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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차숟가락이 나온 걸로 봐서는 오늘은 찻잎을 본격적으로 다룰 태세렷다. [차칙 - 권여사님 기증] 의 가향 백차를 우려보기로 한다. 백차는 맛과 향이 매우 섬세해 서양인들은 종종 이 백차를 가져다가 향 나는 부재료를 섞어 원하는 향을 마음껏 그리기 위한 도화지로 삼기도 한다. 한여름에 마시면 좋을 차를 가을이 지나갈 무렵 마시려 들다니 뒷북도 이런 뒷북이. 자잘한 홍찻잎들만 보다가 솜털이 보송보송한 실한 잎을 보니 눈이 다 시원하구나. 찻잎이 하도 커 홍차 250g을 담는 통에 백차 100g이 담길 정도다. 백차 중에서도 심 하나와 잎 하나, 즉 일심일엽만 따서 담은 백모단이 기본 찻잎, 여기에 파란색 콘플라워와 향을 내기 위한 유칼립투스 나뭇잎이 첨가되었다. 백차는 6대 차류인 녹차, 백차, 황차..
과일이나 꽃, 향초 등의 부재료로 향을 입히지 않은 순수한 백호은침을 소량 입수했다. 백호은침은 백차white tea 중에서도 이런 여리디여린 심으로만 만든 고급 차. 아무리 질 좋은 녹차나 홍차도 이 백차에 비하면 그저 험하게만 느껴질 정도다. 멜론의 단맛과 오이 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아주 섬세하고 싱그러운 '피아니시모pp' 찻잎이기 때문에 백호은침을 마실 때는 차음식이 필요 없다. 찻물도 미색을 띠어 곱다. 사진의 찻잎은 상을 수상했다는 영국 의 백호은침. 다섯 번 우리고 난 뒤 심 몇 개를 골라 접시에 늘어놓아 보았다. 은빛 솜털이 여전히 남아 반짝거린다.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애기' 찻잎들이라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둔다. 1회 분량의 시음용 차였으니 이번 한 번으로 끝. 아쉽구나. ■
수퍼마켓에 갔더니 크리스마스 선물용 과자와 차가 벌써 나와 있습니다. 영국인들은 10월부터 크리스마스를 준비합니다. 선반 위의 온갖 과자와 쵸콜렛, 홍차들을 보고 있노라니 눈이 팽글팽글. 하도 행복해 으악 소리 한번 내지르고 찬찬히 살펴보았지요. 올해의 프리pre-크리스마스 과자로는 이태리 과자인 아마레띠를 골랐습니다. 그간 허술한 포장의 아마레띠만 봐 왔었는데, 크리스마스라고 아주 제대로 깡통에 넣어 팝니다. 빈티지 디자인이 마음에 듭니다. 자기들 말로는 원조라고 하는데 누리터를 뒤져 보니 원조라고 하는 곳이 몇 군데 더 있는 것 같습니다. 맛만 좋으면 원조고 뭐고 크게 상관 없지요. 이가 시원찮아 아마레띠를 살 때는 반드시 부드러운 아마레띠로 삽니다. 'Ameretti soffici'라고 되어 있죠?..
▲ 우표 30×40mm. ▲ 우표 확대. ▲ (1973), Wolfgang Herzig (1941- ), oil on canvas, 90×120 cm 오스트리아의 현대 화가 볼프강 헤어치히가 그린 커피집 모습입니다. 가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 보았으나 정보를 얻기가 힘드네요. 오스트리아에 있는 화가의 단골 커피집이었는지, 이태리 방문 때 잠깐 들렀던 곳인지, 알 수가 없어요. 대개는 커피 마시는 남녀의 모습들을 담기 마련인데 이 작가는 엉뚱하게도 쉬면서 대기중인 웨이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ㅋ 웨이터 뒤에 있는 건 뭘까요? 원두 분쇄기? 왼편에 팔만 나온 신사도 재미있습니다. 아니, 사람을 어째 팔 한 쪽만 겨우 나오게 그려요? 아예 화폭에서 빼든지 좀 더 담든지 할 것이지. ☞..
