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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스뎅차'를 우려 보겠습니다. 스뎅차가 뭐요? 찻잎 안 넣고 스테인레스 스틸 차 거름망만 우려 보겠다 이 말씀입니다. 아니,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려 하오? 답은 조금 있다 드리기로 하고 일단 우려 봅니다. 찻잔 예열까지 꼼꼼히 다 하고 펄펄 끓는 물 부어 여느 때와 같이 3분을 우려 봅니다. 수색이 제법 나왔지요? 칫솔로 아무리 꼼꼼하게 문질러도 차때가 어딘가에는 달라붙어 있었다는 소리죠. 그런데, 이 차때에 의한 차 맛의 저하를 논하자는게 오늘의 목표는 아니고요, 오늘은 그야말로 스뎅 맛을 느껴 보고자 하는 겁니다. 잘 못 느끼고 있다가 최근 홍차를 연하게 우려 마시니 스뎅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스테인레스 스틸 거름망이 들어있는 이런 류의 찻주전자는 바쁠 때 참 편리하고 고맙지요. ..
계속해서 각국의 크리스마스 단것들을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독일의 슈톨렌Stollen 차례입니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 채셨겠지요. 독일인들 다시 봐야겠습니다. 너무 맛있어요, 너무 맛있어. 슈톨렌 드셔 보셨던 분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원래 이렇게 맛있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고급 수퍼마켓에서 사 와서 그런 걸까요? 슈톨렌의 재료와 공정은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온 아래의 사진을 참고하십시오. 유럽의 크리스마스 빵과자들이 으레 그렇듯 재료는 다들 비슷비슷합니다. 반죽에 건과일, 또는 설탕이나 시럽에 투명해질 때까지 절인 꾸덕꾸덕한 과일 절임candied fruits을 넣고 이런저런 향신료를 첨가합니다. 아몬드 페이스트인 마지판marzipan이 반죽 속에 들어가기도 하고요. 맛과 향은 여느 크리스마..
새해 첫 찻상입니다. 지난 번에 손님 치렀다고 했죠? 보기만 해도 눈이 팽글팽글 돌아가는 이 프랄린들은 센스 만점 손님이 들고 오신 겁니다. 평소에는 만져 보지도 못 할 고가의 모둠 쵸콜렛을 선물 받으면 숨이 꼬르륵 넘어가죠. 쵸콜렛이야말로 최고의 티푸드라고 말씀 드린 적 있어요. 저는 아쌈하고 먹을 때가 가장 맛있더라고요. 흐린 날 찍었더니 색감이 이 모양입니다. 몇 개를 추려 접시에 담아 봅니다. 종류가 하도 많아 다 못 담았습니다. 아까보다는 날씨가 좀 더 나은 날 찍은 건데도 기본적으로 좀 어둡죠. 영국에 살다 보면 햇빛의 양에 아주 민감해집니다. 영국에 살면서 사진까지 찍는 사람이라면 더욱 예민해집니다. 햇빛에 따라 사진 톤이 무궁무진 변화무쌍, 구름이 휙휙 지나가 광량도 3초 단위로 바뀝니다...
당분간 빵·과자 이야기를 계속 올릴 예정입니다. 크리스마스 식품 땡처리 하는 걸 잔뜩 사다 쟁였거든요. ㅋ 제가 이용하는 수퍼마켓은 영국에서도 중상류층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고급 수퍼마켓입니다. 빵과자들도 하나 같이 다 맛난 것들만 갖다 놓습니다. 빠듯한 유학 생활에 웬 사치냐 하실 분 계실 텐데요, 차도 없고 교통비도 비싸 걸어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수퍼마켓을 이용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럭셔리 식품들을 즐기게 된 겁니다. 제값 다 주고 살 형편은 안 돼 반드시 할인 시간에만 갑니다. 명절 식품들은 이렇게 명절 지난 다음 가면 싸게 살 수 있습니다. 단단은 먹고 마시는 걸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믿고 실천하는 소위 '푸디 패밀리' 출신이기 때문에 식품과 식재료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비싼..
