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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다 지기 전에 꼭 사진기로 담아 두어야겠다 마음먹었던 수선화. 산책로 집집마다 피어 있던 수선화를 보자 길고 긴 영국의 회색빛 겨울을 이겨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한국에서 개나리가 봄 소식을 알리듯 영국에서는 수선화가 봄을 알린다. 보라색 하얀색 크로커스들이 수선화보다 먼저 눈을 뚫고 삐죽삐죽 솟아오르긴 하지만 노란 빛깔 때문일까? 수선화를 봐야만 이제 봄이다 싶다. 동네 길 집집마다 심긴 너댓 종류의 수선화를 비교·관찰하며 넋을 잃다 돌아오곤 했는데, 오늘 보니 우리 집 뒤쪽 공동정원 한쪽에도 이 녀석들이 있는 것 아닌가. 내 눈엔 우리 집 수선화가 동네에서 제일 예쁘구나! 어느 수필가가 번역·인용했던 노랫말이 떠오른다. 제겐 큰 집은 없을 거예요, 땅도 없고 손 안에 바스락거리는 지폐 한 장 ..
무슨 머핀 이름이 '오옷'이냐, 하실 분. 별별 머핀을 다 봤어도 내 '오옷 머핀'은 처음이다, 하실 분. 왜 머핀 이름이 '오옷'이냐? 놀라지 마시라. 그건 바로, . . . . . 내가 과제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틈을 타 다쓰베이더가 혼자서 구워 낸 머핀이기 때문이다. 믿어지는가? 저렇게 크랙도 없이 얌전하게 봉긋 부푼 머핀들이 생전 처음 베이킹 해본 산적 같은 아저씨의 (자기는 미중년을 꿈꾼다지만) 작품이라는 것이? 하루 세 끼와 두 번의 간식을 모두 집에서 해결하다 보니 좁아터진 집에 향신료와 허브와 식재료가 넘쳐난다. 재료가 다 갖춰져 있으니 어느 때건 마음만 먹으면 베이킹을 뚝딱 할 수 있어 좋긴 하다. 머핀 책을 보고 제일 만만해 보이는 것을 골라 구웠다고 한다. 오늘 썼다는 머핀 재료를 가..
꿀 찔끔. 끼얹으려면 좀 화끈하게 얹을 것이지 소심하기는. 수정과에만 띄워 먹는 줄 알았던 잣을 죽에도 넣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죽도 몸 어딘가에 탈이 나야만 먹는 걸로만 알았다. 죽 먹을 정도로 탈 난 적이 없으니 이 나이가 되도록 잣죽이란 건 여태 먹어보지를 못했다. 명절 때 먹는 한과 중에 잣으로만 만든 강정이 있다. 수확하기도 까다롭다는 그 귀한 잣을 대체 어떻게 보관들을 하는 건지, 먹고 나서는 한결같이 뒷맛이 좋지 않았다. 이태리 제노바 사람들이 즐긴다는 페스토 소스를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서 잣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잣이 그토록 비싼 식재료인 줄은 시판 페스토 소스들의 성분표를 보고서야 알았다. 잣을 쓴 페스토의 값은 다른 대체 견과류를 쓴 것들보다..
오늘은 어렵게 손에 넣은 안계철관음을 소개합니다. 귀한 차들은 되도록이면 관찰기를 올리려 하고 있습니다. 안계철관음은 다쓰베이더와 단단이 제일 좋아하는 청차에 속합니다. 청차를 좋아한다면서 왜 그간 홍차를 마셨느냐? 홍차가 청차보다 저렴한데 영국에서는 특히 더 그렇기 때문입니다. 서민은 처한 환경에 따라 마시는 차도 달라질 수밖에 없지요. 주머니 사정 생각하며 융통성 있게 살다 보면 이렇게 가끔 부자들이 떨어뜨리는 떡고물로 고급차를 얻어 마시기도 합니다. 이런 훌륭한 차들을 마시다 보면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기도 합니다. 중국의 당 고위 간부를 친구로 둔 분의 형님을 친구로 둔 제 지인께서(!@#&$X%^???) 켁, 잠깐. 헷갈리니 제 쪽에서 거꾸로 다시 짚어 보자면, 이 ..