영국 수퍼마켓에서는 한국이나 미국 수퍼마켓과는 눈에 띄게 다른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병 제품이 많다는 점입니다. 유심히 관찰해 보니, 영국인들은 쥐기 편하고 쓰기 편해도 저 미국식 말랑말랑한 플라스틱 용기를 선호하지 않는 듯합니다. 환경 호르몬 걱정 때문인지, 그놈의 '품격' 때문인지, 공병이 필요해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수퍼마켓 선반에 갖가지 크기와 형태의 예쁜 유리병들이 조로록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면 오르가즘이 다 느껴집니다. (응?) 내용물이 휜히 들여다보이니 고르는 소비자 입장에선 여간 편한 게 아니고요. 떠올려 보니 한국의 마트에서는 고추장이든 된장이든 간장이든, 마요네즈에 심지어 식초와 식용유까지도, 플라스틱 용기에 든 것들이 선반을 가득 메웠던 것 같습니다. ..
다쓰베이더 생일입니다. 이번처럼 추석과 겹칠 때가 종종 있어 손해를 보곤 합니다. 오늘은 아프터눈 티 테이블 대신 하이 티를 차려 보겠습니다. 아프터눈 티와 하이 티가 어떻게 다른지 아시는 분? 우선, 시간대가 다르죠. 아프터눈 티는 점심 먹고 나서 저녁 식사 시간이 오기 전까지 딱히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는 귀족들의 문화입니다. 나른한 오후에 갖는 간식 시간이라고 보시면 돼요. 오후 4시부터 시작해 대개 5시 정도면 끝나는데, 그리고 나서는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립니다. 이에 반해 하이 티는 주로 잉글랜드 북부의 노동자들이나 농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하루의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갖는 이른 저녁 식사입니다. 대개 6시쯤 갖습니다. 영국의 노동자 계급working class의 생활상을 다루는 영..
이태리 홍차? 영국 브랜드 홍차는 기본이요, 미국 캐나다 일본 인도 스리랑카 프랑스 독일 브랜드 홍차까지 다 마셔보았지만 이태리 브랜드의 홍차는 금시초문이라는 분 계실지 모르겠다. 이태리 홍차라... 흐음... 커피 맛있게 내려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이면 홍차에도 소질이 있을 게 분명할 것으로 판단해 덥석 구입. 산 지는 꽤 되었는데 오늘 꺼내어 사진을 찍는 이유는 이렇다. 가필드 님께서 현재 이태리 방방곡곡을 돌며 홀로 배낭여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태리 여행 하니 갑자기 내 신혼여행 때가 떠오르는 것 아닌가. 일정에 베니스도 들어 있다니 분명 산 마르코 광장의 에도 들르실 터. 오늘의 홍차가 바로 저 유명한 의 블렌딩 홍차인 것이다. 오늘은 사진 왼쪽의 녹색 깡통 차를 우려보기로 한다. 황홀한 찻물. 로..
Summer afternoon - Summer afternoon... the two most beautiful words in the English language. - Henry James - 셰익스피어를 비롯, 수많은 작가들이 극찬했던 영국의 '글로리어스'한 여름 날씨. 9월이지만 아직까지는 유효합니다. 이런 날은 무조건 집 밖으로 뛰쳐 나와야 합니다. 영국에서는 여름에 햇빛을 쬐어 두지 않으면 비타민D 부족과 피부병으로 겨울을 날 수 없다고 합니다. 다들 기를 쓰고 밖으로 나옵니다. 1층 할머니가 또 머그 한가득 밀크티 담아 일광욕 하러 마당에 나오셨습니다. 햄퍼hamper와 담요는 아직도 못 샀습니다만, 오늘은 공원 벤치에라도 앉아 차를 즐겨야겠습니다. 간단하게 싸 들고 집 근처 공원으로 향합니다..
▲ 골동품 같은 치즈 덩이. 크어어, 저 대리석 같은 환상적인 푸른곰팡이의 배열! 영국 블루 치즈의 특징 중 하나다. 오랜만에 영국 치즈 이야기를 다시 해봅니다. 블루 치즈 - 그 화려한 무늬로 인해 서양식 파티의 치즈 보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치즈. 잘 알려진 것으로는 이태리의 고르곤졸라, 프랑스의 록포르, 영국의 스틸튼이 있지요. 이들을 '세계 3대 블루 치즈'라 속 편히 묶어 부르는 이들도 있고요. 고르곤졸라와 스틸튼은 소젖으로, 록포르는 양젖으로 만듭니다. 소젖으로 만든 것들은 익숙한 맛 때문인지 양젖 치즈에 비해 소스나 딥, 수프 등 요리에서의 쓰임새가 좀 더 다양한 편입니다. 스틸튼의 가장 큰 장점은 블루 치즈이면서도 많이 짜지 않아 먹을 때 부담이 없다는 것이지요. 록포르..