수퍼마켓에서 '여인의 키스Lady's Kisses'라는 이름의 귀여운 이태리 과자를 집어 왔습니다. 현재 모든 크리스마스 식품들이 반값 또는 반값 이하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지났다 이거죠. 일년 먹을 과자를 쟁였지요. 숨은 그림 찾기. 바치 디 다마를 찾아 보세요. 색깔과 크기가 호두와 흡사해 장난 좀 쳐 봤습니다. 성분은 호두와는 전혀 상관 없어요. 홈베이킹 하시는 분들은 천연 색소 등을 써서 오색으로 알록달록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좀 더 자세히 보도록 하죠. "뭐야, 이거 프랑스 마카롱이네." 하실 분 분명히 있으리라 봅니다. 이태리 사람들이 섭섭해할 겁니다. 마카롱 아니에요. 재료도, 공정도, 식감도 다릅니다. 하긴, 마카롱도 원래 이태리 과자이긴 하지만요. 바치 디 다마에는 밀가루, 헤..
크리스마스가 되면 캐임브리지 킹스 컬리지 채플에서 매년 캐롤 서비스를 하고 BBC가 이를 전국에 중계합니다. 영국은 기독교가 국교이기 때문에 수많은 무슬림과 힌두, 시크들이 있어도 눈치 보지 않고 꿋꿋하게 국가의 대소사 때 이렇게 기념 예배와 합창을 중계하곤 합니다. 여왕을 비롯한 왕실 사람들과 주요 정치인들이 참석해 앞줄에 앉기도 하고요. 이런 모습들을 TV에서 그대로 다 보여줍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 땅을 떠난 저 신앙심 엄청 깊은 사람들이 세운 미국에서는 현재 어림도 없는 일이 되어 버렸죠. 크리스마스에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인사하는 것도 금기라면서요. 크리스마스에 왜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자기의 신앙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억눌려 있기 때문에 ..
솜씨 없는 단단이 용감무쌍하게도 그간 여러 차례 손님을 치렀습니다. 손님 초대해 놓고 주인이 자기가 만든 변변찮은 음식 사진이나 찍고 있기가 민망해 기록을 남겨 두지는 않았지만요. 손님들 가신 다음 남은 재료들 가지고 찻상을 재현해 봅니다. ㅋ 샌드위치 대신 전채로 냈던 훈제연어 트리오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과 같이 한 사람당 한 접시씩 냈었습니다. 가만히 관찰해 보니, 고급 식당에서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 기술과 질감을 달리해 구성하는 '트리오'가 아주 보편적이더군요. 헤스톤 블루멘쏠의 가정식 레서피를 따라해 볼까 하다가, 재료 살 돈이 없어 집어치고 돈 안 드는 제 식으로 간단하게 만들었습니다. ㅋ 위스키 담았던 오크 배럴을 땔감으로 써서 연기 씌운 훈제연어입니다. 영국에 있을 때나 실컷 맛볼 수 있..
미국에서 소포가 날아왔습니다. 이 분한테서 온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를 찍을 때는 특별히 화환을 올리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들인 습관인데 평생 지속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ㅋ Fragile - 깨지기 쉬우니 취급에 주의해주세요. 우리 홍차인들은 이 글이 있는 상자를 보면 흥분 모드로 돌입하지 않습니까? 다구가 들었다는 소리죠. 흥분의 도가니탕입니다. 겨울인데 추위도 잊었습니다. 이 비장의 다구는 내일 손님 치를 때 쓰면서 올리도록 하고 오늘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손님이 많이 올 텐데 집에 있는 찻주전자가 다 1~2인용뿐인 데다 제각각이니 이를 어쩔꼬 궁리하고 있던 찰나, 대용량 주전자가 손님 치르기 직전에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이 분, 제 속을 들락날락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밖에 다양한 홍차들도 같이 보..
홍차인 여러분, 크리스마스가 '길모퉁이를 돌아선 곳까지' 바싹 다가왔습니다. 다들 홍차의 세계에 들어선 난 뒤 생긴 긍정적인 변화를 꼽아 주십시오. 저는 더이상 남들 접하기 힘든 비싼 음식을 먹어 보고 싶다는 소망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홍차 한 통과 그에 어울리는 비스킷 한 상자만 있으면 세상 다 가진 것 같지 않습니까? 좋아하는 다구 꺼내 우린다면 금상첨화이고요. 명품 옷, 명품 핸드백 따윈 필요 없어요. 좋아하는 차 우리고 좋아하는 비스킷 한입 베어무는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 소박하고 착한 사람들이 우리 홍차인들 아니겠습니까. 단단은 우기에 일조시간까지 짧아 우울하다는 영국의 겨울을 의 크리스마스 홍차와 의 '스템 진저 쇼트브레드'로 아주 거뜬히, 즐겁게 나고 있습니다. 그간 먹어 본 ..