작심삼일의 고비는 무사히 넘겨 이제 170개의 머핀 중 166개가 남았다. 도대체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하는가? 그동안 한 번도 써 보지 않았던 재료들을 쉬운 머핀 만들면서 다뤄 보고 싶기 때문이다. 머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숙고해야 할 세 가지 - 1. 지금까지 잘 해 오던 체중 감량, 머핀을 매일 먹고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2. 몇 안 되는 접시를 가지고 어떻게 매번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인가. 3. 레서피 대로 빠짐없이 만들다 보면 고기를 써야 할 상황이 생기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살구 & 아몬드 머핀 재료: 살구 과육, 아몬드, 밀가루, 설탕, 달걀, 버터, 우유, 베이킹 파우더. 끝. 한 입 먹기 위해 머핀을 코 앞으로 가져오는 순간 위에 소복이 얹은 아몬드 향부터..
오늘로써 베이킹 책에 있는 머핀을 전부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한 지 삼일. 오늘 구운 걸 다 먹으려면 이틀이 걸릴 테니 이틀 뒤에 새 머핀 사진이 올라오지 않으면 그야말로 '작심삼일'로 끝나고 마는 거다. 미리 배수진을 쳐두기로 한다. 모쪼록 고비를 잘 넘겨야 할 텐데. 분수도 모르고 에클레어Eclair에 도전했다가 두 번 다 시답잖은 결과물을 보고 난 뒤로는(맛은 좋았다. 정말이다.) 역시 영국식 미국식 막빵, 막과자가 최고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여기서 잠깐 머핀 예찬을 하자면, 재료를 한데 넣고 날가루가 안 보일 때까지만 슬렁슬렁 섞어 숟가락으로 바로 패닝, 손으로 버터와 밀가루를 보슬보슬하게 비벼줘야 하는 스콘보다도 덜 번거롭고 간단하다. 짭짤한 머핀도 가능하므로 집에 있는 자투리 식재료는 이 때 해치..
오래 묵은 땅콩 씹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이 없다. 반대로, 삶을 크런치하게 만드는 많은 기분 좋은 일 중 하나는 너무 신선해서 씹자마자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는 그런 고소한 땅콩을 씹는 일이지. 실리콘 팬은 구운 색이 역시 철판만 못하다. 매끈하게 떨어진 깔끔한 머핀이냐, 너덜너덜 떨어져도 울퉁불퉁 바삭바삭 노릇노릇 구워진 머핀이냔데... 흐음... 나는 맛있는 구운 색 나는 지저분한 머핀 쪽이 좀더 좋은 것 같다. 땅콩버터 머핀 재료: 건더기 우적우적 씹히는 땅콩버터, 버터, 달걀, 우유, 밀가루, 베이킹 파우더, 설탕, 소금 변주: 머핀을 구울 동안 집에 있는 잼 아무거나 물과 함께 냄비에 끓여 반짝이를 만든다. 구운 머핀 "맨머리" 위에 고르게 발라 준 뒤 땅콩 부스러기를 솔솔 뿌린다. 반짝이를 안..
레서피에는 '프레쉬 라즈베리'를 쓰라고 되어 있었지만 2주나 묵은 냉동 라즈베리를 썼다. 굽는 동안 얼었던 라즈베리가 녹으면서 수분을 더한 모양이다. 겉은 바삭한데 속은 아주 촉촉해졌다. 라즈베리의 맛과 색이 고스란히 살아남았으니 큰 문제는 없는 듯. 베이킹 책에서 '오일'을 쓰라고 할 때는 어떤 오일을 써야 하는 걸까? '오일'이라고만 돼 있길래 순한 정제 올리브 오일을 넣었더니 역시나 올리브 오일은 올리브 오일. 향이 강하다. 베이킹에 알맞은 기름을 알아봐야겠다. 미강유rice bran oil도 좋다니 한번 써 봐야지. 버터와 오일을 함께 쓰니 재미있는 식감이 난다. 전쟁영화와 요리영화 좋아하는 다쓰베이더가 얼마 전 란 영화를 틀어 주었다. 보는 내내 요리보다는 어느 프렌치 그릇가게에 주렁주렁 걸려있..