하드디스크 정리하다가 발견한 글이 있어 다시 올려 봅니다. 아마 2006년이나 2007년에 썼던 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간의 두뇌 작용 중 가장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꿈꾸기'이다. 제아무리 가방끈 긴, 첨단 분야에 몸 담고 있는 수석 과학자라 할지라도 눈곱만큼도 제어할 수 없는 게 바로 이 꿈꾸기 아닌가. 나는 조물주는 유머가 가득한 악동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인간들이 콜콜 자는 사이, 각자가 가진 기억의 조각들을 취해 그것들을 허구와 적당히 버무려 초현실적인 새 이야기로 만든 다음 뇌에 도로 솔솔 뿌려 준다... 상상만 해도 킬킬 웃음이 나온다. 내 친정 식구는 다들 요란한 꿈꾸기로 유명한 사람들인데,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꿈도 유전적인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어릴 적 우리 식구들은..
머핀 제25호 재료: 커피, 우유, 달걀, 식용유, 밀가루, 설탕, BP, 소금, 잘게 다진 호두, 아이싱슈가 차생활을 한 지도 이제 꽤 되었습니다. 차는 사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죽 즐기던 음료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청차인 우롱차를 즐겼었지요. 영국에 있을 동안은 홍차가 값도 싸고 다양하니 홍차를 집중적으로 즐기는 것이 현명합니다. 홍차 깡통도 꽤 많이 생겼는데, 언젠가 빈 홍차 깡통들 죽 모아놓고 사진 한번 찍어 올려 보겠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차들을 마시고 나니 이제 차에 대해 감이 '조금' 잡힙니다. 조잡한 차들을 하도 마셔대서 이제 이런 차들은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ㅋ 좋은 차 감식 능력은 아직 요원한 일입니다. 그저 찻잎 얌전하게 잘 생기고 맛과 향만 좋으면 최고이겠거니 생각하고 ..
결혼 기념일 찻상을 위해 샀던 미니 장미가 아주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응애가 달라붙어 그놈들 퇴치하느라 애는 좀 먹었습니다만, 달걀 노른자로 천연 살충제 만들어 정성껏 뿌려주고 물 주고 밥 주고 햇빛 쪼여주었더니 보답이라도 하듯 아주 풍성히 잘 자라주고 있어요. 작은 장미 꽃송이가 예뻐 아무 것도 모르고 무턱대고 집에 데려왔는데, 원예 고수님들 말씀으로는 이 미니 장미가 키우기 가장 까다로운 것들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이를 어쩐답니까. 한 달 전 집에 데려왔을 당시엔 꽃송이가 10개 정도 있었습니다. 그 열 송이가 다 지고 새로 열한 송이가 또 올라왔습니다. 지금이 한창 자랄 때인가 봅니다. 막 벌어지기 시작한 꽃봉오리처럼 사람 감탄하게 만드는 게 또 있을까요? 집 밖에 널린 게 나무와 꽃인데도 이렇게..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느닷없이 소포가 배달돼 왔습니다. 미스Miss도 미시즈Mrs도 아닌 미즈Ms 호칭까지 정확히 쓴 걸 보면 틀림없이 불량소녀 님의 만행입니다. 보낸 이와 주소를 확인하고는 신나서 포장을 뜯으려는 순간, 아니? 다쓰베이더와 단단이 젤루 좋아하는 로빈Robin이 아닙니까! 아침에 로빈이를 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습니다. 짜리몽땅 통통한 것이 꼭 단단 같습니다. 한국 가면 이 로빈이들이 가장 그리울 것 같습니다. 포장을 뜯어 봅니다. 밀크티의 제왕이라는 티백을?영국 수퍼마켓에 널린 게 이 요크셔 골드 티백인데, 왜 미국에서 이걸 보내셨을꼬? 현명하기 짝이 없는 불량소녀 님께서 그런 소모적인 일을 하실 리 있겠습니까. 투명 스코치 테이프가 상자에 둘러진 걸 ..