오늘은 뜬금없이 홍차 깡통 얘기나 좀 해보자. 단단이 그간 마셨던 홍차들 깡통 중에 밀리터리 매이니악인 우리 집 다쓰베이더가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있으니... 영국 공군 역사상 가장 빛나는 전투였던 2차대전의 . 처어칠의 유명한 프로파간다 연설의 한 대목이 바로 이 때 나온 것이다. "Never was so much owed by so many to so few."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소수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많은 빚을 진 적은 없었소. 여기서 '소수의 사람들'이란 영국 공군인 Royal Air Force의 전투기 조종사들을 말한다. ▲ 사진은 만민의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돈 있는 분들은 위키에 기부금 좀 보내 주시라. 영국인들이 뿌듯해해 마지않는 그 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수..
오늘은 1968년에 나온 영국 동화를 한 편 소개할까 합니다. 사십년이 훌쩍 지나 요즘 다시 유행을 하고 있다는데, 어릴 때 부모님이 읽어주신 걸 듣고 자란 요즘 젊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대를 이어 읽어주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이에게 읽어줄 때마다 부모님 생각이 나 무언가 애틋함이 느껴지겠지요. 차 블로그 주인장 단단이 영국에서 홍차 이야기가 포함된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놓칠 수 없으니 우리 블로그 친구분들께도 소개를 좀 해야겠습니다. 한국의 엄마들은 기겁을 하겠지만 여기 영국에서는 꼬마들도 티타임이 되면 어른들과 함께 앉아 카페인이 든 홍차를 마십니다. '괜찮을까' 걱정이 앞서겠지만 어릴 때부터 카페인에 노출되면서 자랐어도 건강하게 장수하며 살다 가는 노인들 천지니 희한하죠. 아주 짧은 아가들용 이야..
지난 겨울, 18년 만에 처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여간해선 큰 소리를 잘 내지 않는 점잖은 영국인들이 즐거운 비명을 잠깐 지른 적이 있다. 어제 또 눈이 그렇게 내렸다. 수십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함박눈 때문에 고가의 제설 장비를 갖춘다는 건 낭비니 잠깐 불편하고 말자는 결론을 내렸던 지자체들이 이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눈이 앞으로도 이렇게 잦아질 전망이라면 장비 구입을 고려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 눈만 내렸다 하면 집집마다 넉가래(널빤지로 만든 눈삽) 하나씩 들고 나와 삽시간에 슥삭슥삭 말끔히 내 집 앞을 치우는 한국과 달리 영국인들은 아무리 내 집 앞이지만 개인이 국가에 그렇게 많은 세금을 내고도 길거리의 눈을 치워야 한다는 건 아예 상상도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추측컨대, 이들은 아마도 넉가래라..
"국에 들어간 건더기를 말하는 거요?" 건지가 지구 어디에 붙어 있는 곳인지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지도를 첨부합니다. 영국의 '왕실 보호령Crown dependencies' 중 하나입니다. 외교와 방위는 영국이 책임을 지지만 자기들 헌법이 따로 있어 영국 헌법의 영향은 받지 않는 곳을 '왕실 보호령'이라고 합니다. 건지 밑에 있는 저지도 마찬가지로 영국 왕실 보호령입니다. 이 두 섬의 거주자들이 해외에 나가 국적을 밝힐 필요가 있을 때는 'British citizen'이 됩니다. 우표에도 영국 여왕의 옆모습이 들어가지요. 건지와 저지는 둘 다 우표를 잘 만듭니다. 작은 섬이나 작은 나라들이 우표를 열심히 만들고 잘 만드는 경향이 있어요. 건지의 공식 언어는 영어이지만 프랑스와 가깝다보니 불어도 생활 언..
오랜만에 크림티로 즐겨봅니다. 바빠도 찻자리는 꼭 챙겨야죠. 더치 오리지날Duchy Originals의 맛난 유기농 스콘과 잼이 반값보다도 더 싸게 나왔길래 얼른 집어 왔습니다. 언제 수퍼마켓에 가면 떨이 제품을 살 수 있는지 시간대를 '빠삭'하게 숙지하고 있습니다. 대개는 문 닫을 즈음 이런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죠. 헌데, 우리 동네 수퍼마켓에선 제품마다 할인되는 시간이 다 다릅니다. 출근 시간이 지나 오전 한가할 때 노인들이 주로 장을 보러 나오는데, 이 노인들이 선호하는 식품과 저녁 퇴근하고 들르는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식품이 다르지요. 여기에 맞춰 떨이 제품들이 하루 몇 차례 나오게 됩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좀 사볼까 기웃거리다가 보관하기 어렵고 둘 데도 마땅찮..
