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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마켓에서 '여인의 키스Lady's Kisses'라는 이름의 귀여운 이태리 과자를 집어 왔습니다. 현재 모든 크리스마스 식품들이 반값 또는 반값 이하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지났다 이거죠. 일년 먹을 과자를 쟁였지요. 숨은 그림 찾기. 바치 디 다마를 찾아 보세요. 색깔과 크기가 호두와 흡사해 장난 좀 쳐 봤습니다. 성분은 호두와는 전혀 상관 없어요. 홈베이킹 하시는 분들은 천연 색소 등을 써서 오색으로 알록달록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좀 더 자세히 보도록 하죠. "뭐야, 이거 프랑스 마카롱이네." 하실 분 분명히 있으리라 봅니다. 이태리 사람들이 섭섭해할 겁니다. 마카롱 아니에요. 재료도, 공정도, 식감도 다릅니다. 하긴, 마카롱도 원래 이태리 과자이긴 하지만요. 바치 디 다마에는 밀가루, 헤..
솜씨 없는 단단이 용감무쌍하게도 그간 여러 차례 손님을 치렀습니다. 손님 초대해 놓고 주인이 자기가 만든 변변찮은 음식 사진이나 찍고 있기가 민망해 기록을 남겨 두지는 않았지만요. 손님들 가신 다음 남은 재료들 가지고 찻상을 재현해 봅니다. ㅋ 샌드위치 대신 전채로 냈던 훈제연어 트리오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과 같이 한 사람당 한 접시씩 냈었습니다. 가만히 관찰해 보니, 고급 식당에서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 기술과 질감을 달리해 구성하는 '트리오'가 아주 보편적이더군요. 헤스톤 블루멘쏠의 가정식 레서피를 따라해 볼까 하다가, 재료 살 돈이 없어 집어치고 돈 안 드는 제 식으로 간단하게 만들었습니다. ㅋ 위스키 담았던 오크 배럴을 땔감으로 써서 연기 씌운 훈제연어입니다. 영국에 있을 때나 실컷 맛볼 수 있..
홍차인 여러분, 크리스마스가 '길모퉁이를 돌아선 곳까지' 바싹 다가왔습니다. 다들 홍차의 세계에 들어선 난 뒤 생긴 긍정적인 변화를 꼽아 주십시오. 저는 더이상 남들 접하기 힘든 비싼 음식을 먹어 보고 싶다는 소망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홍차 한 통과 그에 어울리는 비스킷 한 상자만 있으면 세상 다 가진 것 같지 않습니까? 좋아하는 다구 꺼내 우린다면 금상첨화이고요. 명품 옷, 명품 핸드백 따윈 필요 없어요. 좋아하는 차 우리고 좋아하는 비스킷 한입 베어무는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 소박하고 착한 사람들이 우리 홍차인들 아니겠습니까. 단단은 우기에 일조시간까지 짧아 우울하다는 영국의 겨울을 의 크리스마스 홍차와 의 '스템 진저 쇼트브레드'로 아주 거뜬히, 즐겁게 나고 있습니다. 그간 먹어 본 ..
지난 겨울, 18년 만에 처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여간해선 큰 소리를 잘 내지 않는 점잖은 영국인들이 즐거운 비명을 잠깐 지른 적이 있다. 어제 또 눈이 그렇게 내렸다. 수십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함박눈 때문에 고가의 제설 장비를 갖춘다는 건 낭비니 잠깐 불편하고 말자는 결론을 내렸던 지자체들이 이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눈이 앞으로도 이렇게 잦아질 전망이라면 장비 구입을 고려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 눈만 내렸다 하면 집집마다 넉가래(널빤지로 만든 눈삽) 하나씩 들고 나와 삽시간에 슥삭슥삭 말끔히 내 집 앞을 치우는 한국과 달리 영국인들은 아무리 내 집 앞이지만 개인이 국가에 그렇게 많은 세금을 내고도 길거리의 눈을 치워야 한다는 건 아예 상상도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추측컨대, 이들은 아마도 넉가래라..