▣ 저는 저 작고 소박한 집이 왜 이렇게 예쁘죠? 2층 파사드facade와 빨간 타일 좀 보세요. 사는 사람은 불편하겠지만 밖에서 보는 사람은 예뻐 죽겠는 유럽의 집들. ▣ 이곳도 이곳 건축물들만의 색이 있네요. 영국은 어느 곳을 여행하든 그 고장만의 건축물 색이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건축 자재들을 써서 지었기 때문이겠죠. 런던 건축물들의 하얀 포틀랜드 스톤, 바쓰 건축물들의 밝고 온화한 베이지색 석회암... 저 건물도 오래 전에 지어졌으니 완공 당시에는 지금보다 뽀얬을 겁니다. ▣ 녹지 많은 영국. 길을 가다 나무가 하도 신기해서 한 장. 영국인들은 식물도 수집하는 습관이 있어 동네 길 걷다가도 각 집 정원에서 처음 보는 희한한 식물들을 많이 봅니다. ▣ 빼꼼. 사랑스러운 물망초forget-m..

▣ 대학 구경을 마친 뒤 '지붕 씌운 시장'이라는 'Covered Market'에 들렀습니다. 즉석 쿠키 가게 앞에 학생들이 줄을 섰습니다. 막 구운 미국식 쫀득쫀득한 '쿠키' 냄새가 시장 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침이 꼴깍 넘어갔으나 이제 줄 서서 쿠키 사 먹기엔 머쓱한 나이가 된지라 그냥 사진만 찍었습니다. 그림체가 익숙하죠? 영국에서 현재 가장 잘나가는 아동 문학가 겸 삽화가인 쿠웬틴 블레이크Quentin Blake가 그려 주었다고 합니다. 크고 달고 기름져서 입에 넣자마자 혼을 쏘옥 빼앗는 저 미국식 맛난 쿠키가 영국의 전통 티타임 비스킷들을 몰아내고 있다고 ☞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고기 파이 가게입니다. 포크 파이가 보이는데, 봄철 피크닉과 티타임, 특히 하이 티hi..
지난 글에서는 옥스포드 대학 중 크라이스트 처치를 둘러보았고요, 오늘은 이곳 학생들이 예배 드리는 공간을 보겠습니다. 'Christ Church Cathedral.' '주님의 교회 대성당'이라니, 우리 말로 직역하면 다소 이상하게 들립니다. 영국에서는 '대성당cathedral'이 반드시 로마 가톨릭 교회 건물을 뜻하지 않는다고 말씀 드린 적 있습니다. 이곳도 헨리 8세 때 국교를 성공회로 전환하면서 성공회 건물로 바뀌게 되었지요. 영국에서 가장 작은 커씨드랄이라고 합니다. 더 진행하기 전에 먼저 위 화면의 재생 단추를 눌러 음악을 틀어보세요. 화면없이 음악만 나올 텐데, 저희가 이곳을 구경할 동안 어린 학생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중창단이 이 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곡 설명은 나중에 따로 드릴게요. 내부 ..
다쓰베이더와 단단이 사는 동네에는 50m 안에 채리티 숍charity shop이 무려 여덟 개나 있습니다. 영국 어디에도 한곳에 이렇게 채리티 숍이 많이 모인 데는 또 없을 거예요. 채리티 숍은 말하자면 한국의 같은 중고품 자선 가게입니다. 여기저기서 기부 받은 물건들을 자원봉사자들이 잘 정리해서 값을 매긴 후 저렴한 값에 되파는 곳인데, 저도 살 빼서 못 입게 된 옷을 몇 번 갖다 준 적이 있지요. 이곳에서 옷을 사기도 하고요. 괜찮은 청바지를 5천원에 살 때도 있습니다. 영국인들의 삶의 지침이 되는 표어 중에 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안 쓰는 물건이라도 절대 쓰레기통에 그냥 버리는 법이 없어요. 누군가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물건일지 모른다는 거죠. 실제로 예술가들 중에는 채리티 숍을 다니며 캔버스에..

집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옥스포드가 있습니다. 이렇게 가까운데 왜 진작 와 보지 않았을까 의아해하며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역에서 번화가 쪽을 향해 걸으면서 다쓰 부처는 거리에 한국인이 매우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관광객 신분으로 부모와 함께 돌아다니는 중고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영어를 배우러 온 젊은이들이라 하네요. 그러고 보니 곳곳에 영어학교 간판이 눈에 띕니다. 이름도 대개 '옥스포드 ○○○ 컬리지' 형태를 하고 있어 잘 모르는 사람은 옥스포드 대학인 줄 착각하겠어요. ㅋ 옥스포드 대학과는 아무 상관 없지만 같은 동네에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그럴듯하게 이름 지은 것 같습니다. 부모님 따라 관광 온 아이들은 영국의 공부 잘하는 언니·오빠들을 코 앞에서 보면서 자극도 받고..