녹차나 청차, 홍차를 꾸준히 마셔도 별 덕을 보지 못 하고 있던 터에 백차를 마시고 나서는 놀라운 일이. 약 한 달쯤 전 의 유칼립투스 잎 넣은 백모단White Peony을 큼직한 사진과 함께 소개한 적이 있다. 기억을 잘 더듬어 보시던가, 아니면 얼른 가서 그 ☞ 글을 먼저 읽고 오시라. 영국에서 내 돈 주고 사본 차 중에서는 가장 비싼 차였다. 100g에 무려 17파운드가 넘었으니. 여기서 잠깐 백차에 대한 간략 설명을 해보기로 하자. 널리 알려진 백차에는 등이 있다. 은 잎이 채 펴지지도 않은 심으로만, 은 심 하나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난 이파리 두 장, 즉, 일심이엽 혹은 일아이엽 혹은 일창이기로(다 같은 말), 는 그 밑의 성장한 큰 잎들을 가지고 만든다. 셋 다 같은 '대백종' 차나무에서 나..
소식이 없어 궁금해하실 친구분들을 위해 잠시 기척을. 저는 잘 있습니다. 좀 바쁩니다. 요즘은 하프시코드Harpsichord 가지고 노는 데 정신이 팔려 하프시코드 룸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저 두툼한 손은 잠시 짬을 내어 놀러온 다쓰베이더의 손입니다. 피아노에서 보던 검은 건반, 흰 건반이 반대로 되어 있으니 느낌이 새롭죠? 다크한 기운이 물씬, 다쓰베이더 삘이 좀 납니다. 어? 이건 쳄발로Cembalo 아닌가요? 하시는 분들. 쳄발로와 하프시코드는 같은 악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쳄발로 = 이태리어. 하프시코드 = 영어. 요건 '버지날Virginal'이라는 악기입니다. 하프시코드보다 작으나 소리는 더 크고 까랑까랑합니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옛날 악기입니다. 두툼한 손은 역시나 다쓰베이더의 ..
차 좀 마신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을 중국 자사호. 단단도 물론 갖고 있다. 그것도 아주 깜찍한 130㎖짜리로. 이 녀석을 처음 보았을 땐 "130㎖짜리 차호가 다 있어? 여기 서양에선 1인용 차호가 기본 500㎖는 되는데?" 놀랐으나 중국차의 기준으로는 이 130㎖짜리가 2~3인용이며 이보다 더 작은 것도 수두룩하다는 말을 듣고는 혀를 내둘렀다. 서양인들이 큰 차호를 선호하고 중국과 한국인들이 작은 차호를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서양인들이 즐기는 홍차는 대개 잘게 분쇄된 (싸구려) 잎들인데다 고온에서 오랜 시간(3-5분) 우리기 때문에 첫 탕에 이미 거의 모든 맛과 향이 다 빠져 버린다. 이들에게는 한 번 찻잎을 넣어 여러 차례 물 부어 우려 마신다는 개념이 없다. 홍차이기 때문에 그..
꼿꼿. 총총총. 이거 보는 맛에 다들 유리 찻주전자를 쓰나 보다. 백차를 우릴 때는 반드시 유리나 본차이나 같은 경질 자기를 써야 한다. 그래야만 섬세한 차향을 찻주전자에 빼앗기지 않고 찻물 속에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다. ■
차 우리는 짧은 시간, 어떻게 활용하고 계시는지요? 과자를 준비하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는 분들 많지요. 단단은 집에 갖고 있는 가을 철관음을 우릴 때 가끔은 쇼팽의 전주곡Prelude 4번을 틀어 놓기도 합니다. 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곡으로, 우리 말로는 '질식', '숨막힘' 정도가 되겠네요. 느리게 하강하는 왼손의 반음계적 진행이 요즘 같은 가을 분위기에 잘 맞습니다. 눈썰미 있는 분들은 아래 악보에서 반음계적 하강 선율이 왼손의 화음 구성음 세 개에서 모두 나타나고 있으며, 일관성 있게 내려가는 듯하면서도 머뭇거리고 망설이고 주저하는 지점들이 있음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스물여섯 마디밖에 안 되는 짧은 곡에도 천재의 예민한 감수성과 파격이 여지없이 녹아 있죠. 아르헤리치의 연주를 좋아..