오랜만에 찻상 차려 봅니다. 한 달만에 하는 포스팅인가요? 매우 게으른 블로거입니다. 갈수록 블로그질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목은 '아프터눈 티'라고 붙였습니다만, 그냥 간단한 밥을 먹은 겁니다. 다쓰 부처는 지구를 생각해 조리 시간이 30분 넘는 음식은 잘 하지 않습니다. ㅋ 전채로는 카프레제 샐러드를 응용한 까나페. 집에 있는 식빵 처치하기 좋아요. 훈제연어가 빠지면 안 되죠. 다쓰베이더가 좋아하는 훈제연어 디쉬의 디테일을 한번 보시죠. 오오, 저 연어의 살결... 질 좋은 오메가3 지방산이 좔좔 흐르는 듯합니다. 저기 저 또르륵 말린 섬세한 콩순이pea shoot. 엊저녁 미리 구워 둔 흔하디흔한 미니 머핀. 오늘의 차는 발렌타인 데이에 걸맞는 의 로즈 그레이. 요즘 같은 추운..
색이 진한 식탁 연출법 - 레이스를 깔아 주어 레이스 틈새로 식탁의 진한 색이 대비를 이루도록 해보자. 식탁과 같은 색의 진한 브렉퍼스트 티 역시 하얀 찻잔과 대비를 이룬다. 레이스를 활용하면 식탁보 없이도 차가운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산뜻한 느낌을 살릴 수 있어 좋다. 찻주전자, 찻잔, 접시들이 다른 제품들인데도 무난하게 어울린다. 블루베리를 곁들인 스콘과 얌전히 썰어 담은 버터가 일품으로, 스콘 담은 접시의 띠는 노릇노릇 잘 구워진 스콘과 블루베리의 색상을 옮겨놓은 듯. 고가의 은제품과 유명 브랜드 다기로 꾸민 돈GR (응?) 찻상보다는 소박하지만 감각이 깃든 찻상이 더 빛나는 법이다. 투명 유리그릇에 담긴 마말레이드가 청량해 보인다. ■ - 불량소녀 님의 브렉퍼스트 티 테이블
정확히 12월 18일 새벽 1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과묵한 우리 집 다쓰베이더, 평소의 모습답지 않게 몹시 초조하고 긴장된 얼굴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왼쪽 가슴이 뻐근해. 며칠 전부터 쿡쿡 쑤시더니 이제는 점점 주변으로 증상이 번지면서 짓누르듯 답답하기까지 해. 팔도 저리기 시작했어." 무엇이? 그건 전형적인 심근경색 전조증상 아니냐! 영국의 국가 의료 서비스를 'National Health Service', 줄여서 NHS라 부른다. 영국에서 의료 서비스는 공짜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국가가 국민에게서 걷은 세금으로 추가 진료비 청구 없이 평등하게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가 이 NHS다. 세금을 낸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걸 공짜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만, 어쨌든 아픈 사람이면 추가..
추석과 설, 연말연시를 모두 챙기는 한국과 달리 영국은 그저 크리스마스 하나에 집중합니다. 영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을 안 쇱니다. 부활절은 가볍게 기념합니다. 특이한 점은, 성탄절에는 누구든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므로 대중교통도 운행을 전면 중단한다는 것. 기관사나 운전사들도 각자 가족이 있을 테니 이날 다른 사람 때문에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저희처럼 차 없는 사람들은 성탄절에 교회도 못 갑니다. 그래도 불평하는 사람 하나 없어요. 새해 보신각종 타종식 본다고 종로에 몰려든 젊은 연인들 집에 실어다주느라 어느 집 가장들이 새해 첫 새벽에 지하철 몰고 택시 몰고 버스를 몰아야 하는 한국과는 사고방식이 다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성탄절을 앞두고 특별히 식탁보를 깔았습니다. ㅋ 꼼꼼히 다림질하고 식탁 위에..