오랜만에 크림티로 즐겨봅니다. 바빠도 찻자리는 꼭 챙겨야죠. 더치 오리지날Duchy Originals의 맛난 유기농 스콘과 잼이 반값보다도 더 싸게 나왔길래 얼른 집어 왔습니다. 언제 수퍼마켓에 가면 떨이 제품을 살 수 있는지 시간대를 '빠삭'하게 숙지하고 있습니다. 대개는 문 닫을 즈음 이런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죠. 헌데, 우리 동네 수퍼마켓에선 제품마다 할인되는 시간이 다 다릅니다. 출근 시간이 지나 오전 한가할 때 노인들이 주로 장을 보러 나오는데, 이 노인들이 선호하는 식품과 저녁 퇴근하고 들르는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식품이 다르지요. 여기에 맞춰 떨이 제품들이 하루 몇 차례 나오게 됩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좀 사볼까 기웃거리다가 보관하기 어렵고 둘 데도 마땅찮..
녹차나 청차, 홍차를 꾸준히 마셔도 별 덕을 보지 못 하고 있던 터에 백차를 마시고 나서는 놀라운 일이. 약 한 달쯤 전 의 유칼립투스 잎 넣은 백모단White Peony을 큼직한 사진과 함께 소개한 적이 있다. 기억을 잘 더듬어 보시던가, 아니면 얼른 가서 그 ☞ 글을 먼저 읽고 오시라. 영국에서 내 돈 주고 사본 차 중에서는 가장 비싼 차였다. 100g에 무려 17파운드가 넘었으니. 여기서 잠깐 백차에 대한 간략 설명을 해보기로 하자. 널리 알려진 백차에는 등이 있다. 은 잎이 채 펴지지도 않은 심으로만, 은 심 하나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난 이파리 두 장, 즉, 일심이엽 혹은 일아이엽 혹은 일창이기로(다 같은 말), 는 그 밑의 성장한 큰 잎들을 가지고 만든다. 셋 다 같은 '대백종' 차나무에서 나..
소식이 없어 궁금해하실 친구분들을 위해 잠시 기척을. 저는 잘 있습니다. 좀 바쁩니다. 요즘은 하프시코드Harpsichord 가지고 노는 데 정신이 팔려 하프시코드 룸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저 두툼한 손은 잠시 짬을 내어 놀러온 다쓰베이더의 손입니다. 피아노에서 보던 검은 건반, 흰 건반이 반대로 되어 있으니 느낌이 새롭죠? 다크한 기운이 물씬, 다쓰베이더 삘이 좀 납니다. 어? 이건 쳄발로Cembalo 아닌가요? 하시는 분들. 쳄발로와 하프시코드는 같은 악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쳄발로 = 이태리어. 하프시코드 = 영어. 요건 '버지날Virginal'이라는 악기입니다. 하프시코드보다 작으나 소리는 더 크고 까랑까랑합니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옛날 악기입니다. 두툼한 손은 역시나 다쓰베이더의 ..
꼿꼿. 총총총. 이거 보는 맛에 다들 유리 찻주전자를 쓰나 보다. 백차를 우릴 때는 반드시 유리나 본차이나 같은 경질 자기를 써야 한다. 그래야만 섬세한 차향을 찻주전자에 빼앗기지 않고 찻물 속에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다. ■
중국 여행 가서 차 좀 사 오지 말라. 특히 보이차. 꼭 차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여행 가면 가이드 따라 나 같은 곳에 들어가 "이 차는 미용에 좋구요, 위장에도 좋구요, ..." 하는 말에 현혹돼 저렴하지도 않은 차를 덥석 사 갖고들 오신다. 다예사 언니들의 물 따르는 솜씨가 혼을 쏙 뺄 정도인 건 인정하나 그런 건 모로칸 티룸에서도 실컷 볼 수 있다. 너도나도 다예사 언니들이 나누어 주는 차 한 잔씩 얻어 마시고는 비싼 차들을 덥석. 참, 부모님 것도 사야지, 하면서 한 개 더 덥석. 한국에서 사려면 관세 때문에 몇 배로 비싸진다니 이때 사 둬야지, 하면서 또 덥석. 나 도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시음하라고 우려 준 차와는 다른 질 나쁜 차를 내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다. 그 자리에서 포장 뜯어 ..
주문한 의 '크리스마스 티'가 도착했습니다. 직접 매장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다 사 오면 좋겠지만 런던까지의 왕복 교통비가 너무 비싸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배송을 시켰습니다. 지금 사는 곳에서 런던을 가려면 차비가 하도 많이 들어 큰 결심을 하고 가야 합니다. 런던 살 때 좀 더 부지런히 나다닐걸, 후회하곤 합니다. 얼마 전 에 중국 작가의 작품이 새로 설치됐는데, 정교한 작은 요소들이 모여 거대한 전체를 이루는, 딱 제 취향의 ☞ 작품이 설치됐다 하더군요. 그거 궁금해서라도 런던에 한 번 가 보긴 해야 할 텐데요. 런던 갈 일 있으면 최대한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계획 잘 짜고 가야 합니다. 다시 차 이야기로 넘어와서 - 크리스마스 홍차 깡통이 예전과는 딴판으로 바뀌었는데 이 때문에 값이 많이 올랐습..