중국 여행 가서 차 좀 사 오지 말라. 특히 보이차. 꼭 차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여행 가면 가이드 따라 나 같은 곳에 들어가 "이 차는 미용에 좋구요, 위장에도 좋구요, ..." 하는 말에 현혹돼 저렴하지도 않은 차를 덥석 사 갖고들 오신다. 다예사 언니들의 물 따르는 솜씨가 혼을 쏙 뺄 정도인 건 인정하나 그런 건 모로칸 티룸에서도 실컷 볼 수 있다. 너도나도 다예사 언니들이 나누어 주는 차 한 잔씩 얻어 마시고는 비싼 차들을 덥석. 참, 부모님 것도 사야지, 하면서 한 개 더 덥석. 한국에서 사려면 관세 때문에 몇 배로 비싸진다니 이때 사 둬야지, 하면서 또 덥석. 나 도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시음하라고 우려 준 차와는 다른 질 나쁜 차를 내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다. 그 자리에서 포장 뜯어 ..
영국에서 가정요리계의 대모 몇 명을 꼽자면, 매리 베리Mary Berry, 딜리아 스미쓰Delia Smith, 나이젤라 로슨Nigella Lawson. 특히 나이젤라는 아름다운 얼굴과 육감적인 몸매, 그리고, 미리 손질돼 있는 재료 사다 손쉽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맛 좋은 (날라리) 간편식을 선보이기로 유명해 혼자 사는 이들이나 바쁜 맞벌이 부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그런데 엊저녁, 나이젤라가 황금 시간대에 BBC에 나와 아래의 요리를 뚝딱 만들어 선보인 것. 이것이 무엇인고? 오징어볶음이로다. 으응? 오징어볶음? 비빔밥, 불고기에 승부를 걸고 있는 우리 한국에게 이런 반격을? 고추장을 빼놓지 않고 늘 부엌에 두고 있다는 얘기를 잠깐 하더니 의기양양한 얼굴로 순식간에 뚝딱 한국식 오징어볶음을 만드는 ..
주문한 의 '크리스마스 티'가 도착했습니다. 직접 매장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다 사 오면 좋겠지만 런던까지의 왕복 교통비가 너무 비싸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배송을 시켰습니다. 지금 사는 곳에서 런던을 가려면 차비가 하도 많이 들어 큰 결심을 하고 가야 합니다. 런던 살 때 좀 더 부지런히 나다닐걸, 후회하곤 합니다. 얼마 전 에 중국 작가의 작품이 새로 설치됐는데, 정교한 작은 요소들이 모여 거대한 전체를 이루는, 딱 제 취향의 ☞ 작품이 설치됐다 하더군요. 그거 궁금해서라도 런던에 한 번 가 보긴 해야 할 텐데요. 런던 갈 일 있으면 최대한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계획 잘 짜고 가야 합니다. 다시 차 이야기로 넘어와서 - 크리스마스 홍차 깡통이 예전과는 딴판으로 바뀌었는데 이 때문에 값이 많이 올랐습..
대나무 차숟가락이 나온 걸로 봐서는 오늘은 찻잎을 본격적으로 다룰 태세렷다. [차칙 - 권여사님 기증] 의 가향 백차를 우려보기로 한다. 백차는 맛과 향이 매우 섬세해 서양인들은 종종 이 백차를 가져다가 향 나는 부재료를 섞어 원하는 향을 마음껏 그리기 위한 도화지로 삼기도 한다. 한여름에 마시면 좋을 차를 가을이 지나갈 무렵 마시려 들다니 뒷북도 이런 뒷북이. 자잘한 홍찻잎들만 보다가 솜털이 보송보송한 실한 잎을 보니 눈이 다 시원하구나. 찻잎이 하도 커 홍차 250g을 담는 통에 백차 100g이 담길 정도다. 백차 중에서도 심 하나와 잎 하나, 즉 일심일엽만 따서 담은 백모단이 기본 찻잎, 여기에 파란색 콘플라워와 향을 내기 위한 유칼립투스 나뭇잎이 첨가되었다. 백차는 6대 차류인 녹차, 백차, 황차..