2006년 봄. 유럽연합 국가들이 카페의 나라 오스트리아에 모여 재미있는 일을 꾸민 적이 있었습니다. "심심한데 우리, 각 회원국들의 대표 과자들을 한번 정리해 볼까?" "거 좋지!" 그리하여 각 나라별로 커피나 홍차에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대표 과자들을 정한 다음 레서피를 한데 모아 브로셔로 제작, 회원국의 카페나 티룸을 찾는 사람들에게 잠깐 동안 무료로 배포를 한 적이 있었지요. 위의 포스터를 보십시오. 저 많은 언어들이 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언어라고 합니다. 유럽연합 안에서만도 저렇게 많은 언어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데, 어떻게 그런 유럽을 통합할 생각을 다 했는지는 더 놀랍죠. 유럽연합 내에서 통용될 새 기준을 하나 마련할 때마다 의견이 분분, 문자 그대로 말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 이 포스터..
영국의 우정국 '로얄 메일Royal Mail' 님께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집집마다 성탄 카드를 보내 주셨다. 이번에는 우체부가 크리스마스 홀리 이파리 모양으로 눈 위에 발자국을 내고 있었으니... 국민 여러분, 올해도 행복한 성탄절을 맞이하시길 빕니다. 에, 성탄절을 위한 우편물 접수 마감일을 잠깐 안내해 드리자면, 국내 2등급 우편물은 12월 18일까지 1등급은 12월 21일까지 국제 우편물은 12월 4일까지이니 날짜 놓치는 일 없도록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그밖에 여러 특별 서비스가 있으니 것두 참고하세요. 우리들도 가족과 함께 지내야 하므로 12월 25일부터 28일까지는 우편물 접수를 안 합니다. [재활용 표시] 이 카드가 마음에 안 들면 재활용으로 당장 내다 버리셔도 됩니다. 아직 12월도 안..
홍차 깡통 모으며 즐거워하는 홍차인들처럼 양주병 모으며 즐거워하시는 애주가분들도 꽤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주로 콕테일 관련 일을 하시거나 집에서 취미로 콕테일을 즐기시는 분들로 보이는데, 이분들도 홍차인들처럼 '지름신' 운운하며 괴로워하시더군요. ㅋㅋ 하긴, 수입 독주들이 좀 비쌉니까. 무언가를 섬세하게 섞는 일을 하신다니, 겉모습의 미추를 떠나 이런 분들에게는 어떤 세련된 기운이 느껴집니다. 서점 가서 디저트와 제과제빵 책들을 훑어보니 '그랑 마니에'라는 오렌지 리큐어 얘기가 자주 눈에 띕니다. 이책 저책 살피며 시간을 보내다가 들어오는 길에 동네 수퍼마켓에 들려 빨간 리본 두른 그랑 마니에 한 병을 샀습니다. 한화로 약 3만원입니다. 향수병보다는 못하지만 홍차 깡통보다는 예쁩니다. 나도 모르게 홀..
졸업 축하 찻상을 차려 준 게 엊그제 같은데 이번엔 생일이라고 합니다. 다쓰베이더 요즘 신나겠습니다. 다쓰베이더 생일은 대개 추석과 겹칠 때가 많아 어영부영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다행히도 올해는 10월에 가서야 추석이 있다고 하죠. 선물 사줄 돈이 없으니 간단하게나마 찻상이라도 차려 줘야지요. 세상에나, 제가 생일 케이크를 다 구웠습니다. 브리티쉬 클래식인 커피 월넛 케이크입니다. 난생 처음 만들어 본 케이크였습니다. 혹시 돈 좀 아끼겠다고 집에서 베이킹 하는 분 계세요? 집에서 케이크와 과자 좀 구워 먹으려고 보니 재료비는 그렇다 쳐도 베이킹 도구 값이 만만찮게 들겠더군요. 언제 또 케이크 구워 먹겠나 싶어 스패츌라를 안 샀더니 크림 바를 때 난감했습니다. 부침개 뒤집개로 발라 줬는데, 크림 바른 모..