대나무 차숟가락이 나온 걸로 봐서는 오늘은 찻잎을 본격적으로 다룰 태세렷다. [차칙 - 권여사님 기증] 의 가향 백차를 우려보기로 한다. 백차는 맛과 향이 매우 섬세해 서양인들은 종종 이 백차를 가져다가 향 나는 부재료를 섞어 원하는 향을 마음껏 그리기 위한 도화지로 삼기도 한다. 한여름에 마시면 좋을 차를 가을이 지나갈 무렵 마시려 들다니 뒷북도 이런 뒷북이. 자잘한 홍찻잎들만 보다가 솜털이 보송보송한 실한 잎을 보니 눈이 다 시원하구나. 찻잎이 하도 커 홍차 250g을 담는 통에 백차 100g이 담길 정도다. 백차 중에서도 심 하나와 잎 하나, 즉 일심일엽만 따서 담은 백모단이 기본 찻잎, 여기에 파란색 콘플라워와 향을 내기 위한 유칼립투스 나뭇잎이 첨가되었다. 백차는 6대 차류인 녹차, 백차, 황차..
과일이나 꽃, 향초 등의 부재료로 향을 입히지 않은 순수한 백호은침을 소량 입수했다. 백호은침은 백차white tea 중에서도 이런 여리디여린 심으로만 만든 고급 차. 아무리 질 좋은 녹차나 홍차도 이 백차에 비하면 그저 험하게만 느껴질 정도다. 멜론의 단맛과 오이 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아주 섬세하고 싱그러운 '피아니시모pp' 찻잎이기 때문에 백호은침을 마실 때는 차음식이 필요 없다. 찻물도 미색을 띠어 곱다. 사진의 찻잎은 상을 수상했다는 영국 의 백호은침. 다섯 번 우리고 난 뒤 심 몇 개를 골라 접시에 늘어놓아 보았다. 은빛 솜털이 여전히 남아 반짝거린다.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애기' 찻잎들이라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둔다. 1회 분량의 시음용 차였으니 이번 한 번으로 끝. 아쉽구나. ■
수퍼마켓에 갔더니 크리스마스 선물용 과자와 차가 벌써 나와 있습니다. 영국인들은 10월부터 크리스마스를 준비합니다. 선반 위의 온갖 과자와 쵸콜렛, 홍차들을 보고 있노라니 눈이 팽글팽글. 하도 행복해 으악 소리 한번 내지르고 찬찬히 살펴보았지요. 올해의 프리pre-크리스마스 과자로는 이태리 과자인 아마레띠를 골랐습니다. 그간 허술한 포장의 아마레띠만 봐 왔었는데, 크리스마스라고 아주 제대로 깡통에 넣어 팝니다. 빈티지 디자인이 마음에 듭니다. 자기들 말로는 원조라고 하는데 누리터를 뒤져 보니 원조라고 하는 곳이 몇 군데 더 있는 것 같습니다. 맛만 좋으면 원조고 뭐고 크게 상관 없지요. 이가 시원찮아 아마레띠를 살 때는 반드시 부드러운 아마레띠로 삽니다. 'Ameretti soffici'라고 되어 있죠?..
이태리 홍차? 영국 브랜드 홍차는 기본이요, 미국 캐나다 일본 인도 스리랑카 프랑스 독일 브랜드 홍차까지 다 마셔보았지만 이태리 브랜드의 홍차는 금시초문이라는 분 계실지 모르겠다. 이태리 홍차라... 흐음... 커피 맛있게 내려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이면 홍차에도 소질이 있을 게 분명할 것으로 판단해 덥석 구입. 산 지는 꽤 되었는데 오늘 꺼내어 사진을 찍는 이유는 이렇다. 가필드 님께서 현재 이태리 방방곡곡을 돌며 홀로 배낭여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태리 여행 하니 갑자기 내 신혼여행 때가 떠오르는 것 아닌가. 일정에 베니스도 들어 있다니 분명 산 마르코 광장의 에도 들르실 터. 오늘의 홍차가 바로 저 유명한 의 블렌딩 홍차인 것이다. 오늘은 사진 왼쪽의 녹색 깡통 차를 우려보기로 한다. 황홀한 찻물. 로..