과일이나 꽃, 향초 등의 부재료로 향을 입히지 않은 순수한 백호은침을 소량 입수했다. 백호은침은 백차white tea 중에서도 이런 여리디여린 심으로만 만든 고급 차. 아무리 질 좋은 녹차나 홍차도 이 백차에 비하면 그저 험하게만 느껴질 정도다. 멜론의 단맛과 오이 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아주 섬세하고 싱그러운 '피아니시모pp' 찻잎이기 때문에 백호은침을 마실 때는 차음식이 필요 없다. 찻물도 미색을 띠어 곱다. 사진의 찻잎은 상을 수상했다는 영국 의 백호은침. 다섯 번 우리고 난 뒤 심 몇 개를 골라 접시에 늘어놓아 보았다. 은빛 솜털이 여전히 남아 반짝거린다.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애기' 찻잎들이라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둔다. 1회 분량의 시음용 차였으니 이번 한 번으로 끝. 아쉽구나. ■
수퍼마켓에 갔더니 크리스마스 선물용 과자와 차가 벌써 나와 있습니다. 영국인들은 10월부터 크리스마스를 준비합니다. 선반 위의 온갖 과자와 쵸콜렛, 홍차들을 보고 있노라니 눈이 팽글팽글. 하도 행복해 으악 소리 한번 내지르고 찬찬히 살펴보았지요. 올해의 프리pre-크리스마스 과자로는 이태리 과자인 아마레띠를 골랐습니다. 그간 허술한 포장의 아마레띠만 봐 왔었는데, 크리스마스라고 아주 제대로 깡통에 넣어 팝니다. 빈티지 디자인이 마음에 듭니다. 자기들 말로는 원조라고 하는데 누리터를 뒤져 보니 원조라고 하는 곳이 몇 군데 더 있는 것 같습니다. 맛만 좋으면 원조고 뭐고 크게 상관 없지요. 이가 시원찮아 아마레띠를 살 때는 반드시 부드러운 아마레띠로 삽니다. 'Ameretti soffici'라고 되어 있죠?..
▲ 우표 30×40mm. ▲ 우표 확대. ▲ (1973), Wolfgang Herzig (1941- ), oil on canvas, 90×120 cm 오스트리아의 현대 화가 볼프강 헤어치히가 그린 커피집 모습입니다. 가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 보았으나 정보를 얻기가 힘드네요. 오스트리아에 있는 화가의 단골 커피집이었는지, 이태리 방문 때 잠깐 들렀던 곳인지, 알 수가 없어요. 대개는 커피 마시는 남녀의 모습들을 담기 마련인데 이 작가는 엉뚱하게도 쉬면서 대기중인 웨이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ㅋ 웨이터 뒤에 있는 건 뭘까요? 원두 분쇄기? 왼편에 팔만 나온 신사도 재미있습니다. 아니, 사람을 어째 팔 한 쪽만 겨우 나오게 그려요? 아예 화폭에서 빼든지 좀 더 담든지 할 것이지. ☞..
영국 수퍼마켓에서는 한국이나 미국 수퍼마켓과는 눈에 띄게 다른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병 제품이 많다는 점입니다. 유심히 관찰해 보니, 영국인들은 쥐기 편하고 쓰기 편해도 저 미국식 말랑말랑한 플라스틱 용기를 선호하지 않는 듯합니다. 환경 호르몬 걱정 때문인지, 그놈의 '품격' 때문인지, 공병이 필요해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수퍼마켓 선반에 갖가지 크기와 형태의 예쁜 유리병들이 조로록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면 오르가즘이 다 느껴집니다. (응?) 내용물이 휜히 들여다보이니 고르는 소비자 입장에선 여간 편한 게 아니고요. 떠올려 보니 한국의 마트에서는 고추장이든 된장이든 간장이든, 마요네즈에 심지어 식초와 식용유까지도, 플라스틱 용기에 든 것들이 선반을 가득 메웠던 것 같습니다. ..
다쓰베이더 생일입니다. 이번처럼 추석과 겹칠 때가 종종 있어 손해를 보곤 합니다. 오늘은 아프터눈 티 테이블 대신 하이 티를 차려 보겠습니다. 아프터눈 티와 하이 티가 어떻게 다른지 아시는 분? 우선, 시간대가 다르죠. 아프터눈 티는 점심 먹고 나서 저녁 식사 시간이 오기 전까지 딱히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는 귀족들의 문화입니다. 나른한 오후에 갖는 간식 시간이라고 보시면 돼요. 오후 4시부터 시작해 대개 5시 정도면 끝나는데, 그리고 나서는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립니다. 이에 반해 하이 티는 주로 잉글랜드 북부의 노동자들이나 농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하루의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갖는 이른 저녁 식사입니다. 대개 6시쯤 갖습니다. 영국의 노동자 계급working class의 생활상을 다루는 영..