선, 대량생산 칩들에 비해 두께를 살짝 더 두툼하게 썰어 튀기고, 둘째, 그렇게 썬 감자의 표면에 붙어 있는 전분을 물로 씻어 내지 않고 튀겨 마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이 내는 'triple-cooked chips'처럼 단단한 식감이 납니다. 씹으면 '바삭'이 아니라 '깨드득' 소리가 나죠. 셋째, 합성 시즈닝이 아니라 진짜 재료들을 분말화해 넣어서 맛을 냅니다. 그래서 값이 비싸며, 미식가용 칩으로 여깁니다.
다채로운 식감을 위해 감자칩 회사들이 기본 제품군 외에 이런 골진 형태crinkle cut도 함께 내는 관행이 있습니다. <오리온> 포카칩과 스윙칩(V)의 차이를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오, '아버딘 앵거스 비프 맛'이라니요. 그레이비 곁들인 로스트 비프나 불고기 같은 쇠고기 요리 맛도 아니고, 특정 품종 소의 맛은 어떻게 내는 걸까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포장 속 인물의 손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네요? ㅋ
자매품, 영국의 전통 뿌리 채소인 파스닙, 당근, 비트루트 칩.
이것도 자주 사 먹던 제품입니다. (아조씨 의기양양한 표정 웃겨 죽것어요.) <티를스>는 영국의 전통 음식이나 전통 재료들을 써서 감자칩 맛을 냅니다. 포장도 지극히 영국스럽고요. 가장 영국적인 감자칩 회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소규모의 지역 생산 감자칩들
전국 체인 수퍼마켓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지역에 따라 자기네 특산물을 써서 맛낸 소규모 감자칩 회사들이 또 있습니다. 여행 가시면 그 동네 식료품점을 잘 살펴보세요. 위 사진에 있는 것은 블랙 푸딩과 잉글리쉬 머스타드로 맛낸 감자칩입니다. 선지맛 감자칩이라니, 재미있죠.
☞ 블랙 푸딩
내장맛 감자칩입니다. 뭣!
양의 심장, 간, 허파 등을 다져 이런저런 채소와 향신료로 맛낸 스코틀랜드의 전통 음식 '하기스' 맛을 재현한 제품으로, 아래 돌 님의 덧글 보고 신기해서 찾아 올려 봅니다. 스코틀랜드 여행 가셨다가 발견해서 맛보셨다는데, 후추맛이 일품이라 하시네요. 이건 맥주가 아니라 위스키랑 먹어야 하나 봅니다. ㅋ
이제 영국에 들어가 있는 미국 제품들을 살펴봅니다.
영국산 미국 <케틀 칩스> 제품군
미국 <케틀 칩스> 제품은 <코스트코>를 통해 한국에도 들어와 있죠? 양이 너무 많아 저는 늘 집었다 놓았다 고민하다 그냥 돌아옵니다. 대용량도 영국에서처럼 1회 섭취 분량인 30-40g씩 소포장으로 나눈 'multi pack'과 'sharing pack'을 나란히 놓고 팔면 좋겠는데 말이죠. 한국에는 맛도 소금맛 한 가지밖에 안 들어와 있죠. 이 <케틀 칩스>가 영국 시장에는 공을 상당히 많이 들이고 있습니다. 영국 감자칩 시장이 워낙 크다 보니 아예 유럽과 중동쪽 헤드쿼터를 영국에 두고 생산도 영국에서 합니다. 재료도 영국산을 쓰고요. 영국에서 맛볼 수 있는 <케틀 칩스> 맛은 다음과 같습니다. 영국인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맛도 있고, 세계 시장을 겨냥한 맛들도 있고, 북미의 맛도 있습니다.
바다 소금을 기본으로 한 제품과 그 변주들.
좌우간 소금과 식초 맛은 꼭 있어야 합니다.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맛인 유제품과 알리움allium 조합. 그리고 어느 회사든 꼭 내는 매운맛들.
이건 북미의 맛.
태생이 미국 회사이니 저는 이 회사 제품 중에서는 북미 맛 감자칩들에 눈이 갑니다. 북미의 맛이라 해도 영국인들의 정서를 고려해 베이컨은 영국산 고급 돼지고기를 썼네요.
그런데 영국 감자칩들에 비해 포장이 왜 이렇게 밋밋하냐고요? 마우스 클릭으로 큰 사진 띄워 놓고 포장을 다시 잘 들여다보세요. 맛 설명 글자에 해당 식재료나 이미지를 결합한 걸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간단하면서도 영리하죠? (→ 식품 포장 디자인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단단)
'영국의 맛' 특별판을 낼 때는 심심한 포장의 대명사 <케틀 칩스>도 이렇게 신경 써서 포장을 잘 냅니다. 근사하죠? 영국 요리사와 손잡고 영국의 지역 특산물들과 영국 소스로 맛을 냈습니다. 남의 나라에서 장사하려면 이 정도로 공을 들여야 하는 겁니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한국의 맛 <케틀 칩스>를 맛볼 수 있으면 좋겠으나 한국 감자칩 시장은 크지 않으니 요원한 일이겠지요. 한국 마트에서는 감자칩이 새우깡이나 콘칲 같은 다른 짭짤한 과자들 사이에 듬성듬성 끼어 있을 때가 많지만 영국 수퍼마켓에서는 아예 감자칩만 늘어놓은 복도aisle가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감자칩 시장이 그만큼 큽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사서 맛을 보고는 맛 기록을 해놓지 않아 어떤 맛이었는지 까먹었습니다. 꽈당 구체적인 맛 묘사는 할 수 없으나 세련되게 맛을 잘 냈던 것만은 기억합니다.