영국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한국과 반대입니다. 이들은 우선 아파트 같은 공동 주거 형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타워팰리스 같은 고층 건물은 제아무리 고급으로 지었다 해도 이들에게는 악몽 그 자체입니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명품 가방이나 유명 브랜드 옷 따위를 걸치고 다니는 것도 진부한 일로 치부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단단은 백인들에게 무시 당하지 않으려면 좋은 옷, 좋은 가방으로 잘 치장하고 다녀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품고 명품 옷 바리바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벌) 싸들고 영국 땅에 발을 디뎠는데, 웬걸요. 이런 옷들은 이제 하는 수 없이 집에서 실내복으로나 입는걸요. 남 주자니 아깝고 나중을 위해 고이 모셔두자니 인생은 짧고 말이죠. 영국에서는 런던 같은 대도시보다는 시골로 갈수..
설거지는 말끔히 다 끝냈습니다. 오늘은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주제도 다양하셔라.) 단단이 좋아하는 칼럼니스트 중에 한국일보의 장명수 님과 고종석 님이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 분들 때문에 한국일보를 구독했었지요. 장명수 님은 내용이 좋고 고종석 님은 문장이 좋더라고요. ☞ 장명수 님의 칼럼 중 기억 나는 대목이 있어 옮겨 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과잉보호나 돈GR 과외가 아니라) 좋은 습관과 행복한 추억이다. 그렇죠? 단단은 이 대목에서 무릎을 탁 쳤었습니다. 그리고는 부모님을 떠올렸지요. 모친인 말괄량이 권여사님을 생각할 때마다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저희 4남매 극장에도 자주 데려가 주시고, 아이들은 마치 놀기 위해 세상..

친애하는 방문자 여러분. 우선 오늘의 제목부터 다시 좀 봐 주십시오. 결혼 10주년. 감동의 물결이 텍사스 소떼처럼 밀려옵니다. 결혼 20주년, 30주년, 40주년, 50주년 맞은 분들이 수두룩한데 시건방진 소리 말라고요? 다쓰베이더의 부친, 단단의 시부께서 결혼 전 저희 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만났다 헤어지기를 쉬 여기는 요즘 젊은이들 답지 않게 꽤 오래 사귀었구나. 아비가 그 점 높이 평가한다." 수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겠다 말씀 드리니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쓰베이더의 남동생은 색시 될 아가씨와 만난 지 3개월만에 후다닥 결혼했는데, 이것도 참으로 멋진 일 아닙니까? 첫눈에 자기 짝을 알아보고 이렇게저렇게 잴 것도 없이 단숨에 승부를 보다뇨. (사고 쳐서 결혼한 ..
마카롱을 다 구웠습니다. 영어로는 '마카루운macaroon'이라고 발음합니다. 재료, 공정, 모양, 질감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영국에서는 프랑스 마카롱도 그냥 '마카루운'으로 통일해 부릅니다. 구워 보니 재료는 단순하지만 굽는 데는 노하우가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노하우는 레서피에 잘 나와 있지 않으므로 몇 번 망치면서 터득할 수밖에요. 단단은 운 좋게도 두 번만에 성공했습니다. 다음 번엔 또 실패할지 모르니 매번 겸손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ㅋ 홈베이킹은 인격 수양에도 도움이 됩니다. (갑자기 도자기 굽는 우리 둘째 오라버니 생각이 납니다.) 구울 때 레서피를 정확히 따라야함은 물론이요, 온도 조절과 판 선택도 잘 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자기 오븐의 성격을 철저히 파악하고 ..
어떤 이는 풍경 사진만 죽어라 찍는다. 어떤 이는 야생동물이나 곤충만 담는다. (→ 이 분야가 제일 힘들 것 같다. 거적때기 덮어쓴 채 숨 죽이고 몇날 며칠 노숙자 신세.) 내 셋째 오라버니는 인물 사진만 찍는다. 나는 식탁 위 정물만 찍는다. 어떤 사진을 찍든 그 분야 고유의 노하우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우리 집 바비들을 놓고 안 하던 인물 촬영을 해보니 오, 이게 만만치가 않다. 미일리어의 얼굴이 이리나 얼굴보다는 좀 더 굴곡이 심하고 입체감이 있는데 이것 때문에 접사로 초점 맞추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여성일 경우는 씨터(피사체라고 합니까?)의 피부 색, 머리 색, 화장, 옷, 악세사리 등의 톤을 함께 고려해야 하고, 더 좋기로는 인물의 성격까지 담아 낼 수 있어야 한다는데 말이야 쉽지, 장비..