오늘은 홍차 관련 옛 영국 필름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시절에 만들어졌으니 우리 부모님들이 코 흘리고 있을 때이거나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거죠. 프랑스 등 대륙 국가들은 일찌감치 나치에게 접수되고 영국만 끝까지 남아 겨우 버티던 때로, 물자가 턱없이 부족해 차를 비롯한 생필품을 배급제로 공급하던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영국인들이 가장 먼저 걱정했던 것 중 하나도 바로 '차 못 마시게 되면 어쩌지?'였다네요. ㅋ 그러니 이 필름은 어렵사리 구해 온 귀한 차, 이왕이면 제대로 우려 마시자는 취지에서 만든 공익성 필름인 겁니다. 폭격으로 불 타는 건물 소화하는 장면과 피해 지역의 아이들이 자동차 앞에서 차 마시는 장면이 잠깐 지나가는데, "피폭 지역의 곤궁한 사람들..
며칠 전에 제 생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나이 먹는 거 하나도 안 기쁘니 생일 상 차리는 것 따윈 안 해도 될 것 같아." 진심으로 다쓰베이더에게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오랜만에 미역국이 좀 먹고 싶긴 했다만 한국에서 미역을 미리 공수해오지 못한 탓에 그냥 넘어갔습니다. 게다가 그날은 아는 분 음악회까지 겹쳐 여느 때와 같이 대충 차려먹고 밖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이번 생일 찻상은 어떻게 차렸을지 궁금하다" 는 가필드 님의 댓글을 보고는 아차. 그래, 명색이 차 블로거에 다과 시간 폴더까지 다 만들어 놓고 깝죽대고 있는데 이럴 때 찻상 안 차리면 언제 차리겠나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드는 것이었습니다. 생일 한참 지나 좀 뜬금없긴 하다만 자고 있는 다쓰베이더 목을 힘껏 조르며 협박했습..
차는 마시고 싶은데 깡차만 마시기는 허전하고, 그렇다고 빵·과자·케이크처럼 배 부르게 하는 것을 먹고 싶지는 않을 때, 이럴 때 곁들일 수 있는 차음식으로는 무엇이 좋을까? 알 만한 분들은 다 아시리라. 뜨거운 커피나 홍차에 쵸콜렛을 곁들이는 것은 카페인 수치를 다소 높일진 몰라도 미감으로 치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쵸콜렛 한 조각 천천히 씹어 삼킨 후 홍차 한 모금 입안에서 우물거려 보라. 어떤 여인들은 쵸콜렛 삼키는 순간이 오르가즘보다 낫다고 말할 정도다. 쵸콜렛은 가급적 낱개 포장된 것이 좋다. '옷 벗기는' 즐거움에, 담았을 때 폼도 더 나고 양 조절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쵸콜렛·향초·접시-불량소녀 님 기증] 반면, 요즘 같은 더운 계절에 펄펄 끓는 물로 우린 홍차를 마신다..
▲ 이레귤러한 아방가드적 터치가 가미된 퐌타스틱 뉴컨셉의 친츠 세라믹 플레이트. 17세기경 런던. V&A 소장. 얼마 전에 한다는 경고성 글을 하나 올리고 나서 어떻게 하면 우리 집 다쓰베이더의 푸드 파이프를 뜨거운 국물로부터 보호할 것인가 궁리하게 되었다.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는 부엌에서 소리없이 조용히 차를 우린 후 3분가량 식혀서 "써프라이즈!" 하면서 갖다주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식힌답시고 부엌에 찻잔을 방치한 채 딴짓 하다가 까맣게 잊고 차를 완전히 식혀버리는 일이 다반사. 곧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손바닥만 한 집에서 차 우리는 시간 4분 + 식히는 시간 3분 = 무려 7분이나 몰래 부엌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다가는 혼자 뭐 먹는 줄 알고 수상히 여긴 다쓰베이더가 당..