참,
우리 한국인 입맛에는 <케틀 칩스>가 다소 딱딱하다는 의견이 많죠. 네, 딱딱합니다. 영국 감자칩들 중에도 딱딱한 제품 많습니다. 서양인들은 이런 단단한 질감의 감자칩을 고급스럽다며 좋아합니다. <워커스>와 <프링글스>는 깨물면 '바삭' 소리가 나고, <케틀 칩스>와 <티를스>는 '깨드득', <센세이션스>는 그 중간 소리가 납니다. 'Hand-cooked', 혹은 'kettle-cooked'라고 써 있는 고급 제품들이 대개 이런 단단한 질감을 내는데, 저도 영국 오래 살면서 단단한 질감에 익숙해져 귀국 후 한국 감자칩 질감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케틀 칩스>나 <티를스> 같은 'hand-cooked' 감자칩 먹던 분들은 한국 감자칩이 종잇장 같고 텁텁하다고 느낄 수 있죠. 다만, <케틀 칩스>는 <티를스> 칩들에 비해 좀 더 기름지면서 무거워 한 번에 감자칩 30g 이상을 먹기 힘들 때가 있기는 합니다.
미국 <프링글스>
감자만 쓰지 않고 이런저런 전분을 섞어 만든 불순한 제품을 과연 감자칩 이야기에 포함시킬 수 있느냐, <프링글스>를 포함시키려면 우리의 <오! 감자>도 넣어야 마땅하지 않느냐, 심지어 <프링글스> 측에서도 자기들 입으로 "우리 건 감자칩 아냐!" 한다는데.
으음...
모양이 감자칩 모양과 흡사하니 그냥 포함시키겠습니다. 단단이 그간 먹어치운 <프링글스> 양을 생각하면 크레딧을 안 밝힐 수가 없어요. 현재 영국 수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프링글스> 맛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려 스물 한 가지 맛이 나와 있네요. 북경오리와 해선장 맛이 다 있습니다. (쌀가루를 많이 섞을수록 식감이 가벼워집니다.) 여러분은 어떤 맛의 <프링글스>를 좋아하십니까?
단단은 영국에 있을 때 '사워 크림 앤드 어니언 맛'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미국 최초의 감자칩 시즈닝 맛이 '바베큐 맛'과 이 '사워 크림 앤드 어니언'이었다죠. 옆에서 누가 안 말리면 190g짜리 한 통을 앉은자리에서 혼자 다 먹어치울 기세라 수퍼마켓에 가면 프링글스가 있는 곳에서는 눈도 가리고, 장바구니에 담지 않으려 고군분투했습니다. ㅋ
영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이 제품도 자주 사 먹었었습니다. <프링글스>의 미덕은 생감자 칩들에 비해 감자 함량이 적은 탓에 감자 맛이 강하지 않아 표현하고자 하는 맛을 잘 드러낸다는 데 있죠. 그래서 그토록 다양한 맛이 가능한 것이겠고요.
<프링글스>도 영국 시장에 공을 상당히 많이 들이고 있습니다. 할인 행사나 경품 주는 이벤트도 잦고, 영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맛도 부지런히 개발해 선보이곤 하죠. 명절 특별판들이 특히 흥미로운데, 사진에 있는 것은 영국인들이 크리스마스에 많이 찾는 이태리 발포주인 프로세코 콕테일 맛입니다.
이건 영국의 크리스마스 만찬 음식이자 술안주인 '담요 두른 돼지' 맛.
이렇게 생긴 음식입니다.
영국 살 때 단단도 크리스마스 때마다 열심히 해먹던 건데 아주 맛있습니다. 수퍼마켓들이 아예 오븐에 굽기만 하면 되는 간편식 제품들을 팔기도 합니다.
이것들은 2016년 리우 올림픽을 맞아 영국에서만 선보였던 브라질 맛 특별판입니다. 브라질에서 올림픽이 열리는데 왜 영국에서만 특별판을 내냐고요. ㅋ <프링글스>가 속해 있는 <켈로그> 사가 이때 영국 대표팀을 후원했거든요. 그만큼 영국 시장에 공들이고 있다는 거죠. 포장 그림도 적절하고 좋죠? 위의 것은 치즈와 할라뻬뇨 얹어 그릴한 나초스와 블랙 빈 께싸디야의 중간쯤 되는 맛이었고, 아래 것은 한국의 애호박 부침개를 칼칼한 청양고추 초간장에 찍어 먹는 맛이었습니다. 먹으면서 그 맛이 재밌어서 한참 웃었죠. 맛 잘 냈어요.