Summer afternoon - Summer afternoon... the two most beautiful words in the English language. - Henry James - 셰익스피어를 비롯, 수많은 작가들이 극찬했던 영국의 '글로리어스'한 여름 날씨. 9월이지만 아직까지는 유효합니다. 이런 날은 무조건 집 밖으로 뛰쳐 나와야 합니다. 영국에서는 여름에 햇빛을 쬐어 두지 않으면 비타민D 부족과 피부병으로 겨울을 날 수 없다고 합니다. 다들 기를 쓰고 밖으로 나옵니다. 1층 할머니가 또 머그 한가득 밀크티 담아 일광욕 하러 마당에 나오셨습니다. 햄퍼hamper와 담요는 아직도 못 샀습니다만, 오늘은 공원 벤치에라도 앉아 차를 즐겨야겠습니다. 간단하게 싸 들고 집 근처 공원으로 향합니다..
머핀 제25호 재료: 커피, 우유, 달걀, 식용유, 밀가루, 설탕, BP, 소금, 잘게 다진 호두, 아이싱슈가 차생활을 한 지도 이제 꽤 되었습니다. 차는 사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죽 즐기던 음료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청차인 우롱차를 즐겼었지요. 영국에 있을 동안은 홍차가 값도 싸고 다양하니 홍차를 집중적으로 즐기는 것이 현명합니다. 홍차 깡통도 꽤 많이 생겼는데, 언젠가 빈 홍차 깡통들 죽 모아놓고 사진 한번 찍어 올려 보겠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차들을 마시고 나니 이제 차에 대해 감이 '조금' 잡힙니다. 조잡한 차들을 하도 마셔대서 이제 이런 차들은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ㅋ 좋은 차 감식 능력은 아직 요원한 일입니다. 그저 찻잎 얌전하게 잘 생기고 맛과 향만 좋으면 최고이겠거니 생각하고 ..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느닷없이 소포가 배달돼 왔습니다. 미스Miss도 미시즈Mrs도 아닌 미즈Ms 호칭까지 정확히 쓴 걸 보면 틀림없이 불량소녀 님의 만행입니다. 보낸 이와 주소를 확인하고는 신나서 포장을 뜯으려는 순간, 아니? 다쓰베이더와 단단이 젤루 좋아하는 로빈Robin이 아닙니까! 아침에 로빈이를 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습니다. 짜리몽땅 통통한 것이 꼭 단단 같습니다. 한국 가면 이 로빈이들이 가장 그리울 것 같습니다. 포장을 뜯어 봅니다. 밀크티의 제왕이라는 티백을? 영국 수퍼마켓에 널린 게 이 요크셔 골드 티백인데, 왜 미국에서 이걸 보내셨을꼬? 현명하기 짝이 없는 불량소녀 님께서 그런 소모적인 일을 하실 리 있겠습니까. 투명스카치 테잎이 상자에 둘러진 걸 보니 단지 상자로만 활용한 것..
영국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한국과 반대입니다. 이들은 우선 아파트 같은 공동 주거 형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타워팰리스 같은 고층 건물은 제아무리 고급으로 지었다 해도 이들에게는 악몽 그 자체입니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명품 가방이나 유명 브랜드 옷 따위를 걸치고 다니는 것도 진부한 일로 치부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단단은 백인들에게 무시 당하지 않으려면 좋은 옷, 좋은 가방으로 잘 치장하고 다녀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품고 명품 옷 바리바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벌) 싸들고 영국 땅에 발을 디뎠는데, 웬걸요. 이런 옷들은 이제 하는 수 없이 집에서 실내복으로나 입는걸요. 남 주자니 아깝고 나중을 위해 고이 모셔두자니 인생은 짧고 말이죠. 영국에서는 런던 같은 대도시보다는 시골로 갈수..