우리 전통과자 중에서는 약과, 유과(찹쌀가루 반죽을 납작하게 말려 기름에 튀긴 다음에 튀긴 밥알이나 깨를 꿀과 함께 묻힌 것), 다식, 깨강정, 땅콩강정을 좋아합니다. 다식은 먹을 때 이에 충격을 추거나 떡처럼 들러붙는 일 없어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크기도 작아 양 조절해 가며 먹기도 좋고, 색깔도 재료에 따라 다양하게 낼 수 있죠. 오늘은 다식 좀 만들어 먹으려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수퍼마켓에 들러 아몬드 가루와 꿀을 사 왔습니다. 만들기도 쉬워 요즘은 유치원 아이들이 공작시간에 이 다식을 다 만들 정도라죠? 아몬드 가루를 마른 지짐판에 살짝 구워 향을 돋운 뒤 꿀 조금 넣어 조물조물 만져 주고 다식판에 꾸욱 박으면 끝. 그런데, 영국에 다식판이 어딨냐고요? 집에 굴러다니는 오톨도톨한 판 아무거나 잡..
신분 밝히기를 꺼려하는 수줍은 지인으로부터 추석도 아닌데 근사한 모듬 월병과 '동방미인' 우롱차를 선물 받았습니다. 꺄오 유명한 대만산 동방미인은 아니고 한국인들 입맛에 잘 맞는 구수한 철관음鐵觀音류를 가져다 비슷하게 이름만 바꿔 파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자 표기가 다르거든요. 대만산 진품은 '東方美人', 중국 북경의 에서 주로 한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파는 이 동방미인은 '東方美仁'. 한국에 돌아와서 속았다고 분히 여기시는 분들도 보았는데, 분개하실 필요 없어요. 이름은 비록 '짝퉁'스러워도 현장에서 직접 시음해 보고 맛이 좋아 산 것이니 자기 입맛에 맞는 차를 구매한 거잖아요. 여기 런던의 나 같은 곳에 와서는 시음도 안 해보고 덥석 잘들 사시면서 말이죠. ㅋ 마셔 보니 이 우롱차도 맛은 상당히 훌륭..
어이구내새끼 5가 태어났습니다. 다섯 번째 조카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아들 딸 골고루 갖춘 내 막내 오라버니가 하도 부러워 "아들도 있고 딸도 있고, 참으로 성공한 인생이구려." 하고 축하의 말을 전했더니 "어. 아들도 있고 딸도 있는데 돈이 없어." 한숨 쉽니다. ㅋ 장차 키울 일이 걱정돼 하는 소리겠지요. 특히 교육비, 의료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지요. "그래도 돈도 없고 딸도 없고 아들도 없는 나보다야 낫지 않소. 부모-자식이라니, 각별한 인연이라 생각하시고 힘 닿는 데까지 한번 자알 키워 보시오." 했습니다. 비록 먼곳에 있지만 꼬물이 탄생을 기념하여 고모가 무얼 할 수 있을꼬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태어난 날짜에 맞춰 멋진 기념품 하나 주문하고 부리나케 수퍼마켓에 달려가 장 좀 봐 왔습니다.날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세상. 이제는 한국에 계신 분이 독일에서 건너온 차를 주문해 영국에 있는 한국인에게 일주일도 안 돼 다시 보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영국에 있으니 지금까지 영국 차만 줄곧 마셨겠구나 싶어 안됐는지 여러 분들께서 차생활의 편식을 보완해 줄 각종 국산차, 외국차들을 보내 주시곤 한다. 얼마 전 불량소녀 님께서 보내 주신 캐나다 특산 아이스와인 홍차를 마시고 즐거워하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번에는 낭만소녀 님께서 우리 녹차와 독일 차들을 잔뜩 보내 주셨다. 참고로, 이 누리터에서 '소녀'라는 필명 쓰는 분치고 진짜 소녀는 드물다는 사실. 온갖 소녀분들은 거개가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다. 켈켈. 한국에서 이 로네펠트Ronnefeldt 차들은 꽤 비싼 값을 치르고 구입하셔야 할 텐데 이렇듯 거..