☞ 보사노바 들으면서 미일리어 다리 감상하고 브라질 맛 감자칩 먹기
돌아가신 우리 영감님이 빨간통에 든 <프링글스> '오리지날'을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영감님 기일에는 생전에 즐겨 드시던 프링글스 오리지날과 중국 자스민 녹차를 놓고 기립니다. 이렇게 먹으면 꼭 중식 먹고 난 것 같죠. 그런데, 영국 프링글스와 한국 프링글스 맛이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안타깝게도 한국 프링글스는 맛이 훨씬 못합니다. 생산지도 다르고 원료도 달라서 그렇죠. 과자 크기도 작고, 양도 적고, 식감도 둔하고, 설상가상, 들여와서 보관을 잘못하는 건지, 더운 나라(말레이시아)에서 들여오는 과정 중 잘못되는 건지, 전내까지 납니다. 그런데 칼로리는 더 높고 값은 더 비쌉니다. 포화지방도 100g당 영국 3.6g, 한국 13g으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납니다. 싸구려 팜유를 썼기 때문인데, 팜유로 튀긴 인스탄트 라면 즐겨 먹는 나라라서 이딴 푸대접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맛이 마치 라면 부순 것에 분말 '스프' 뿌려 먹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기분 나빠 프링글스를 안 사 먹습니다. 영국한테는 그렇게 잘 하는 프링글스가 한국한테는 왜.
영국에서는 수퍼마켓 자사 상표 제품들도 훌륭하니 골고루 맛보도록 하자
그래,
감자칩 천국인 영국에 있을 동안 다쓰 부처는 어떤 회사의 어떤 맛 감자칩을 가장 많이 사 먹었느냐?
영국 수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감자칩들은 다들 개성 있고 맛있지만 다쓰 부처 입맛에는 <세인즈버리즈> 수퍼마켓의 자체 상표 고급 감자칩 중 '체다와 파 맛' 감자칩이 특히 더 맛있었습니다. 천상의 조합이죠. 이 제품은 성분도 아주 좋습니다. 아래에 옮겨 적어 봅니다.
<Sainsbury's TTD Crisps 'Cheddar and Spring Onion' Flavour> 성분:
Potato, sunflower oil, mature cheddar cheese powder, onion powder, yeast extract powder, buttermilk powder, salt, dried spring onions, sugar, yeast powder, dried parsley, colour: paprika extract. 끝.
성분 좋죠? 합성 시즈닝이 아닌 진짜 재료로 만든 가루들만 쓰고 있습니다. 영국 감자칩 시장은 경쟁이 치열해 수퍼마켓 자체 상표 제품들도 다들 훌륭합니다. 내로라 하는 감자칩 브랜드들을 잔뜩 소개해 놓고는 수퍼마켓 자체 상표 제품으로 끝을 내다니, 엉뚱하다고요? ㅋ 주기적으로 포장이 바뀌니 지금은 아마 다른 그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이름을 기억해 두시면 좋겠네요. 제가 영국을 떠난 뒤 더 맛있는 새로운 맛들이 많이 나왔을 텐데, 현재 영국에 계신 유학생과 주재원, 그리고 그 가족 여러분, 영국에 계실 때 영국의 맛 감자칩들 꼭 맛보고 오세요. 저는 늘 영국의 감자칩 소식이 궁금합니다. 저 대신 맛 좀 봐 주세요.
슬슬 글을 마쳐야겠습니다.
이 사람,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얼마 전에 영국 보수당 당내 경선을 통해 새 총리가 된 사람입니다. 대표적인 '하드 브렉시티어(강경이혼도-불사하겠다派)'로, 이 양반이 일개 기자에서 런던 시장과 외무장관을 거쳐 총리가 되기까지, 인기를 얻게 된 비결이 아래의 한국 신문 기사에 언급되고 있으니 한번 읽어 보세요.
☞ "EU가 콘돔 길이를 16cm로 통일시키고 새우맛 감자칩 생산을 금지하려 든다, 분기탱천하라 영국인들이여!"
"뭣? 우리의 소중한 '프론 콕테일 맛' 감자칩 생산을 금지시키겠다고?"
"뭣? 우리의 소중한 '프론 콕테일 맛' 감자칩을 수퍼마켓에서 다시는 볼 수 없게 만들겠다고?"
"뭣? 심지어 저 거대 미국 회사도 존중해 주는 우리의 소중한 '프론 콕테일 맛' 감자칩과 전통을 영국인들의 불행의 씨앗인 저 대륙 놈들이 말살하려 든다고?"
휴...
그 나라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을 건드리면 이 사달이 나는 겁니다. 존슨의 거짓 선동으로 판명이 났지만요. 영국은 지금 이런 사람이 총리가 된 겁니다.
☞ The 10 best Euro myths - from custard creams to condoms
오늘의 결론:
영국인들에게 감자칩이 이렇게 중요하다.
해외에 살고 계신 독자 여러분,
그곳의 유명 감자칩 좀 소개해 주세요.
각국의 감자칩 브랜드가 궁금합니다. ■
더 읽을 거리 - 수퍼마켓의 영국 간식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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