친애하는 방문자 여러분. 우선 오늘의 제목부터 다시 좀 봐 주십시오. 결혼 10주년. 감동의 물결이 텍사스 소떼처럼 밀려옵니다. 결혼 20주년, 30주년, 40주년, 50주년 맞은 분들이 수두룩한데 시건방진 소리 말라고요? 다쓰베이더의 부친, 단단의 시부께서 결혼 전 저희 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만났다 헤어지기를 쉬 여기는 요즘 젊은이들 답지 않게 꽤 오래 사귀었구나. 아비가 그 점 높이 평가한다." 수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겠다 말씀 드리니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쓰베이더의 남동생은 색시 될 아가씨와 만난 지 3개월만에 후다닥 결혼했는데, 이것도 참으로 멋진 일 아닙니까? 첫눈에 자기 짝을 알아보고 이렇게저렇게 잴 것도 없이 단숨에 승부를 보다뇨. (사고 쳐서 결혼한 ..
마카롱을 다 구웠습니다. 영어로는 '마카루운macaroon'이라고 발음합니다. 재료, 공정, 모양, 질감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영국에서는 프랑스 마카롱도 그냥 '마카루운'으로 통일해 부릅니다. 구워 보니 재료는 단순하지만 굽는 데는 노하우가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노하우는 레서피에 잘 나와 있지 않으므로 몇 번 망치면서 터득할 수밖에요. 단단은 운 좋게도 두 번만에 성공했습니다. 다음 번엔 또 실패할지 모르니 매번 겸손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ㅋ 홈베이킹은 인격 수양에도 도움이 됩니다. (갑자기 도자기 굽는 우리 둘째 오라버니 생각이 납니다.) 구울 때 레서피를 정확히 따라야함은 물론이요, 온도 조절과 판 선택도 잘 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자기 오븐의 성격을 철저히 파악하고 ..
무지막지한 기계에 잔뜩 시달린 염소똥 같은 CTC 아쌈, 티끌 모아 태산 만든 티백 아쌈에 물려 제대로 된 잎을 한번 사 보았습니다. 우유 없이 마실 때는 CTC 아쌈의 아린 맛이 다소 부담스럽더라고요. 티백을 우습게 여기는 건 아니지만, 티백 차는 일단 국물이 탁하죠. 전 그 탁한 국물이 이제 싫어졌습니다. 홍차에 막 입문할 당시에는 구하기 쉽고 값도 저렴한 티백차를 정말 수도 없이 마셨었지요. 사실 그 정도 값에 그만한 품질을 낼 수 있는 에는 지금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에 대한 제 애정에는 변함이 없어요. 나라마다 포장이 다른데, 영국 수퍼마켓에서 파는 차들은 요즘 포장도 얼마나 멋있어졌는지 모릅니다. 티백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다른 건 몰라도 밀크티용 블렌드만은 나 같은 수퍼마켓표 티백..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상에서 깨어나시라.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이런 식으로 홍차를 마신다. 머그 한 가득 수퍼마켓 밀크티용 티백 우린 것에 비스킷 한 조각이 전부로, 비스킷도 꼭 한 개만 달랑 내서 먹는다. 한번은 영국인 노인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손님인 나더러 아예 자기 집 과자통에 손을 넣어 알아서 비스킷을 꺼내 먹게 해 속으로 킬킬 웃은 적도 다 있었다. 영국의 여염집에 하나씩 있게 마련인 과자통은 아래 사진과 같이 실내용 작은 쓰레기통처럼 생겼다. 시詩적인 맛은 좀 떨어져도 나는 록앤록 같은 밀폐용기를 선호한다. 과자는 바삭해야지, 암. 비스킷은 대개 위에서 내려다본 찻잔과 같은 동그란 형태를 선호하는데,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아무래도 열량이 적은 오리지날 다이제스티브. 좀 더 사악하게 티타임..
다쓰베이더: 이번 마나님 생일에는 찌질한 것들은 사다 쓰고 가장 난이도 높은 한 가지에 집중하기로 하였소. 마나님: (호기심에 눈이 반짝) 그게 무슨 소리요? 가장 난이도 높은 한 가지란? 만날 보는 샌드위치 따윈 수퍼마켓에서 사다 쓰고 영국의 바노피 타트banoffee tart 역시 사다 쓰고 테크닉과 노하우가 좀 필요하다는 저 프렌치들의 에끌레어eclairs에 올인하겠다, 이 말씀. 오븐 속에서 한껏 부풀고 있는 슈를 보는 게 그 어떤 것보다도 떼라퓨틱하다는 다쓰베이더. 냄비에 달달 볶은 반죽, 짜주머니에 넣어 짜주고심혈을 기울여 일정하게 짠 반죽, 포크로 죽죽 줄 그어 주고잘 부풀어 오를 수 있도록 오븐에 넣기 전 물 스프레이 칙칙 뿌려 주고 잘 구워진 슈는 식힌 후 똥꼬 푸욱 찔러 정성껏 만든 딸..