▲ 기왓장 과자와 오도독 메밀 과자를 곁들인 기축년 새해 첫 찻상. 으응? 찻잔이... 집에 질 좋은 녹차도 있겠다, 그렇찮아도 새해엔 녹차도 좀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며칠 전 쯔유를 사러 일식 재료상에 갔을 때도 녹차와 함께 즐길 과자 접시가 있나 두리번거렸는데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신기하게도 텔레파시 님께서 천연 옻칠된 목기를 다 보내주셨다. 아니, 이 분, 대체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이 비싼 국산 옻칠 목기를 다 사서 보내셨을까. 텔레파시 님이 보기에도 녹차를 소홀히 하는 이 단단이 안타까웠던 걸까? 녹차에 딱 어울리는 그릇들이다. 이런 목기는 한국에서 보내주지 않으면 영국에선 구할 재간이 없는 것. 외국인 친구 불러다 우리 차를 대접할 때 요긴하겠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사려깊..
▲ 선물의 달인으로부터 받은 유머와 섬세함이 담긴 선물꾸러미. 얼마 전 북극 지방에 살고 계신 불량소녀 님께 홍차 몇 종류를 보내 드린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치고는 좀 일찍 보내게 되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은 워낙 추워 끽해야 하루 두 잔 정도밖에 즐길 수 없는 커피로 긴 하루를 나기에는 무리가 있지 싶어서였다. 그보다는 카페인이 적은 홍차가 좋은 벗이 돼 주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곳보다 겨울이 일찍 찾아오는 데다 4월까지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추위가 지속된다 하니 얼른얼른 보내 드리자. 구호물자는 빠른 전달이 생명이라 하지 않느냐. 그리하여 나도 홍차에 취미를 붙이고 나서 처음으로 '분양'이란 걸 다 해보게 되었다. 집에 가지고 있던 홍차 몇 종(..
▲ 영국 남정네가 자기 집에서 차려 준 아프터눈 티 테이블. 영국인 친구가 크리스마스 전에 자기 집에서 차나 함께 하자길래 얼씨구나 하고 영감과 함께 다녀왔다. 영국에서 벌써 몇 년을 보냈어도 여염집 티타임에 초대 받기는 처음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오후 네 시. 무슨 차를 하겠냐고 묻길래 평소 마시던 걸로 달라고 했다. 얼그레이를 내주겠단다. 신난다. 어디, 영국 남자가 집에서 차리는 티테이블은 어떤가 한번 보자꾸나. 다시 안 올 기회다 싶어 흐뭇한 마음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기다렸다. 차를 준비하는 일은 역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을 한순간 진지하게 만드는지라, 이 친구 말 한마디도 없이 부엌에서 잠시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이내 우리를 부른다. 집안은 어두우니 부엌에서 정원으로 나가는..
▲ 인도 구자랏Gujarat 지방풍 양념의 감자튀김 물과 우유를 냄비에 넣고 끓인 홍차에 인도 향신료들을 좀 넣어주면 인도식 밀크티인 '짜이chai'가 된다. 집에 아쌈 계열의 진한 홍차나 밀크티용 티백이 있다면 한번 시도해볼 만하다. 이때 향신료는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넣을 수 있으니 구하기 힘든 것들을 무리해서 꼭 다 갖추고 있지 않아도 된다. 영국에는 인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므로 마치 우리 한국인들이 수퍼마켓에서 파, 마늘 보듯 쉽게 인도 식재료를 구할 수 있다. 인도식 짜이를 끓이는 방법은 다양하니 누리터에서 각자 취향에 맞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짜이 끓이기' 또는 '차이 끓이는 법' 등으로 찍어 검색하면 이런저런 조리법이 많이 나올 것이다. 아래의 동영상은 인도 여인 두 분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