무지막지한 기계에 잔뜩 시달린 염소똥 같은 CTC 아쌈, 티끌 모아 태산 만든 티백 아쌈에 물려 제대로 된 잎을 한번 사 보았습니다. 우유 없이 마실 때는 CTC 아쌈의 아린 맛이 다소 부담스럽더라고요. 티백을 우습게 여기는 건 아니지만, 티백 차는 일단 국물이 탁하죠. 전 그 탁한 국물이 이제 싫어졌습니다. 홍차에 막 입문할 당시에는 구하기 쉽고 값도 저렴한 티백차를 정말 수도 없이 마셨었지요. 사실 그 정도 값에 그만한 품질을 낼 수 있는 에는 지금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에 대한 제 애정에는 변함이 없어요. 나라마다 포장이 다른데, 영국 수퍼마켓에서 파는 차들은 요즘 포장도 얼마나 멋있어졌는지 모릅니다. 티백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다른 건 몰라도 밀크티용 블렌드만은 나 같은 수퍼마켓표 티백..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상에서 깨어나시라.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이런 식으로 홍차를 마신다. 머그 한 가득 수퍼마켓 밀크티용 티백 우린 것에 비스킷 한 조각이 전부로, 비스킷도 꼭 한 개만 달랑 내서 먹는다. 한번은 영국인 노인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손님인 나더러 아예 자기 집 과자통에 손을 넣어 알아서 비스킷을 꺼내 먹게 해 속으로 킬킬 웃은 적도 다 있었다. 영국의 여염집에 하나씩 있게 마련인 과자통은 아래 사진과 같이 실내용 작은 쓰레기통처럼 생겼다. 시詩적인 맛은 좀 떨어져도 나는 록앤록 같은 밀폐용기를 선호한다. 과자는 바삭해야지, 암. 비스킷은 대개 위에서 내려다본 찻잔과 같은 동그란 형태를 선호하는데,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아무래도 열량이 적은 오리지날 다이제스티브. 좀 더 사악하게 티타임..
그런가 하면, 가필드 님 생일 역시 7월에 있다고 하지요. 여름에 태어나신 분들 중 귀한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가필드 님을 위해서는 제철 딸기 듬뿍 얹은 신선한 딸기 케이크 나갑니다. 영국 딸기는 알이 작은 대신 한국 딸기처럼 신맛 없이 단맛만 많이 나면서 싱겁고 속이 텅 비어 있지 않아요. 따로 만들어 둔 딸기 소스는 먹기 직전 뿌려 줍니다. 오오, 레몬즙이 더해져 새콤달콤, 소스 맛이 기가 막혀요. 엇, 자르다 다 뭉갰... 크림 속 딸기들은 또 다 어디로 가 버렸어? 분명 골고루 깔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과일 듬뿍 얹은 신선한 케이크는 홈메이드가 아니면 맛 보기 힘들지요. '못생겨도 맛은 좋아'가 제 베이킹 철학입니다. ㅋ 가필드 님, 생일 미리 축하 드려요! 재료 [약 10인분] 스폰지 • 무..
제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 중에 '불량스런'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 생일이 7월에 있다고 하여 오늘은 케이크를 하나 만들어 보았습니다. 6월이 거의 끝나가고 있으니 미리미리 만들어 기쁘게 해 드려야겠어요. 어떤 걸로 만들까 베이킹 책을 뒤지며 궁리하다 '불량소녀 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고운 빛깔의 마말레이드를 써 보기로 했습니다. 껍질이 그대로 다 붙어 있는 밀가루라 스폰지 색이 좀 거무튀튀합니다. 그래도 꽤 고급 유기농 밀가루랍니다. 색은 저래도 풍미는 좋아요. 다쓰 부처는 마말레이드를 먹을 때마다 저 투명하고 선명한 오렌지 껍질을 '보석'이라 부르며 황홀해한다고 합니다. 오오, 저 빛깔,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크림 앞쪽에 뽕 뚫린 저 쬐끄만 구멍은 뭘까요? 맞히시는 분께는 소정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