새삼스럽지만 오늘은 이 분께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알뜰주걱이여, 그대로 인해 우리 푸른별의 맑디맑은 물이 그나마 덜 더럽혀질 수 있었음을 생육·번성하다 만 휴먼과 짐승들을 대신해 감사 드리는 바요. 오늘의 머핀 재료:타퍼나드, 그린올리브, 맛있는 치즈 강판에 간 것, 달걀, 밀가루, BP. 끝. 유지가 따로 안 들어가도 머핀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구나. 머핀 굽기는 계속된다. ■
반식 다이어트 성공 기념 오늘의 머핀 재료: 버터, 설탕, 달걀, 레몬 껍질과 즙, 사워 크림, 베이킹 파우더, 베이킹 소다, 양귀비씨앗. 잘못 구워진 게 아니라 원래 윗면이 평평하게 되는 촉촉한 머핀이다. 잘못 구워진 줄 알고 두 판이나 구웠지 뭔가. 젠장. * * * 원래는 10kg만 빼려고 했으나 본의 아니게 11kg가 빠졌고 지금도 계속해서 느린 속도로 살이 빠지는 중이다. 외출도 삼간 채 클로티드 크림을 주식 삼아 은둔자 생활만 하던 재작년과 작년 봄. 내 인생 최악으로 살쪘던 때의 모습은 오직 영국 출장을 오셨던 가○○ 님만이 아신다. 우리 가족도 모른다. 이 시기의 모습은 하도 흉측해 사진으로도 남겨 두질 않았다. 다행이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으로서 오늘은 오만·자만·교만을 좀 떨어 보기..
현재 붙잡고 실습 중인 머핀책의 좋은 점은, 어른 입맛에 맞을 만한 머핀이 많다는 것이다. 짭짤한 머핀을 굽는 날은 머핀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 좋고, 단 머핀은 찻자리에 티케이크 대신 낼 수 있어 좋다. 귀한 잣 보내 주신 권여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 염소젖 치즈 & 페스토 머핀 재료: 페스토, 물, 달걀, 밀가루, 소금, BP, 고트 치즈, 강판에 간 체다. 끝. 주위가 온통 연두색 초록색으로 물들어 동네 공원이 피크닉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용기를 내서 나도 홍차 끓여 머핀 싸들고 공원에 나가 봐야겠다. 잠깐, 멋진 영국식 햄퍼가 없구나.;; 이럴 땐 우리 대한의 자랑스런 밀폐용기 손잡이 달린 통이 최고다. 록캔록 제품은 여기 영국에서도 인기다. 이런, 생각해 보니 피크닉용 양모 담요도 없잖아..
머핀 제14호. 나도 내가 이렇게 끈기 있을 줄은 몰랐다. 끝까지 해보는 거다. ㅋ 스트로베리 루바브 머핀 재료: 납작 누른 귀리, 딸기 요거트, 버터, 머스코바도 슈가, 달걀, 밀가루, 소금, 베이킹 파우더, 베이킹 소다, 계핏가루, 밀기울wheat bran, 루바브, 딸기잼. 끝. 이젠 정말 봄이다. 봄바람에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 ▲ 최근 영국의 어느 시골 마을 영세 미술상에서 발견된 모네의 유작. 미술계가 발칵.
남들 금식하며 기도하는 날에도 단단은 머핀을 굽는다. 영국에서는 성금요일에 홋 크로스 번hot cross buns이라 불리는 특별한 빵을 먹는 풍습이 있다. 오늘의 머핀은 이 크로스 번의 머핀화. 번을 구울 때는 오븐에 넣기 전 십자가를 그어 주지만 머핀으로 만들 때는 굽고 난 뒤 간단하게 레몬 아이싱으로 그어준다. 신심이 부족한가, 선 두 개로 십자가 긋는 일조차도 버거워 삐뚤빼뚤. 두어 개 겨우 건졌다. 재료: 밀가루, 소금, 설탕, 베이킹 파우더, 계핏가루, 올스파이스, 달걀, 버터, 우유, 커런트currant, 오렌지 껍질, 레몬 껍질, 아이싱 슈가, 레몬 즙. 끝. 가시 면류관을 상징할 만한 것 무엇 없을까 하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가 얼씨구나 길에서 주워 온 뾰족뾰족 홀리holly 잔가지. 행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